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부르는 대기정체..그 속에 기후변화 그림자

2018. 4. 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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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지구 온난화로 북극 얼음면적 감소
북극-동북아 기압배치에 이상 유발
위도간 온도차 낮아져 계절풍 약화

"2013년 중국 최악 스모그 사태
최소 45% 온실가스 배출 영향"
에너지 절약·육식 줄이기 등
기후변화 대책이 미세먼지 대책

[한겨레]

중국발 초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대로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시 모습. 김봉규 기자

“대기정체로 국내 대기오염물질이 축적되어…”, “유입된 국외 미세먼지와 대기정체로 국내 대기오염물질이 더해져…”.

국립환경과학원이 나쁨 등급 이상의 미세먼지 농도를 예보할 때 거의 예외없이 등장하는 단골 문구들이다. 이 문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가 ‘대기정체’다. 최근 미세먼지 경보가 자주 발령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됐다. 대기정체가 풀리면 미세먼지 농도도 낮아진다. 따라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언제 걷힐지 예보할 때는 으레 “대기확산이 원활하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처럼 고농도 미세먼지는 대기오염물질과 대기정체가 합작해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대기오염물질은 주로 화석연료 연소와 같은 인간의 활동에서 배출된다. 그러면 대기정체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기정체는 말 그대로 공기를 이동·확산시키는 바람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어떤 경우엔 대기 상층 온도가 하층 온도보다 더 높아져 공기 순환이 완전히 멈추는 경우도 있다. 바람은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정체라는 자연현상에도 이미 인간이 개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대기정체 현상 속의 인간 지문을 찾는 연구는 미세먼지가 특히 심한 중국의 과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겨울철 중국 동부 지역에 고농도 스모그를 자주 형성시키는 대기정체는 동아시아 겨울철 몬순(계절풍)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유라시아 대륙 중심부에서 동쪽 바다 방향으로 부는 이 북서계절풍의 약화가 대기정체를 낳는다는 것이다. 계절풍은 왜 약해질까?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지구 온난화에서 찾는다. 온난화로 북극해에서 햇빛을 반사하는 바다얼음 면적이 줄면서 북극해의 기온이 올라가고, 이것이 북극과 북동아시아 사이 기압 배치를 교란해 북서계절풍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기후변화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구체적으로 계산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대상은 2015년 12월 중국 북동부 징진지(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고농도 미세먼지 사태였다. 베이징을 비롯한 곳곳에서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기준(25㎍/㎥)의 20배인 500㎍/㎥ 이상 치솟았다. 당시 사나흘이 멀다 하고 고농도 미세먼지가 이어지자 언론은 ‘살인 스모그’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였다. 학교와 공장이 문을 닫고, 고속도로에선 미세먼지로 시야가 가려지는 바람에 차량 수십대가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과학자들은 이에 앞서 일어났던 2013년 1월의 비슷한 스모그 현상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난징대 연구진은 2월말 국제학술지 <지구물리학 리서치 레터>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의 활동은 이 두 시기에 고농도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대기 패턴이 발생할 가능성을 2013년 1월에는 45% 이상, 2015년 12월엔 27% 이상 증가시킨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다양한 기후모델에 인간 개입이 없는 조건과 있는 조건을 넣어 모의실험한 결과, 이런 변화가 주로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의해 유도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도 비슷한 논문이 실렸다. 난징대 랴오훙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1950~1999년의 지구 기후와 인간이 현재 상태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는 시나리오(RCP8.5)에서 2050~2099년에 예상되는 지구 기후의 변화를 15개 기후모델로 분석했다. 그 결과 2013년 1월처럼 고농도 스모그가 발생하기 좋은 기상 조건의 발생 빈도는 50%, 기간은 80%나 증가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대기오염물질 배출 억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록진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많은 연구자들이 ‘기후변화 페널티’라는 얘기를 한다”며 “실제로 우리가 배출량을 줄이더라도 기후변화 때문에 그것이 쌓일 수 있는 조건이 훨씬 더 많아져 미세먼지나 오존 농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북극 지역의 온도가 가장 빠르게 올라간다. 그러면 적도의 에너지를 극지방으로 옮겨 온도차를 줄여주는 중위도 저기압들의 역할이 필요없게 된다. 중위도 저기압이 안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대기 혼합이 안 된다는 말이다.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바람이 약해지거나 확산이 안 되는 현상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은 곧 미세먼지 줄이기와도 같다. 대표적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은 발전소, 공장, 자동차 등에서 석유나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들은 그대로 미세먼지나 오존 등 대기오염물질 배출원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화석에너지를 재생가능에너지로 대체해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는 것이 바로 공기의 질을 개선하는 활동인 셈이다. 일상생활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음식물 쓰레기 등 폐기물 배출과 육식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을 동시에 줄이는 가장 쉽고도 효과가 큰 세가지 실천 항목으로 꼽힌다.

세계농업기구(FAO)가 지난해 내놓은 ‘지구 가축 환경 평가 모델’(GLEAM) 자료를 보면 2010년 축산업 관련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같은해 인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490억 이산화탄소상당량톤)의 16.5%에 이르는 81억 이산화탄소상당량톤에 이른다. 이 가운데 육류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61%가 넘는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박훈 연구위원(에너지환경정책학 박사)은 “사료 생산과 비육, 가공 처리에 이르는 축산업의 전 과정과 가축의 생리작용까지 고려하면 인간이 고기를 먹기 위해 치르는 환경 비용이 너무나 크다. 더구나 축산은 에너지 사용을 통해 내보내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말고도 사료 경작과 분뇨 처리 과정에서 암모니아, 질소산화물 등 2차 미세먼지를 만드는 전구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주요 대기오염원”이라며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사람의 건강을 위해 육류 소비를 적극 줄여나가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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