경제

[And 트렌드] 개미들 '유령주식'에 분노?.. '기울어진 운동장'에 폭발했다

백상진 기자 2018. 4. 13.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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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배당 사고' 파문 일주일

비정상적 발행 주식 중 일부 매물로 나와 시장가격 거래돼… 공매도 개혁 목소리 온라인 달궈
기관과 외국인의 무차별 공매도 주가 하락에 영향 끼쳐 폐지 청원
네티즌 “유령주식 시장거래에도 금융당국 아무 힘 없이 속수무책… 시장 시스템 재정비해야” 쓴소리

“삼성증권이 조폐공사입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6일 온라인에선 난데없이 이런 탄식이 쏟아졌다. 삼성증권이 28억1000만주에 달하는 ‘유령주식’ 배당 사고를 낸 데 대해 마치 조폐공사가 화폐 발행하듯 찍어냈다는 비아냥이었다. ‘삼성의 증권 발권력’이라는 조롱 섞인 질타도 이어졌다. 더군다나 이를 받은 삼성증권 직원 중 16명은 501만주를 시장에서 급매도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형 사고였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지만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삼성증권 특별검사와 함께 주식발행 시스템 전면 재점검에 나섰으나 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 파문을 수습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간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기관과 외국인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고 믿는 개미투자자들은 근본적 시장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유령주식이 진짜 팔렸다… 분노와 허탈

개미투자자들은 분노했다. 증권사가 정상적인 발행 절차 없이도 전산입력 버튼만 누르면 주식 수십억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28억1000만주는 삼성증권 총 발행 물량(8930만주)의 30배가 넘는다. 일반 배당과 달리 우리사주 배당은 비과세 혜택 때문에 예탁결제원을 통하지 않고 증권사가 직접 처리하는데, 삼성증권은 현금배당과 주식배당을 구분하지 않는 처리 시스템을 운용했다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우리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비정상적으로 발행된 주식 중 501만주(약 1800억원)가 유가증권시장에서 실제 주식으로 인식돼 팔렸다는 점에 투자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한 투자자는 “있지도 않은 주식을, 그것도 총 주식량이 훨씬 넘는 주식을 만들어 뿌리는 게 시스템상 가능하다는 얘기”라며 “이번이 단순 실수라고 누가 믿겠느냐”고 했다.

실제 이날 오전 시장에 매물로 나온 유령주식 501만주는 시장가로 신속히 거래됐다. 시스템상 비정상적 주식이 아니라 일반 주식과 똑같이 인식됐다는 의미다. 시장가로 대량의 매물 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주가가 약 12% 급락했다. 유령주식 발행→계좌 입고→매도의 전 과정에서 별도의 사전경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령주식이 계좌에 입고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일단 입고가 되면 유령주식인지 실제 주식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장이 마감된 이후에는 증권사의 고객 계좌와 예탁결제원이 보유한 기관 유통 주식 수량을 맞춰보는 절차가 있지만 장중에는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사실도 맹점으로 거론된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12일 “증권사의 배당 과정을 실시간 체크하는 통계 시스템의 부재뿐 아니라 그걸 일부가 팔았고, 전체 증권 시스템에서 걸러내지 못했다는 점이 한꺼번에 작용해 부실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공매도?… 엇갈린 해석

이번 파문은 자본시장의 오랜 쟁점인 공매도 논란으로 옮겨 붙었다. 현재 금융 당국은 유령주식 매도가 규정상 공매도의 정의에 맞지 않아 시스템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투자자들은 사실상 공매도와 같은 효과를 냈기 때문에 주식발행 시스템뿐 아니라 공매도 제도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공매도는 ‘없는 주식을 판다’는 의미다.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고안된 투자 기법이다. 주식을 보유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 연기금 등에서 빌려 팔고난 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싸게 사들여 빌린 주식을 되갚는 식으로 차익을 남긴다. 현행법은 주식을 빌려 파는 공매도(차입 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주식이 과대평가될 위험성을 막고 매수와 매도의 균형을 맞춰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여주는 순기능이 있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하지만 공매도가 제한된 개인들은 기관과 외국인의 무차별 공매도로 주가 하락 피해를 입는다며 공매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삼성증권 직원들이 판 주식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이번 매도가 ‘실제 계좌에 입고된 주식’을 판 것이어서 ‘없는 주식을 파는’ 공매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501만주가 애초 정상 절차를 밟지 않고 가짜로 만들어진 유령주식이어서 당국의 설명에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당국이 시스템 결함을 고려하지 않은 채 끼워 맞추기식으로 공매도를 해석하고 있다는 게 투자자들의 불만이다.

특히 사건이 터진 6일 오전 9시35분 이후 직원들이 매도한 물량 등으로 삼성증권 주가가 약 12% 하락해 실질적인 공매도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도 비판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날 삼성증권 공매도 물량은 58만주 이상 쏟아졌다. 유령주식이 주가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공매도를 도와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증권사가 이런 식으로 개미투자자들을 괴롭혔나’ 하는 불신이 팽배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윤석헌 서울대 객원교수는 “가상의 주식을 대량 매도했는데 주가가 떨어지니까 공매도를 한 주식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며 “이번 사태가 공매도와 무관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과거에도 증권사들이 몰래 주식을 발행해 공매도를 해왔을 것이란 의혹 제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며 “평소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과 상관없는 공매도 논란으로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 일탈인가, 시장 교란 행위인가

삼성증권 직원들이 501만주를 한꺼번에 팔아버린 동기도 해명돼야 할 문제다. 사고 초반에는 100만주를 매도한 일부 직원의 탐욕이 부각됐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들이 주가 하락을 염두에 둔 선물거래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매도한 날을 포함해 3거래일째에 결제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개인적 탐욕 때문에 주식을 팔았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11∼19일 진행되는 삼성증권 현장검사가 마무리돼야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금감원은 “보유하지 않은 주식이 입고돼 장내에서 매도된 경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금융 당국에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령주식 발행의 전모를 밝히지 못한 채 삼성증권의 후진적 발행 시스템 개선과 직원 처벌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매도를 폐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당국이 얼마나 귀 기울일지도 관전포인트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말 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이 몰아칠 때도 적시 대응에 실패해 시장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투기 과열과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육성 사이에서 규제 범위를 명확히 하기보다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썼다. “삼성증권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금융 당국과 한국거래소도 투자자들에게 똑같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유령주식이 시장에 나와 거래되고 있는데도 아무 힘이 없었다. 이번 사태는 주식시장의 신뢰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기에 시장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정비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 화폐도 이 정도는 아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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