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00일]명동 상인들 "일해도 '마이너스', 문 닫습니다"..폐점 늘어(종합)

박미주 2018. 4. 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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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부담 없는 중간관리인도 장사 안 돼 '죽을 맛'…직원 월급 주면 '마이너스'
화장품 로드숍 "수익 안나 근근이 버텨요…사드 문제 잘 해결되기만 기다립니다"
명동 관광객·매출 줄고 임대료 부담에 폐점 늘어…텅 빈 매장 곳곳에 '임대' 딱지
쉬지도 못하는 자영업자들, "일요일 가게 모두 문 닫게 '법제화' 필요" 주장도

화장품 로드숍들이 줄지어 있는 명동 거리 모습 (사진=박미주 기자)

[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이제 그만 정리하려고요. 중국인 보따리상마저 줄고 안 오고 힘드네요."

봄이지만 찬 바람이 쌩쌩 불던 8일. 이날 찾은 대한민국 대표 쇼핑 중심지 명동의 경기는 여전히 찬 바람이 가득했다. 지난 1~2월 한겨울보다는 동남아시아 등에서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었지만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보복 이전 수준만큼 회복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냉각된 경기에 올해부터 7530원으로 16.4% 인상된 최저임금 또한 상인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명동 중앙 큰 길에 몰린 화장품 로드숍들에는 사람들이 다소 있었으나 안쪽 로드숍에는 직원들이 손님보다 많은 곳도 많았다. 직원만 있는 곳들도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밖을 바라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한 화장품 로드숍 명동점포 사장 김모(49)씨는 "임대료 빼고 인건비가 지출의 60%로 늘었다"며 "1년 정도 장사를 해도 계속 손해 보는 상황이 이어졌고 올 들어 동남아 관광객이 늘고 날이 따뜻해지며 지난달부터는 다소 괜찮아졌지만 아직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장사가 안 돼 직원 2명을 줄였다. 옆에 다른 화장품 매장들도 다 그렇다"던 그는 "명동 매니저들은 사드 문제 등이 잘 해결되기만 기다리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했다. 명동 매장들의 경우 하루에 많으면 월세만 600만원, 직원들 인건비 포함 총 800만원 정도가 계속 빠져나가는데 매출이 없어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화장품 점주 이모(37)씨는 "경제는 죽었는데 최저임금이 거의 1000원 오른 거라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이에 알바생 근무 시간을 줄이고 직접 일하는 시간을 늘리며 잘 쉬지도 못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오히려 계속 마이너스라 투자금만 늘어나고 있다"며 "'투잡'으로 얻은 수입으로 손해분을 메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동 거리 모습 (사진=박미주 기자)


소비자가격이 고정돼 있고 신제품이 계속 나오는 화장품 특성상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음식점은 음식값을 올리면 되지만 화장품 가격은 고정돼 지출만 더 늘었다"며 "신제품 나오면 또 그걸 매입, 진열해야 해 더욱 부담스럽다"고 푸념했다.

임대료는 본사에서 부담한다는 한 속옷 매장의 중간관리인은 결국 폐점을 결정했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적자를 보며 오히려 손해를 보는 데다 아르바이트생 인건비라도 줄여보려 직접 일하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에는 월 3~4일 쉬었지만 이제는 이틀만 쉬게 되고 점점 힘들어져 오는 6월까지만 하고 그만 정리하기로 했다"며 "중국인 보따리상들도 세금이 늘면서 점점 안 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인으로 있는 또 다른 속옷 매장의 정모(46)씨 역시 "지난해 12월부터 수수료에서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오히려 100만원 이상 마이너스라 일을 그만 둘까 고민"이라며 "사드 이후 관광객들이 아예 안 오고 국내 소비자들도 집 사고 대출금 갚으면서 지갑을 안 여는 듯하다"고 했다.

사드 보복 이전보다 매출이 70~80% 줄었다는 의류 매장 사장 김모(45)씨는 "인건비가 1000원 이상 올랐는데 아르바이트생 여러 명에 적용하면 한 달에 백만원 이상의 돈이 추가로 지출된다"며 "내 장사라 빨간 날 포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 차라리 아르바이트 두세 탕 뛰며 사업 신경 안 쓰고 사는 게 낫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명동 내부 거리에 '임대' 딱지를 붙여 놓은 매장 옆에 또 임대 간판을 내건 텅 빈 매장이 줄지어 있다. (사진=박미주 기자)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텅 빈 매장들이 곳곳에 보였다. '임대' 딱지도 붙어 있었다. 한 명동 점주는 "장사는 안 되는데 임대료가 비싸니 아예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제 임시 매장인 '깔세'도 안 들어온다"고 귀띔했다.

다른 지역의 화장품·의류 매장 사장들도 명동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 천호동의 한 신발매장 점주는 "인건비 부담이 커져 아르바이트생을 점점 줄여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주의 한 화장품 점주 최모(43)씨는 "경기가 안 좋아 장사는 안 되는데 인건비만 늘면서 직원수와 아르바이트생 근무 시간을 줄였는데도 손에 남는 돈이 반 이상 줄었다"며 "가게를 계속 해야 하나 하는 상황인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 달라 했는데 못 올려준다 말했다"고 전했다.

법적으로 자영업자 포함 모두가 일요일에는 다 쉬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씨는 "손님이 많지 않지만 혼자 문 닫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나와 일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며 "선진국 가게들은 보통 저녁 7~8시면 다 문을 닫는데 우리도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대 문의 종이가 붙은 텅 빈 명동 내 매장 모습 (사진=박미주 기자)


한편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도ㆍ소매업, 숙박ㆍ음식점업, 사업시설관리ㆍ임대서비스업 등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은 일자리가 14만5000개 사라졌다. 도ㆍ소매업 9만2000명, 숙박ㆍ음식점업 2만2000명, 사업시설관리ㆍ임대서비스업 3만1000명 등 1년 전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달 실업급여 신청자 수는 1년 전보다 8.4%(3만5000명) 증가한 45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가장 많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519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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