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택배 갑질' 논란 다산신도시 아파트를 직접 가봤다

입력 2018.04.10. 19:06 수정 2018.04.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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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아파트단지 '택배 갑질' 논란
'택배 차량 통제' 문구 일부 표현 문제있지만
택배회사와 아파트가 합의한 내용 안내한 것
아파트 단지내 지상 공원화로 '차로' 없어
지하주차장 출입구 보다 높은 택배차량들
지하 대신 단지앞 주차장에 물건 내려 배달
최근 지어진 아파트 대부분 같은 문제 고민
"국토부와 건설사 협의해 출입구 높여야"

[한겨레]

택배대란 논란이 인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에 10일 오후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재호 기자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종일 뜨거운 이슈가 됐습니다. 10일 낮 내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는 ‘다산 신도시’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실시간 검색어를 누르고 들어가 보면, 주로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의 반응을 바탕으로 다산신도시 ㅈ아파트 주민들이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금지하고 택배 노동자들에게 현관 앞까지 택배를 일일이 배달해달라고 요구하는 ‘갑질’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정말 ‘갑질’을 한 걸까요? 그래서 직접 현장에 가 봤습니다.

■논란의 시작은 한장의 사진 우선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 일어나 인터넷 매체 기사로 유포된 논란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논란이 된 다산신도시의 ㅈ아파트는 지상에는 찻길이 없고 보행로만 있는 구조입니다. 모든 주민은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도록 했습니다. 총 주차 가능 대수는 1900대입니다. 이 때문에 택배 차량을 타고 집앞까지 택배를 배송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파트 쪽은 택배 업체들에게 정문 근처에 마련해 둔 주차 공간에 주차하고, 택배 물품을 내린 뒤 손수레를 이용하는 등의 다른 방법으로 물품을 집앞까지 배송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은 1615세대나 되는 규모의 아파트에 일일이 걸어서 짐을 배송하긴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주민들에게 주차장으로 택배를 받으러 나올 것을 요구했고, 주민들이 이에 불편함을 호소한 겁니다. 논란에 불을 당긴 건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한장의 사진이었습니다.

한 누리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논란이 된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문. 커뮤니티 갈무리

지난 2일 아파트 관리소장 명의로 작성된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에 (택배)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공고문은 다소 황당합니다. 관리사무소 쪽은 ‘택배 기사가 물건을 가지러 오던지 놓고 간다고 전화나 문자가 오면 “카트로 배달 가능한데 그걸 제가 왜 찾으러 가야 하죠? 그건 기사님 업무 아닌가요?”라고 대응하라’고 입주민에게 부탁했습니다. 택배 노동자가 아파트 출입을 못하게 해 반송하겠다고 하면 ‘택배 기사님 편의를 위해 지정된 주차장이 있고 카트로 배송하면 되는데 걸어서 배송하기 싫다고 반송한다고 말씀하는데 그게 반송 사유가 되나요?”라고 반문하도록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이 공유되면서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관리사무소와 주민이 택배 노동자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비난으로 ‘다산 신도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도 대체로 이 비난을 담아 ‘주민들의 갑질’이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 택배 노동자들 “차량 진입 허락해 달라”

“물건이 너무 커요. 이건 주차장에서 주민들이 못 가지고 들어가요.”

10일 오후 1시께 ‘문제’의 다산신도시 ㅈ아파트 단지. 택배 차량이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택배 노동자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배달 물품이 가구여서 크기가 너무 크다. 정문 근처 주차장에 세우고는 도저히 배달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경비원이 와서 아파트 인도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는 볼라드(보행자용 도로나 잔디에 자동차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장애물)를 임시로 빼고 택배 차량이 단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습니다. ㄱ택배회사 노동자 ㄴ(64)씨는 배송지 아파트 동 앞에 택배 차를 주차한 뒤 자신의 키를 훌쩍 넘는 배송 물품을 등에 지고 배달 대상 가정으로 올라갔습니다. ㄴ씨는 “우리 같은 경우는 주로 큰 물건이 많아서 지정된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가져갈 수가 없다”며 “차를 못 가져 들어오게 하면 아예 배송을 못하게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한 택배회사 노동자가 10일 오후 다산신도시 ㅈ아파트에서 택배 물품을 배송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

차량 진입 금지로 어쩔 수 없이 지정 주차장에 택배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택배를 배달한 ㄷ택배회사 김아무개(28) 씨는 “힘드니까 주차장으로 나와 줬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주민들이 ‘네가 뭔데 오라가라 하냐’는 식의 답변이 돌아와 마음이 아팠다. 생업인데, 원활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일부 주민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맞아 보입니다.

■ 어린이 많은 아파트…교통사고 위험 높아 ‘불안’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이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ㅈ아파트 단지에는 찻길이 따로 없습니다. 최근 조경이나 아이들 안전 문제 때문에 단지 내 지상층에는 찻길을 없애고, 차는 모두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진입하도록 지어진 아파트 단지가 많습니다. ㅈ아파트 단지 역시 이런 ‘아파트 단지 공원화’ 트렌드에 따라 건축됐습니다. 박원갑 KB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요즘 아파트 입주자들이 아이들의 안전과 조경 등 쾌적한 공간을 많이 따지면서 지상에 주차장을 없애도록 하는 공원화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남양주 베드타운에 올해 1월 준공된 ㅈ아파트 단지에 입주한 주민들은 대부분 젊은 부부들입니다. 아이들 안전 문제에 민감한 부모들이 사는 곳이라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게다가 갓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경우, 잠깐이라도 아이들을 홀로 두고 단지 정문 주차장까지 택배를 가지러가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다산신도시 ㅈ아파트단지에 사는 어린이들이 10일 오후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다. 이재호 기자

이날 오후 내내 ㅈ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자전거 혹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거나 그냥 뛰노는 어린이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공간에 차량이 자유롭게 다니게 되면 이 어린이들은 위험 때문에 뛰놀 곳을 잃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지난달 7일 단지 안에서 후진하던 택배 차량에 어린이가 다칠 뻔한 사고도 발생했습니다. 입주민인 김아무개(38) 씨는 “당시 거의 사고가 날 뻔 했다. 어린이가 털썩 주저 앉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쳐 겨우 차량을 세웠다”고 돌아봤습니다. 김씨는 “(관리사무소 공고문에 붙은) ‘품격과 가치’라는 문구는 그 공고문 뿐만 아니라 아파트 입주할 때부터 관행적으로 쓰던 것이었다. 해당 공고문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갑질 논란이 돼 마음이 아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관리사무소의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지만, 주민들이 진정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또 다른 주민 박아무개(45) 씨도 “아파트가 여기 뿐만이 아니다. 주변 단지에 앞으로 수만명의 입주민들이 더 들어올텐데, 그 쪽도 이 아파트처럼 공원화가 다 돼 있다. 택배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것으로 보여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해결책을 촉구했습니다. 단지 ㅈ아파트 단지 주민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ㅈ아파트 단지 일부 주민들의 ‘심성’ 문제로 비난을 몰아갈 일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차량 높이를 낮추자…비용은 누가?

외부의 비난과 달리, 현장 주민들 사이에선 대책 마련을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선 택배 차량 높이를 낮추는 게 어떻느냐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ㅈ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입구의 높이는 2.3m인데요. 대부분의 택배 운송차량인 탑차는 높이가 2.5m 정도에 이릅니다.

다산신도시 ㅈ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입구. 이재호 기자

문제는 택배 차량 높이 조정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 였습니다. 택배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주민과 아파트 쪽이 비용을 마련해야 한다는 택배회사가 맞섰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차장 입구 높이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으로 언급됐지만, 이는 택배 차량 높이를 낮추는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돼 곧 기각됐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택배 노동자들은 물품 배송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아파트 단지는 입구에서 배송물품을 내린 뒤 카트를 이용하여 고객에게 배송하라고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배송 시간이 몇배 소요되기에 다른 고객 물품 배송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택배 회사와 국토교통부가 문제 해결에 책임있게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이날 오후 5시께 ㅈ아파트 단지의 지정 주차장에서는 한 택배업체가 배송 물품을 주차장에 대거 내려두고 떠났습니다. 당분간 이런 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비단 ㅈ아파트 단지만의 문제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 건설사의 실패…다산신도시는 ‘실버택배’로 논란 해결할까?

결국 택배 대란의 궁극적인 원인은 아파트 설계·건축의 실패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경이나 안전 문제로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도록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을 ‘공원화’했다면, 아파트 건설 단계에서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를 충분히 높게 지어야 했습니다. 바쁜 일상을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택배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원갑 KB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사태를 보면,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지을 때 승용차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만 드나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며 “요즘에는 인터넷 쇼핑이 활발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에 트럭이 드나들 일이 많다. 아파트들이 지하 1층이라도 층고를 높이는 방향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아파트에서 만난 택배 회사의 한 관계자 역시 “애초 아파트를 설계할 때부터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높여서 만들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며 “최근 신규 아파트 단지가 생기는 곳에는 이렇게 ‘공원화’한 구조로 지은 곳이 많기 때문에 택배 회사 입장에서 택배 기사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아파트 쪽과) 협의를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낮은 지붕으로 지하주차장을 만든 아파트 단지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장에서는 아파트 정문에서 집앞까지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거나 혹은 노인을 고용하는 이른바 ‘실버택배’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실버택배는 택배 차량이 주차장에 물품을 내리면 노인들이 전동카트 등을 이용해 가정에 물건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비슷하게 택배 차량의 진입을 막았던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가 실버택배 도입으로 갈등을 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국택배노조 김진일 정책국장은 “실버택배 등 택배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방안이 논의가 된다면 충분히 협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의 일탈적 표현을 비난하기보다, 이렇게 상생의 대안을 찾는 것이 좀 더 현명한 대응 아닐까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