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상하이 임시정부 두번째 청사 위치 찾았다

2018. 4. 1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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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8∼10월 활동 하비로 청사
세 임정 통합했던 역사적인 장소.. 당시 지적도 추적해 현재 터 확인

[동아일보]

“아(我) 대한민국은 아 국(國)이 독립국임과 아 민족이 자주민임을 선언하엿도다. … 4월 11일에 발포한 10개조의 임시헌장을 기본삼아 본 임시헌법을 제정하야써….”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9주년을 앞두고 1919년 당시 중국 상하이에 있던 임정 하비로(霞飛路) 청사의 위치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하비로 청사는 1919년 9월 11일 임정이 의정원 회의를 열어 3·1운동 뒤 국내외에 조직된 상하이와 한성 임시정부, 노령(연해주) 대한국민의회를 통합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던 역사적인 장소다. 첫 의정원 회의가 열린 김신부로(金神父路) 청사에 이어 두 번째 정식 청사로 평가된다.

임정은 1919년 8∼10월 이 청사에서 연통부와 교통국을 설치해 국내외를 잇는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하비로 청사 위치는 1992년 한중 수교 이전부터 정부와 학계 차원에서 백방으로 조사해 왔지만 임정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도 찾지 못해 숙원으로 남아 있었다.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최근 중국에서 발견한 1920년 제작 상하이 프랑스 조계 지적도에서 2015년 공개된 하비로 청사 사진의 주소 321호(당시 번지수)를 찾아낸 뒤 오늘날 지도와 대조해 청사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다”고 9일 본보에 밝혔다. 김 연구관에 따르면 하비로 321호는 오늘날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651호다. 청사로 썼던 건물은 1920, 30년대 철거된 것으로 추측되며 지금은 의류 매장이 들어서 있다.

▼1919년 붉은 건물 2층 벽에 태극기 펄럭… 독립운동의 심장▼ 상하이 임정 두번째 청사 어떤 곳

‘오래도록 상하이에서 세인들의 시선을 끌던 붉은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이 있었다. 1919년 8월 초 조선인들이 세를 들더니 건물 2층 외벽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정문에는 인도인이 경비를 섰다. 울창한 수림(樹林)이 가린 청사에 들어서면 넓은 정원과 온실화원이 나왔다. 양복 차림의 젊은 조선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일본인 교민 신문인 상하이일일(日日)신문, 오사카아사히신문의 당시 보도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하비로 321호 청사 모습이다. 2층에 태극기가 내걸린 하비로 임정 청사의 사진은 당대부터 임정이 홍보용 사진엽서로 제작해 배포하고, 한국국민당 기관지 ‘한민(韓民)’ 등에 보도되며 임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럼에도 임정 수립 99주년을 맞는 오늘에야 청사의 위치가 확인된 건 그동안 사진에서 하단 설명이 빠진 채 유통된 데 그 원인이 있다.

하비로 청사의 위치를 확인한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에 따르면 이 사진은 박은식 선생의 ‘대한독립운동지혈사’에 촬영 시점과 주소가 빠진 채 처음으로 실렸다. 이후 ‘하비로 309호’라는 잘못된 주소와 함께 다른 자료집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임정 요인 박찬익 선생의 며느리 신순호 여사가 소장하던 사진엽서가 2015년 공개되면서 정확한 주소가 나왔다. 사진 하단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청(政廳) 대한민국 원년(元年) 10월 11일 재(在) 중화민국 상하이 법계(法界·프랑스 조계) 하비로 321호’라는 설명이 달렸다.

그러나 상하이는 그간 주소 체계가 여러 차례 바뀌어 당시 주소만으로 현재의 위치를 찾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 연구관은 최근 상하이 거주 인사가 소장한 1920년 제작 지적도 ‘프랑스 조계: 확장지역(French Concession: Extention)’을 입수해 현재의 위치가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651호라는 걸 확인했다.

임정은 여러 차례 이사했다. 1∼3차 의정원 회의가 열린 첫 청사는 김신부로(金神父路)에 있었으나 몇 호였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한 위치가 오늘날까지 미궁에 빠져 있다. 4, 5차 의정원 회의는 상인 곽윤수의 집에 마련된 장안리(長安里)의 민단 사무소에서 열렸다. 6차 회의는 개원식만 민단 사무소에서 1919년 8월 18일 열렸고 다음 날인 19일부터는 새로 마련한 하비로 청사에서 열렸다.

민단 사무소는 임시로 활용된 것이어서 하비로 청사가 두 번째 정식 청사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임정 전시관이 들어선 곳은 1925∼32년 사용된 보경리(普慶里) 4호 청사다. 하비로 청사는 일제가 상하이 프랑스 조계 당국을 압박해 임시정부에 대해 폐쇄 조치를 내리는 1919년 10월 17일경까지 사용됐다.

김 연구관은 “역사적인 임시정부의 두 번째 청사 자리에 표지석을 세울 근거가 이제 마련됐다”며 “향후 하비로 청사의 설계도, 건축대장 등 건물의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이 같은 내용을 4월 중 간행되는 저서 ‘근현대 상해 한인사 연구’(경인문화사)에 담아 밝힐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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