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18] 쿠바·북한 음식 파는 美 식당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18. 4. 10.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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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피츠버그대학교 구내에 자리 잡은 셴리 플라자에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작은 식당, '대립 주방(Conflict Kitchen)'이 있다. 식당 같지 않은 진지한 이름을 내건 이곳은 미술가 존 루빈(Jon Rubin)과 돈 웰레스키(Dawn Weleski)가 함께 운영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 현장이다.

두 사람은 '대립 주방'에서 미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나라의 고유 음식을 판매하고, 조리법과 유래, 주민과의 인터뷰 등이 실린 책자를 서빙한다. 종종 영화 상영회와 학자들과의 좌담회 등을 열기도 한다. 서너 달에 한 번씩 나라를 바꿀 때마다, 간판과 외관 디자인도 그 나라의 문자와 특징적인 디자인을 활용해 교체한다.

존 루빈과 돈 웰레스키, 대립 주방, 2010년부터, 피츠버그 셴리 플라자.

2014년 초, '대립 주방'은 이란·아프가니스탄·쿠바에 이어 북한 음식을 팔았다. 당시 식당은 온통 눈을 찌르는 빨간색 바탕 위에 큼직하게 쓴 흰 글씨들로 뒤덮였다. 이토록 공격적인 색채의 글자들은 선동적인 정치 구호가 아니라 동치미와 만둣국 등의 음식 이름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북한은 예측 불가한 젊은 지도자가 핵무기로 위협하는 적대국일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일사불란한 사열과 무기들의 과시적인 행렬만 줄곧 보고 있으면, 그 나라에도 만두를 빚고 겨울이면 동치미를 담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잊을 수도 있다. '대립 주방'의 목적은 이처럼 정치 뉴스의 헤드라인을 빼고는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지역의 문화와 사람들을 음식을 매개체로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2014년 가을 '대립 주방'은 팔레스타인 음식을 팔다가, 테러 위협을 받고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참고로 설립자인 루빈은 유태인이다. 음식도 이렇게 예술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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