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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드라마 제작 풍토가 방송 적폐, 고쳐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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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재 "드라마 제작 풍토가 방송 적폐, 고쳐져야"

    [노컷 인터뷰] '덕구' 덕구 할배 역 이순재 ②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덕구'에서 덕구 할배 역을 맡은 배우 이순재 (사진=영화사 두둥 제공)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덕구'(감독 방수인)에서 덕구 할배로 분한 배우 이순재에게 이 영화는 129번째(포털 다음 기준) 작품이었다. 현재 활동 중인 웬만한 배우들의 탄생 전부터 무대에서,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에서 연기해 왔던 그는 '하고 싶어서', 62년 연기 인생을 이어왔다.

    누군가에게는 여유롭게 지낼 수도 있는 노년기에도 쉬지 않는 이유를 물어도 "쉬면 할 일이 없다. 우리 또래 친구들이 있으면 좋은데 다 없으니까"라는 담담한 답이 돌아왔다. 어려울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라서일까. 1시간가량의 인터뷰에서 그는 좀처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덕구' 개봉을 앞두고 배우 이순재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여전히 하고 싶은 역할을 마음에 품은 '현역'이면서, 업계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독설가'이자, 부지런히 후배를 양성하는 '선생님'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컷 인터뷰 ① '덕구' 분량 90% 차지한 이순재 "힘 안 들었다, 신나서")

    ◇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대원군'

    영화 129편, TV 프로그램 106편, 공연 59편(포털 다음 기준)에 출연해 온 이순재가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무엇일까. 그는 1982년 KBS 1TV에서 방송된 사극 '풍운'의 대원군 역을 들었다. 김영애가 명성황후 역을, 박칠용이 고종 역을, 장민호가 김좌근 역을, 임혁이 철종 역을 맡은 드라마였다.

    "역점을 뒀던 건 82년에 했던 대원군 역할이에요. 보통은 대원군을 큰 사람이 했어요. 정치적인 스케일 때문에. 원래 단구(체구가 작은)였죠. 그런데 인생 역정은 참 복잡한 사람이었어요. 세력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서 참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인간사로 봤을 땐 상당히 드라마틱한 인물이었죠. 왜 그런 걸 영화로 안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 후론 대원군을 (중점적으로) 다룬 드라마가 없을 겁니다. 아무튼 (대원군 역을) 제대로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때 담배도 끊어버렸죠."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순재는 데뷔 초부터 노인 역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키가 작아서 배역에 제한도 많았다고. 그런 그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역은 바로 '햄릿'이다.

    이순재는 "햄릿은 선망의 역할인데 타이밍을 놓쳤다. 키도 작고 노역만 하다 보니 나만 못 해 봤다고. 만약 했다면 해석을 달리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남들이 못했던 것 중에 시라노 역할은 했다"고 말했다.

    영화 쪽으로는 해 보고 싶은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는 뭐 안 해 본 장르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라고 반문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는 "아,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 액션 영화는 안 해 본 것 같다. 거지 역할도 안 해 봤다"고 답했다.

    ◇ "전 세계에 이렇게 드라마 만드는 데가 없다"

    오랜 시간 다양한 현장을 경험한 이순재는 업계에 대한 날 선 비판도 피하지 않았다. 특히 드라마 제작 풍토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영화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드라마는 고쳐야 된다"며 "방송 적폐가 바로 드라마 제작 풍토라고. 전 세계에 이렇게 드라마 만드는 데가 없다"는 게 그의 일침이다.

    이순재는 "드라마는 우리끼리 보고 없애는 소모품이 아니다. 생산품을 이렇게 만들어서 경쟁하겠나. 심기일전해서 모든 역량을 발휘해도 부족한데"라고 말했다.

    이어, "주인공을 맡으면 매일 밤을 새워야 한다. 대사를 충분히 외울 시간이 안 된다고. 다 외워서 해도 될까 말까인데 간신히 대사 외워서 무슨 연기가 나오냔 말이다. 이런 풍토를 만든 게 잘못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순재는 최근 3년 동안 한 해에 드라마를 2~3편씩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위쪽부터 '라이브' 오양촌 아버지, '돈꽃' 장국환, '그래, 그런거야' 유종철 (사진=각 방송 캡처)

     

    또한 이순재는 작품을 한다는 게 '공동 작업'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불평을 얘기할 순 있다. 그러나 일단 현장에 나왔으면 (그것마저) 감안하고 나온 것 아니냐는 말이다. 자기 불만을 얘기하더라도 현장에서 수용 안 된다면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건) 자기 혼자의 작업이 아니다. 전체의 작업이다. 현장에 적응해야지, '난 안 해' 이러고 내빼면 안 된다는 거다. 우리로선 용납이 안 되기도 하고"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엉뚱한 짓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 모양이더라. 모든 직종이 마찬가지지만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자기를 절제하는 힘을 가져야 해요. 잘못하면 자기를 과시하게 되죠. 그건 뭐가 모자란 거예요. 모자라서 그런 겁니다.

    '아, 이 정도면 나는 최고의 배우다. 이만하면 내가 대한민국의 최고지' 하는 자의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을 바깥에 가지고 나오면 안 돼요. 방구석에서 생각해야지. 연기에는 완성이 없어요, 끝이 없고. 어느 수준으로 잘할 수는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얼마든지 높은 경지가 있다는 거예요.

    세상엔 반드시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교훈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분야도 마찬가집니다. 작품보다 잘하는 사람, 작품만큼 하는 사람, 작품보다 못하는 사람. 배우는 작품보다 잘하는 경지로 가야 자기 연기에 창조력과 예술성이 생겨요."

    ◇ "할 일이 있으니 힘들지 않다"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언급한 그 환경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이순재는 힘들지 않으냐는 물음에 "할 일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작품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그는 강단에도 선다. 보통 '얼굴만 비쳐도 되는' 석좌교수임에도 이순재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으로 워크샵을 하고 있다.

    이순재는 "이왕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나. 우리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매일 나와서 한 작품을 연습한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 왔다. '저스틴', '업' 등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목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김정호, '모두들, 괜찮아요?'의 원조,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김만석 (사진=각 영화 배급사 캡처)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건 화술이에요. 연기는 말로부터 시작돼요. 언어부터. 근데 영화나 TV나 언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요. 대사를 가르쳐 주는 연출가가 별로 없죠. 우리는 언어부터 배웠어요. 배우는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배우는 어떤 말을 어디서 하더라도 관객이 다 알아들어야 하거든요. 표준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갖춰야 해요."

    그럼 이순재는 언제 쉴까. 그는 "쉬면 할 일이 없다. 또래 친구들이 있어야 하는데 다 없으니까. 살아있다면 같이 놀고 그럴 텐데…"라고 말했다. 쉴 시간이 생기면 TV를 주로 본다고. 골프에 관심이 많다 보니 LPGA 성적이 어떤지를 보고 영화를 본다.

    ◇ 62년 연기 인생 돌아보니… "후회는 없다"

    이순재는 과거 인터뷰에서 모든 작품이 유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임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부분을 언급하자 "유작이라는 말은 좀 그렇고, 내 욕심 같았으면 또 했으면 좋겠지만 안 되니까… 내 나이에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나. 하지만 자기 존재의 의미만 살면 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배우 생활은 어떻게 바라볼까. 간명한 답이 뒤따랐다. "후회는 없다"고. 그는 "시작할 때 어려움을 각오하고 나온 거니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지. 나는 불행을 느끼거나 하진 않았다. 그랬으면 전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세기 넘게 연기에 몰두해 온 이순재는 자신의 지난 삶을 "불행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바람은 모처럼 나온 영화 '덕구'가 잘 되는 것이다. 따뜻한 영화이니만큼 많은 관심을 부탁하고, 좋은 기사 부탁드린다는 게 그의 마무리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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