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삼성 노조파괴 공작 재수사가 '일사부재리' 위반이라고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황춘화 2018. 4. 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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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 기자들]
삼성, 고 이병철 선대회장 유훈따라 80년간 '무노조경영'
2013년 노조파괴 행위 꼬리 밟혔지만 검찰서 무혐의 받아
삼성 '다스 소송비' 수사중 노조파괴 문건 6000건 드러나
새로운 증거 등장에 따른 재수사..일사부재리에 해당 안돼
삼성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검찰이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은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S(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 폭로로 한 차례 세간의 눈길을 끈 바 있습니다. 당시 관련자들의 고소·고발이 접수됐지만, 검찰은 1년 3개월여만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죠. 그러니 검찰의 이번 수사는 ‘삼성노조파괴 공작 재수사’라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관련기사: [단독] 검찰, 삼성 ‘다스 소송비’ 조사중 ‘노조파괴 문건’ 6천건 발견)

검찰의 수사 착수가 알려지자마자, 경제지들은 벌써부터 삼성의 경영을 우려하는 사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경제>는 9일 ‘무노조 삼성 재수사, 노조 쇠사슬 기업들 신음 안들리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번 삼성 수사는 합리성을 결여했다고 볼 만한 구석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비록 재판은 아니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며 “결과적으로 ‘삼성 때리기’식의 표적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고 검찰을 비판했습니다.

검찰의 삼성 수사를 비판한 <한국경제>의 9일치 사설.

삼성은 창업 이래 줄곧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왔습니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유훈으로 알려져 있지요. 삼성 노동자들은 수십년 동안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현재 78개 계열사 가운데 8개의 계열사만 노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겨우 10.2%. 삼성은 어떻게 이렇게 낮은 노조 설립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삼성의 그 비법을 검찰이 입수했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단독] 삼성 노조파괴 문건 ‘마스터플랜’ 나왔다) 삼성이 어떻게 노조 설립을 방해해 왔는지, 검찰의 삼성 노조파괴 공작 재수사는 과연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더 친절한 기자들’이 알아봤습니다.

■ 이병철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

‘무노조’라고 해서 삼성에 노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 최초의 노동조합이라고 불리는 삼성에버랜드 노조(2011년 7월13일 설립)가 설립되기 전에도 삼성생명·삼성증권 등 9곳의 계열사엔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노조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어용노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 즉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어용노조가 먼저 설립될 경우 다른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할 수 없었죠. 이 때문에 삼성은 사실상 ‘무노조 기업’일 수 있었던 겁니다.

삼성 무노조 경영은 1977년 ‘제일제당 미풍공장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미풍은 미원을 따라잡기 위해 고 이병철 회장이 만든 조미료로, 삼성일반노조의 자료를 보면 미풍공장 노동자들은 겨우 월 2만 176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최저생계비가 4만5053원이었는데, 이에 견주면 월등히 낮은 금액이었죠. 결국 여성 노동자 13명은 전국화학노동조합 제일제당 김포공장지부를 설립했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 이병철 회장의 그 유명한 발언은 이때부터 나돌았습니다. 제일제당은 노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친인척을 겁박하는 등 악랄한 방식으로 노조를 와해시켰고, 결국 노조 결성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이용했습니다. 6·10 민주항쟁이 있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많은 업종에서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삼성중공업 창원2공장 노동자들도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했죠. 하지만 딱 하루 전 다른 노조가 신고필증을 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신고서는 반려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당시엔 한 사업장에 한 개의 노조만 가능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88년 4월 삼성중공업 역시 한 발 빠른 회사 쪽 노조의 출범으로 노조 설립에 실패했습니다.

이같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2011년 7월1일 정부의 ‘복수노조 허용’ 방침에 따라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 먼저 설립된 (어용)노조가 있어도 또 다른 노조의 설립이 가능해진 겁니다.

■ 복수노조 허용 뒤 바뀐 삼성의 노조 전략

복수노조 허용 13일 만에 무노조 삼성에 첫 민주노조가 설립됐습니다. 삼성에버랜드 직원 4명이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냈습니다. 첫 노조인만큼 가입 대상은 삼성그룹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삼성은 에버랜드 노조를 순순히 받아들였을까요?

삼성노동조합 조합원과 민주노총 간부들이 2011년 7월 12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중회의실에서 출범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물론 아닙니다. 노조가 설립신고를 마친 이틀 뒤 삼성노동조합 간부인 조장희 부위원장에 대한 징계절차에 착수했습니다. 물론 징계 사유가 노조설립은 아니었습니다. 삼성은 “차량 관련 범죄에 연루돼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회사에 관련된 상당한 양의 기밀을 유출한 혐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삼성노조는 “수개월 전에 있었던 일인데 이제 와서 징계를 한 것은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했죠. 하지만 조 부위원장을 결국 해고했습니다. (▶관련기사: 에버랜드, 삼성노조 조장희 부위원장 해고) 이후 조 부위원장은 해고 사유가 됐던 차량 연루 범죄와 기밀유출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삼성의 새로운 노조대응 전략이 세상으로 드러난 건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 때문이었습니다. 심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2011년 평가 및 반성 △2012년 노사환경 전망 △2012년 노사전략 △당부말씀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삼성이 그룹차원에서 어떻게 노조 와해를 계획했고 실제로 이를 이행했는지 결과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삼성은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문제 인력’을 지속적으로 감축해 문제 발생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하고, 노조설립 시 즉각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채증을 지속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노조가 만들어진 뒤에는 노조 탈퇴 등을 설득해 노조를 해산하고, 단체교섭은 ‘무조건’ 거부하며, 기존 (어용)노조를 활용해 노·노 갈등을 유발하라고 구체적으로 계획했습니다.

공개된 문건에 대해 삼성은 “바람직한 조직 문화를 토의하려고 작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뒤늦게 “삼성에서 만든 문건이 아니다”라며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

■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에 면죄부 준 검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삼성 노조원들은 2013년 10월 이건희 회장과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삼성고위 임직원 10여 명을 노조 파괴(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습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도 고소를 했죠.

하지만 검찰은 이건희 회장 등을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문건 작성 자체는 범죄 사실이 아닌데다 문건 자체를 삼성그룹이 작성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룹 차원에서 부당노동행위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노조의 유인물 배포를 방해한 조아무개 부사장 등 4명만 각각 벌금 500만~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는데요. 이후 삼성은 4명의 임직원을 승진시켰습니다.

고용노동청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요? 고용노동청은 고소인 등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은 채 2년 5개월이 지난 2016년 3월에야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최근 검찰의 재수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검찰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방치돼 있었습니다.

삼성의 노조 파괴전략에 따라 해고된 삼성에버랜드 노조 조장희 부위원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법원은 해고가 부당하다며 조 부위원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게다가 검찰은 ‘2012년 에스그룹 노사전략 문건은 삼성에서 작성한 것이 아니다’며 무혐의 처분한 반면, 법원은 “노조설립 진행 사실이 문건 내용과 일치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문건은 삼성그룹에 의해 작성된 사실이 미루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 역시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검찰과 노동부는 재수사를 시작하지 않았죠. (▶관련기사: 법원 ‘삼성 노조와해 문건’ 잇단 인정…검찰 ‘딴청’ 언제까지)

■ 검찰의 재수사는 일사부재리 위반이다?

그랬던 검찰이 달라졌습니다.

검찰이 ‘다스 소송비 대납’ 수사를 위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수천건의 문건을 확보해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겁니다. 삼성전자 인사팀 직원으로부터 확보한 4개의 외장하드 디스크에는 노조 대응 지침 문건인 ‘마스터플랜’을 포함해 부당노동행위 의혹과 관련된 문건 6000여개가 들어있었습니다. 범죄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부당노동행위 개입 혐의와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다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해당 자료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 계열사 노조원들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무력화 중단과 불법사찰 사죄”를 요구하며 이재용 부회장이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노동조합과의 면담에 나설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검찰의 칼끝이 삼성을 겨누자 벌써부터 ‘과잉수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다른 사건 조사 과정에서 나온 문건을 토대로 재수사를 벌이는 것은 별건수사’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일사부재리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어떤 사건(확정 판결)에 대해 두 번 이상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검찰의 무혐의는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검찰은 무혐의가 내려진 사건이라도 새로운 증거가 있으면 언제든 다시 수사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 사건 수사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검찰은 3번의 수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을 기소했습니다. 이번 삼성 노조파괴 공작 재수사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는 건 사법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혹은 ‘삼성을 봐주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가정입니다만, 당시 삼성의 노조파괴 공작이 기소됐다가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재수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일사부재리는 당사자와 사건 내용이 완전 동일해야 하는데, 이번 재수사는 당사자와 사건이 일어난 시기·내용이 다릅니다. 2013년 검찰의 무혐의는 삼성에버랜드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였다면, 이번에 압수된 6000여건의 문서에는 서울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노조파괴 행위가 담겨 있습니다.

별건수사를 문제삼는 것 역시 과도한 삼성 감싸기로 보입니다. 강문대 민변 사무총장은 “별건수사는 A를 수사하기 위해 B를 일부러 뒤지는 것을 말한다. 삼성의 경우 A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B를 수사한 게 아니라, A를 하다보니 B가 나온 것”이라며 “수사를 하지 말라는 건 도둑을 잡으러가다 살인범을 만났는데, 살인범은 따로 수사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습니다.

삼성의 ‘80년 무노조 경영’이 존폐기로에 섰습니다. 이번에도 삼성이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혹시 ‘운좋게’ 빠져나가더라도, 노조방해 행위를 일삼는다면 언젠가는 법망에 걸리게 될 겁니다. 어쨌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입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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