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샤넬의 오만한 민낯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입력 2018. 4. 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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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끔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유명 브랜드들을 접하게 된다. 호기심에 백화점에 들어서면 명품 화장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부분 글로벌 외국 기업의 제품이다. 샤넬, 에스티로더, 랑콤, 디올, 시세이도, 클라란스, 록시탕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국내 백화점에는 미국과 프랑스에 본사를 둔 화장품 4사 브랜드 매장 수만 950개 정도 된다.

특히 샤넬은 7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전체 직원이 1100명을 넘는 대기업이다. 샤넬이 국내에 진출한 지는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샤넬의 경영전략은 지탄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인권 침해와 불성실한 노사관계 인식을 지적해야겠다.

10여년간 회사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다. 매장 판매직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2018년 1년차 신입 직원의 통상임금을 확인해보니 월 170만원에 불과했다. 샤넬 매장 직원 10명 중 7명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현재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가 불거져 소송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화점 매장의 노동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실태조사 결과 중 샤넬 내용은 충격적이다. 1주일 51.3시간 근무, 연차휴가 사용일 4.6일, 신입 직원 퇴사율 40%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파도 매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 출근한 경험이 67.8%나 되었다. 최근에는 임신 여성의 단축근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산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1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회사 규정과 업무 수칙은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손톱 길이부터 머리 모양과 색상까지 엄격하게 관리 지침으로 두고 있다. 아침에 메이크업부터 머리 모양까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일찍 출근해야 한다.

기업의 고속 성장 그늘 속에 묵묵히 일했던 여성들. 지금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화점 샤넬 매장에 가면 낯선 복장의 판매원을 접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검은색 유니폼과 짙은 화장의 직원을 접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바로 옆엔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노동조합이 파업 중임을 알리는 팻말이다. 지난 4개월간 노사협상에서 월 6000원, 연간 7만2000원의 차이를 회사가 수용하지 않아 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샤넬이라는 기업이 고작 1년에 1인당 7만원의 비용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샤넬은 연간 매출액이 약 1700억원으로 동종 업계 1위 브랜드다.

최근 파업 기간 중 일부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회사가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이다. 회사는 지난 9일 노조 탈퇴자 소수를 대상으로 호텔에서 임금설명회를 개최했다. 노조 탈퇴자들은 소위 좋은 매장으로 올해 초 인사 이동된 바 있다. 노사 교섭과 파업 중에 흔치 않은 일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에 지배·개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노조가 현장을 확인하고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부당노동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위법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최근 언론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삼성처럼, 샤넬의 ‘노조 와해’ 시나리오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샤넬은 국내 최고의 ㄱ로펌이 법률 대리를 맡고 있기에 이런 추측을 해본다.

자국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공화주의 정신처럼 중시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국민의 헌법적 권리는 무시하는 샤넬의 오만한 태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최근 정부의 헌법 개정안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글로벌 샤넬의 민낯을 보고 있다. 전국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고객님도 응원해주세요”라는 샤넬 노동자들의 팻말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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