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00일]르포-'인건비와 사투' 식당가 "버티고 버티다 가격 올렸어요"

이선애 2018. 4.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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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가, 인건비와 사투 '가격인상 고육지책'
경력자 내보내고 '초보 아줌마'·'학생 알바' 늘려
'알바' 밀어내는 무인주문기 설치하는 곳도 늘어

서울의 한 식당 간판 모습. 가격 조정이 이뤄지면서 가격표 앞 숫자가 바뀌어 있다.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요즘 식당 중에 가격 안 올린 곳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우린 많이 올린 편도 아니야. 겨우 500원 올렸는데, 이마저도 부담스럽다고 하면 장사를 대체 어떻게 하라고 하는 건지. 가격을 올려도 인건비가 감당이 안되는데…"

8일 오후 중구 초동에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한 골목에서 만난 식당 사장은 최저임금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가격 인상 배경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는 "규모가 영세한 식당일수록 최저임금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점심에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싶어도 고정 비용이 늘어나 어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근의 다른 식당도 하나같이 똑같이 볼멘소리를 퍼부었다. 한 순대국 가게 사장은 "어려워 가격을 올렸는데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마다 가격을 올렸다고 한마디씩 하더라"며 "인건비가 많이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을 해도 '서민 음식을 올리면 되겠냐'고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초동의 한 먹자골목.

'홀 직원 구함, 초보 환영'이라는 공지를 붙여 놓은 한 한식집. 이 가게 주인 이모씨는 "최저임금 인상 후에 인건비 부담으로 수익이 30%정도는 줄어 종업원을 일부 내보내게 됐다"며 "아무래도 일손이 딸리고, 최근에 와이프가 허리가 좋지 않아 당분간 나오기 힘들어 1명을 더 뽑으려고 붙여놨다"고 설명했다. 초보 환영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경력자는 돈을 더 줘야 한다"며 "인건비 부담을 느낀 식당들이 오히려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무경력자'들을 선호해 이제 경력자 우대를 써 붙여 놓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서울 잠실의 한 냉면집에 붙어 있는 가격 인상 안내문.

이달 10일이면 최저임금 인상 시행 100일을 맞는다. 100일 동안 영세한 식당·외식 자영업자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에 영업난에 처하면서 고육지책으로 '가격 인상' 카드만 꺼내 들었다. 그러나 가격 인상의 역풍은 강했다. 소비자들의 발길이 줄었고, 인건비를 상쇄하기 위한 만큼의 가격 인상은 단행하지 못해 영업난은 회복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본 최저임금의 혼란은 컸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이도 많았다.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하다 최근 명동 인근에 창업을 했다는 서모씨는 "최저임금을 이렇게 올려놓고 근로시간은 52시간을 넘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서 사람을 더 뽑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대체 알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 의도와 달리 일자리 감소와 물가 인상, 체감경기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 종로와 을지로, 잠실, 강남 등을 둘러보며 취재한 결과,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상인들 30여명은 직원을 줄이거나,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경력자보다는 초보 아르바이트생 등을 채용했다고 답했다.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주문기 모습.

이와 더불어 '아르바이트생'을 몰아내는 무인주문기(키오스크) 도입이 급속히 확산되는 특징도 이곳 저곳에서 나타났다. 8일 오전에 방문한 강남역 일대 한 카페 등이 즐비한 골목 길에는 무인주문기를 들여놓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최저임금을 올려줄 필요가 없는 키오스크가 아르바이트생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

커피전문점에 키오스크를 설치한 한 사장은 "아르바이트 인건비 감당이 안돼 최근에 무인주문기를 들여놓게 됐다"며 "최저임금은 갈수록 오르는 데, 덩달아 임대료도 오르고 있어 무인주문기에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인근의 다른 커피전문점 사장은 "주문과 계산, 서빙을 담당하는 홀 직원을 줄이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일을 하며 버텼다"며 "그러나 다음달부터는 일을 도와준 동생이 사정상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돼 무인주문기를 들여놓을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바르다 김선생의 한 매장 안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주문기의 설명 안내.

한 분식 가게 사장은 "렌트비용이 월 10만원대여서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쓰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면서 "수백만원대에 달하는 무인주문기 구입이 어려운 가게들은 매달 렌트비를 납부하면서 기계를 빌려 쓰면된다"고 설명했다.

예비 창업자들 사이에서도 홀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식당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 예비 창업자는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으로 창업을 망설이는 경향이 짙은데,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전했다.

창업 관계자 역시 "홀 무인시스템은 인건비 절감으로 인한 수익상승을 이끌뿐만 아니라 주방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로 작은 공간에서의 효율성과 운영의 편의성으로 점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며 "무인시스템이 가속화되면서 점점 아르바이트생이 설자리는 좁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자영업자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 자영업자는 "상황이 이런데 설마 무작정 가겠냐"며 기자의 생각은 어떤지 말 좀 해달라며 오히려 역질문을 해왔다. 그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버틸 재간이 없다"며 "오히려 물가는 올랐고, 일자리는 감소하는 등 부작용이 심한데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저임금이 오른만큼 가격이 올라 물가가 요동치지 않겠냐"며 "당장 우리(가게)도 다음주부터 가격을 올릴 계획이고, 인근의 다른 식당들도 일찌감치 가격을 올린 곳도 많지만 곧 올릴 곳도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맥도날드의 무인결제기인 디지털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하는 사람들의 모습.

한국외식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격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는 외식업체는 조사 대상 전체 중 80%에 달했다. 조사는 3월1일부터 7일까지 전국 외식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재까지 메뉴 가격을 인상한 업체는 24.2%였고, 평균 인상률은 9.7%를 나타났다. 앞으로 메뉴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업체는 78.6%, 예상하는 평균 인상률은 18.4%로 조사됐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인건비 증가가 매출 감소의 직접 원인으로 볼 수 없지만, 인건비 증가가 종업원 감원 혹은 고용시간 단축을 야기해 매출 감소에 간접적으로 작용했을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종업원 인건비와 임대료, 식재료비, 배달 수수료 등 모든 비용이 인상됐기 때문에 기존 가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업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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