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시 사람] "분리수거 잘 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국가가 먼저 나서라"

이동수 2018. 4. 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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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 인터뷰

“시민들에게 물 아껴 쓰라고 말하기 전에 산업 현장에서 펑펑 쓰는 것부터 막아야 해요. 쓰레기 문제도 마찬가지죠. 분리수거를 잘하라고 다그치기 전에 나라에서 먼저 정책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최근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쓰레기 대란’의 원인으로 ‘미성숙한 시민 의식’을 지적하는 일각의 시선에 이같이 반박했다.

김 총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경 문제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며 “국가적 정책이 담보돼야 국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왜 국가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가’라며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등을 폐지하는 등 ‘환경 적폐’도 한둘이 아니었다”고 보수정권의 환경 역주행을 꼬집기도 했다.

◆원전 영향 등 충격...대표적 2세대 환경운동가

김 총장은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연합시민단체 ‘자원순환사회연대’를 무려 18년째 이끌어온 국내의 대표적인 2세대 환경운동가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인 1987년쯤. 문화운동 중이던 김 총장은 팀 동료들과 함께 여러 차례 전남 영광의 원전 인근 지역을 찾았다. 노래를 비롯한 문화 감수성을 주민들에게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때 원전 직원의 아내가 방사능 피폭의 영향으로 무뇌아를 낳은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연탄공장 주변에 살던 주민들이 진폐증에 걸렸다는 보도까지 접하며 환경 문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아, 환경 문제가 정말 중요하구나.’

두 사건은 김 총장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제대로 된 환경정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7년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자원순환사회연대의 전신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에 합류했고, 2001년 1월부터 사무총장을 맡았다.

김 총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세계일보 본사에서 이뤄졌다. 그는 이날 재활용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가방에서 페트병 2개를 꺼내 보이기도 했다. 하나는 독일에서 직접 가져온 콜라 페트병, 다른 하나는 서울시 수돗물을 담은 ‘아리수’병이었다. 독일산 페트병은 외부가 잔뜩 긁힌 반면 아리수 페트병은 깔끔했다. 그는 “독일 페트병은 이미 10회 정도 재사용을 한 상태에요. 내부만 깨끗하게 세척하고 다시 새 내용물을 담아 판매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이런 페트병에 제품을 담아 팔면 소비자들이 과연 구매할까요? 군말 없는 독일 시민들이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시민 범법자 될수 없어...경기 유가 하락 등 원인”

―이번 ‘분리수거 대란’은 여러모로 충격이었는데.

“3월 중순부터 각 수도권의 아파트에서 폐비닐, 스티로폼 등은 분리배출하지 말고 종량제 봉투 속에 넣어 버리라고 공고문을 붙이며 발생했다. 재활용 수거 업체에서 4월1일부터 해당 품목 수거를 거부하겠다고 해 아파트 주민들이 혼란에 빠진 것이다.”

―폐비닐과 스티로폼은 원래 분리수거 대상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분리 배출해야 하는 품목이 굉장히 많다. 분리배출 품목의 기준은 재활용 가능한 제품이거나 굉장히 유해한, 안전 처리가 필요한 제품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비닐봉지와 스티로폼은 정부가 법으로 정한 분리배출 대상 품목이다. 하지만 재활용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수거를 거부하면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라고 했다. 수거 업체가 권한을 넘어선 요구를 한 것이다. 분리배출 대상 품목을 종량제 봉투에 넣으면 불법이다.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수거 업체 때문에 시민들이 범법자가 될 순 없는 것 아니냐.”

―‘쓰레기 대란’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가장 큰 원인은 국제 유가의 하락이다. 기름값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일 때는 재활용품이 돈이 된다. 유가 하락 이후에는 기름으로 신제품을 찍어내는 게 재활용보다 단가가 훨씬 싸졌다. 재활용품은 수거, 세척, 분류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해 비용이 많이 든다. 다음으로는 국제 경기 하락을 꼽을 수 있다. 경기가 좋으면 뭐든지 많이 만들고 많이 팔지만 세계적으로 경기가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제품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 시장마저 악화하면서 추가 생산이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이 전 세계에 공산품을 수출하려면 재활용 원료를 많이 수입해야 한다. 보통 한국, 유럽 등 기타 선진국 품목을 많이 수입했는데 불황으로 자국 내 재활용 원료가 소비되지 못하고 점점 쌓이게 됐다. 재활용 업체들은 줄줄이 도산했다. 중국 정부도 재활용 산업이 다 죽게 생겼다며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20% 이상 중국에 수출하던 국내 재활용 원료들이 갈 길을 잃은 거다.”

◆대란 아직 미봉...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야

―재활용 원료의 오염도가 대란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는데.

“이번 쓰레기 대란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중국에 들어가지 못한 선진국의 질 좋은 원료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당장 재활용 업체에선 질낮은 한국 원료를 안 쓰게 됐다. 당연히 폐지 등 원료 가격이 하락했고 재활용 업체 입장에선 수익성이 없어 수거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수거를 거부할 명분이 필요한데, 그동안 한국의 원료에 이물질이 많았음에도 업체가 수거를 해왔지만 더는 못하겠다는 핑곗거리를 찾은 거다. 하지만 재활용 업체에서 수거를 잘할 목적이 있었다면 막무가내로 수거를 중단할 게 아니라 분리배출을 잘해달라고 계속 요구했어야 한다.”

―정부와 재활용 업체간 협상으로 일단락됐지만 미봉책 아닌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금 아파트 주민들은 큰소리칠 수 있게끔 분리배출을 잘하는 방법밖엔 없다. 비닐봉지 등을 깨끗하게 내놓으면 수거 업체도 안 가져갈 핑계가 없어진다. 지자체도 업체에 예산 지원을 해줘야 한다. 요즘은 업체가 재활용 원료를 가져가도 톤당 10만원 정도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과 우선 구매 등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성장하기 힘든 산업이다. 하지만 한국 재활용 산업은 업체들이 알아서, 시장이 알아서 하라는 기조가 깔렸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게 이런 문제를 낳은 거다.”

―실용적으로 분리수거 팁이 있다면.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분리배출을 하면 된다.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떼어달라는 거다. 요즘은 홈쇼핑, 인터넷쇼핑이 활성화돼 박스 수요가 많다. 그 테이프를 떼어내야 재활용이 쉽다. 음식물 쓰레기는 한 가지 기준만 따르면 된다. ‘쓰레기를 퇴비나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닭 뼈, 돼지 갈비뼈 등은 사료도 퇴비도 안 된다. 그럴 경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면 된다. 구별이 까다로운 품목도 있다. 유리가 대표적이다. 일반 유리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요즘 나오는 전자레인지용 유리,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도 깨지지 않는 유리 등은 안된다.”

◆한국 재생산업은 편차...재생기술이 국가경쟁력

―한국의 재생, 재활용 산업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나.

“한국은 생산자책임 재활용 제도(EPR)라는 게 있다. 즉 생산자들이 제품을 만들 때 재활용에 대한 책임까지 지는 차원에서 비용을 내는 제도다. 대상이 되는 품목이 굉장히 많다. 모든 가전제품, 과자, 음료수, 라면, 기타 등등 포함되지 않는 게 없을 정도이다. EPR 대상 품목들의 재활용 수준은 우수한 편이다.”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적인 예는 종이다. 해외에선 A4용지를 수거, 분해해 똑같은 품질의 A4용지로 만들어내는 ‘천년 펄프’ 기술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A4용지를 모아 화장실 휴지를 만드는 정도다. 다시 A4용지로 만들어도 질이 떨어져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일쑤다. 자원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해외의 A4용지는 한 번 생산하면 몇십년 이상 사용하지만, 한국의 A4용지는 몇 번 못쓰고 폐기되는 것이다.”

―첨단 분야에선 수준 차이가 크다고 들었는데.

“휴대폰을 예로 들어보면 휴대폰 안에는 귀금속, 희귀 금속 등이 45종이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희귀 금속이 희토류인데,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 일본은 수십 년 동안 휴대폰에서 희귀 금속 45종 대다수를 추출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금·은·동·구리 등 눈에 보이는 금속만 빼내는 수준에 멈춰 있다. 한국은 금속을 추출한 뒤 남은 휴대폰을 일본에 돈을 주고 수출해야 한다. 일본에선 그 휴대폰으로 온갖 희귀 금속을 다 뽑아내 다시 한국에 금보다 비싼 가격으로 되판다.”

―휴대폰 강국인 한국에게는 꼭 필요한 기술인 것 같다.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은 고급 재활용 기술이 없다’고 단적으로 말하고 싶다. 자원은 점차 고갈된다. 누가 어떤 자원 재생 기술을 가졌느냐가 앞으로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기준이다. 지금 끼고 있는 안경을 다시 안경으로 만들고, 지금 보는 원고도 다시 종이로 만들어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은 정부가 자원 재생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방향으로 압박해줬으면 한다.(웃음)”

◆“투자는 정치몫…이명박 정권의 환경적폐 많아”

―한국은 왜 재생, 재활용산업 분야에 투자를 안 했는가.

“(웃으며) 정치가 판단할 부분이라 잘 모르겠다. 재활용은 사람들이 낮춰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재생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산업이고 선진국들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기 위해 수조원을 투자하고 있다.”

―한국은 재생, 재활용 정책이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지난 10년간 많은 정책이 폐지되거나 규제가 완화됐다. 2007년 정도까지만 해도 한국의 재활용 정책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독일, 일본 등의 좋은 정책을 연구해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했고 많은 부분이 반영됐다. 당시 한국에 도입된 여러 정책을 영국, 프랑스 등은 이제야 채택하지 않는가.”

―지난 10년이라면 보수정권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이명박 정부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손을 본 것이 바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였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일회용 컵을 줄이기 위해 보증금 제도를 건의했고 2003년 도입돼 사용량이 50%나 줄었다. 획기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왜 국가가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가, 미국도 일본도 안 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증금 제도를 폐지했다. 이명박 정권의 ‘환경 적폐’가 한둘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은 항상 ‘경제 성장에 주력해야 하는데 왜 환경이 경제를 가로막느냐’고 주장했다. 환경 정책이 일회용품을 파는 사람들을 망하게 한다는 논리다. 대통령치고는 참 소소하신 분이었다.(웃음)”

―한국이 참고할 만한 나라는.

“전 세계 재활용, 재생산업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독일이다. 원천기술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 시민 의식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페트병 재사용 사례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그걸 거부감 없이 구매하는 시민들도 대단하다. 자원순환사회연대가 나라별 연간 1인당 비닐봉지 배출량을 계산해봤다. 한국에서 비닐봉지를 만드는 원자재 생산량을 국민 수로 나누면 1인당 420장 정도이다. 수입 원자재는 통계를 낼 수 없어 빠졌으니 실제 사용량은 훨씬 많을 거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독일은 1인당 사용량이 50장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 전체로 확대하면 1인당 200장 정도다. 그런 EU는 10년 내로 1인당 50장 내외로 저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쇼핑백 보증금제 성과...환경운동가로 정년 맞고파”

―언제부터 환경이나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대학 졸업하고 문화 운동을 했는데, 1987년쯤 전남 영광 핵발전소 주변에 팀 동료들과 함께 몇차례 갔다. 그런데 한 직원 부인이 방사능 피폭 영향으로 뇌가 없는 무뇌아를 낳는 모습 등을 보고 충격받았다. 또 연탄공장 주변에 살던 주민이 진폐증 걸렸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환경 문제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제대로된 정책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연대’에서 일하게 됐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1997년 전국 180개 단체가 모여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만든 조직이었다. 당시 대규모 폭우가 쏟아지면서 계곡마다 쓰레기가 쌓여 댐 등에서 완전 산처럼 쌓였다. 이런 문제는 시민 의식이 중요하겠다 싶어 환경단체 대표들이 모여 얘기했다. 저도 그린스카우트라는 단체 소속으로 참여했는데 ‘모임을 맡아달라’고 해 활동하게 된 거다. 조직을 만들고 난 뒤 가장 큰 성과라면 쇼핑백 보증금 제도였다. 비닐봉투 너무 사용하니 공짜로 나눠주지 말자고 해 정부에게 법으로 만들라고 압박해 이뤄진 제도다. 두번쨰는 컵 보증금 제도였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커피 전문점 패스트푸드점이 엄청 들어오는 상황에서 정부에 제안했다. 공짜로 주지 말고 종이컵을 구매하게 하라고 한 거다. 현재 역점 사업은 ‘자원순환마을 만들기’이다. 하나의 마을 대상으로 모든 쓰레기를 제로화하고 분리 배출을 하는 사업으로, 7년째7개 마을에서 실시 중이다.”

―10년 뒤 모습을 상상한다면.

“여러 군데에서 스카웃 제의가 많이 온다. 정권 성향에 관계없이 제안이 오는 부문이 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꿈은 환경운동가로 정년퇴직하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면서 정년퇴직을 못하고 있다. 생활고 때문에 직업을 바꾸기도 하고 더 큰 뜻으로 정치를 하기도 한다. 2세대 가운데 현장에 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곳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

김용출·이동수 기자 kimgija@segye.com

■김미화 사무총장 프로필


▲경북 출생(1960) ▲공해추방운동연합 문화담당, 그린스카우트 기획실장 등 역임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2001∼현재) ▲저서 <티셔츠가 된 페트병> <에코프렌즈 자원순환을 이야기 하자>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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