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안 택배 차 없이도 집까지 배달오는 '착한택배'
임선영 2018. 4. 13. 00:02
지난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 아파트. 택배 차량 한 대가 14단지 입구에 있는 경로당 문 앞에 멈춰섰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마친 택배 기사가 차의 뒷문을 열자 경로당의 문도 열렸다. 경로당 안에 있던 은발의 ‘대원’ 20명이 일어섰다.
이들은 힘을 합쳐 경로당에서 차 안까지 접이식 컨베이어 벨트(20m)를 깔았다. 그 사이 두 명은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18명의 ‘대원’들은 컨베이어 벨트 양옆으로 도열했다. 경로당과 택배 차량의 ‘도킹 임무’를 수행한 이들 대원의 정체는 평균 연령 75세인 ‘실버 택배’ 기사들이다. 모두 노원구 주민이기도 하다.
택배 두고 가면 손수레로 집까지 배송
차량 안에 있던 두 명의 실버 택배 기사는 900여 개의 물품 하나 하나를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옮겼다. “1407동이요. 이번엔 그쪽 물품이 많네. 부럽수~” 택배 송장에 적힌 작은 글씨는 ‘시력이 좋은’ 실버 기사들이 큰 소리로 읽어줬다. 기사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구역(동)의 물품을 경로당 한 켠에 쌓아갔다.
“택배 차 안전·공해·소음 문제 사라져”
노원구 상계주공 아파트의 실버 택배단은 12~14단지 4800세대의 택배 물품을 책임지고 있다. 이들은 주민들이 택배를 보내려는 물품도 맡아서 택배 기사에게 전해주기도 한다. 실버 택배를 이용하는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다. 상계주공 14단지의 주민대표 유애순(60)씨는 “사실 단지에 택배 차량이 자주 다니면 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매일 봐서 얼굴을 잘 아는 어르신들이 배송해주니 믿음도 간다”고 말했다. 실버 택배 기사 이은호(80)씨는 “배달 가면 반기면서 커피나 과일을 내주는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많을땐 하루 90건 배송해 월수입 100만원
실버 택배 기사들은 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전국의 ‘실버 택배’ 기사는 지난해 1월 515명에서 같은 해 9월 2066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집계에 포함돼 있지 않은 택배 회사 등에서 운영하는 실버 택배 기사들까지 감안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점·인력 시스템 갖춰야 택배 분쟁 해결”
고령의 택배기사에게 고충도 있다. 70~80대 노인에게 무거운 물건을 들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저층 아파트를 오르는 건 쉽지 않다. 실버 기사 박모(81)씨 “집 주인이 없어서 경비실에 맡기고 가면 ‘왜 집까지 안 가져다 줬느냐’면서 항의하는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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