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을 죽이려는 자들이 누구인가?

박세열 기자 2018. 4. 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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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김기식의 '적'들, 그리고 국회 개혁의 당위성

[박세열 기자]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거취를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김기식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시민단체 출신 국회의원이고, 국회, 정부, 기업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사람인데, 정작 자신은 피감기관의 돈으로 출장을 다녔다는 것이다. '여성 인턴' 논란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 같다. 피감기관에 특혜를 줬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공방도 있는데, 이를 떠나 피감기관의 돈으로 출장을 다녀온 것 자체부터 문제인 것은 맞다. 이 부분에 대해 김기식은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김기식이 금감원장 직을 수행하는 데 이같은 이력이 흠결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맞다. 

그러나 누가 김기식을 집요하게 공격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김기식은 19대 국회에서 초선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왔다. 초선 의원이, 그것도 비례대표 의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아 4년간 일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정무위는 국무조정실, 국가보훈처 등과 함께 금융즉, 은행, 보험, 증권, 대부업 등 서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관들을 두루 다루는 곳이다. 금융 전반을 다루다보니 전문성을 갖춰야 해 국회의원들조차 정무위원직을 수행하기 까다로워한다고 소문난 곳이다. 

이 곳에서 그는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금융업 관련 모든 법안들이 김기식의 결제를 기다리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김기식이 추진했던 법안 중 대표적인 게 이른바 '삼성생명법'이었다. 김기식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했다. 보험업법의 계열사 지분 보유 제한(보험사 총자산의 3% 이내) 원칙을 현실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주당 240만 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을 5만 원의 취득원가로 보유하며 총수 지배 구조를 공고히 해왔던 삼성그룹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큰 이슈였다. 이종걸 전 원내대표는 이 법에 대해 "이런 뒤틀린 원칙이 우리 법에 있다는 것이 잘못됐다"며 "(삼성생명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의결권·지배권 행사의 도구가 돼 있다"고 비판했다. 

법안은 당시 박근혜 정권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박근혜 정권에서 야당의 힘은 약했다.  

김기식은 2009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현 자유한국당 대표)가 밀어붙이다 한차례 실패한 후, 그의 후임인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날치기 처리했던 금융지주회사법을 원점으로 돌리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금융지주회사법은 금융회사가 비금융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사 등을 소유한 재벌이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토대로 비금융 산업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 이명박 정권의 '친재벌' 법안으로 비판을 받았다. 이 '재벌 특혜 법안'은 2014년 김기식 전 의원이 폐지 법안을 내면서 사라졌다. 

김기식은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을 무산시켰고, 한국거래소의 지주사 전환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는 대기업은 물론 은행, 보험 등 금융계의 눈엣가시였다. 적이 많이 생겨났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번 사안을 이렇게 봤다. 

"이번 '피감기관 출장' 논란은 야당이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어려운 이슈다.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의 관행'에 충격파를 줄 수 있는 '피감 기관 돈으로 외유' 논란을 야당 국회의원들이 제기한다? 자신들도 '피폭'될 텐데?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번 논란이 보수 언론 중심으로 제기된 것을 잘 봐야 한다. 김기식 임명에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누구이겠느냐. 김기식이 그동안 한 일들을 보면, 업계에서는 그의 금감원장 임명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운털이 박혀도 한참 박혀 있는 셈이다. 김기식이 적을 너무 많이 만든 것 같다."

누구라고는 지목할 수 없다. '시스템'의 저항이 느껴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한가지 더. 김기식의 임명을 두고 "잘난체 하더니 꼴 좋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때 들렸던 소리와 똑같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이해성 바른미래당 부산시당 공동위원장이 이런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고 한다. 

그는 "김기식 사태를 보면서 노무현을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2003년 당시 서동구 KBS 사장 임명을 반대했던 김기식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면전에서 "대통령을 몰아붙였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공격한 사람이 참여연대의 (당시 사무처장) 김기식 씨였다"며 "거의 겁박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매몰차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그쳐서 결국 그날 간담회는 허탈하게 끝났다"고 했다. 그는 "그날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낮은 자세로 호소할 때 반대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김기식 씨가 자기에게도 엄격하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날 노무현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변 인물들의 실체를 파악해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거짓 공세를 벌였던 전직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함께 바른미래당에 몸담고 있는 이해성 위원장이 노 전 대통령을 거론한 것은 실소를 자아내지만, 이해성 위원장이 소개한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문 대통령이 노무현을 몰아붙였던 인사를 금감원장에 기용했다는 점 뿐이다. 

금융 개혁은 시급한 과제다. '미움을 받는 인사', '적이 많은 인사'가 금감원장에 내정된 상황은 역설적으로 금융 개혁에 기대감을 품게도 한다. 이번 논란이 벌어지기 전 '재벌 저격수'인 그에게 기대를 품었던 인사들도 꽤 많았다. 그들은 지금 침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과거 잘못된 관행은 시정되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피감기관이나 기업 등의 돈을 받아 외유성 출장을 나선 국회의원의 사례가 수천 건이라고 한다. 정치자금을 보좌관 인센티브로 지급한 사례는 물론, 심지어 정치자금으로 가전 제품을 사들인 의원까지도 있다고 한다. '제 눈에 들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유독 '시민단체 출신'인, '깨끗해야 마땅한' 김기식만 문제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당은 김기식 임명이 "주사파"들로 하여금 "금융을 지배"하도록 하는, 체제 전복적 나라 적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김기식 논란은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재벌 금융 개혁의 당위성, 둘째 국회 관행 개혁의 당위성이다. 국회는 이번 기회에 피감기관으로부터 받은 특혜들을 근절해야 할 숙제를 안았다. 

그런데 반성해야 할 자들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김기식만 몰아붙이는 상황은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

박세열 기자 (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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