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10년 전 괴담에 홀로 맞섰던 학자, 그가 옳았다

박돈규 기자 2018. 4. 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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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 "광우병 사태는 과학과 전문가를 믿지 않아 벌어진 일"
"괴담, 지금껏 잘못 시인하고 사과한 사람 없어.. 제대로 정리 안하면 또 나올 것"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뻥뻥 뚫린다’ 같은 광우병 괴담들이 2008년 봄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촛불 집회가 석 달 넘게 이어지며 국정은 마비되다시피 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당시 “광우병은 이미 사라지는 단계”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는 “과학과 전문가를 믿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며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가면 그런 괴담은 또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성형주 기자

2008년 봄 한국을 송두리째 뒤흔든 괴담은 추방된 지 오래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광우병(BSE) 위험 평가에서 미국과 호주·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를 '청정'(Negligible BSE risk)으로 분류하고 있다. 무시해도 될 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다. 1992년 3만7316건에 달했던 세계 광우병 발생은 꾸준히 줄어 2015년 7건, 2016년 2건에 그쳤다.

미국산 쇠고기는 괴담으로부터 명예를 회복했다. 지난해 국내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호주산을 제치고 14년 만에 1위(수입량 17만7445t)를 탈환했다. 한·미 FTA에 따른 관세율 인하로 싸졌고 안전에 대한 우려도 없어진 덕이다. 광우병은 신종플루나 메르스에 비하면 잘 통제돼 있고 훨씬 덜 위험하다.

"광우병은 원인이 밝혀졌기 때문에 곧 소멸될 질병이라고 제가 그랬지요. 학자적 양심을 걸고 한 말입니다."

이영순(74) 서울대 수의대 명예교수는 10년 전으로 돌아간 표정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그는 "미국 쇠고기 먹어도 광우병에 안 걸린다"고 했다가 '관변 학자'라는 조롱을 들었다.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만난 이 교수는 "통계가 증명하듯이 광우병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학자든 연예인이든 언론인이든) 광우병 공포를 확대·재생산했다가 잘못을 늦게라도 시인하고 사과한 사람은 없다시피 하다"고 했다.

광우병 사태, 무엇이 문제였나

이영순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중 유일한 수의학자다. 수의병리학 전문가로 한국실험동물학회장, 한국독성회장을 지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너무 압도적인 표 차이(531만표)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더 조심했을 텐데"라며 "취임하자마자 2008년 4월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할 때 걱정했다"고 말했다.

―어떤 근심이었나요.

"노무현 정부는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만 수입했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때마다 모두 네 번 수입 금지 조치를 했습니다. MB는 장사 좀 해본 사람 아닙니까.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이걸 줄 테니 저걸 달라'식으로 협상하다 쇠고기를 양보하면 어쩌나, 그건 막아야겠다 했지요.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모든 연령의 쇠고기를 다 수입하라고 압박할 수 있는데 당장은 안 된다'는 문건을 3월에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전했어요. 청와대에 전달됐는지 모르겠지만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지요."

―2008년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가 발표됐는데, 30개월령 이상까지 풀었고 뼈도 수입할 수 있게 됐지요.

"통상 전문가들 의견을 중시하며 다른 데서 이득을 보려다 사달이 난 거예요. 일본은 20개월, 대만·중국도 30개월 미만만 수입하던 시절입니다. 그 나라들은 바보라서 그랬겠어요? 국민 정서에 어긋났죠. 육법전서 밖에 있는 '떼법'을 건드린 겁니다."

―MBC 'PD수첩'으로 공포가 확산됐고, 대규모 촛불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매스컴이 국민을 자극했죠. 왜 우리만 굴복했느냐, 울분으로 시위에 나간 분들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사람이 죽는다는 괴담이 번졌어요. 시위대가 대통령 하야까지 요구했잖아요. 빌미를 준 건 MB 잘못이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습니다."(대법원은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에 걸렸다' '주저앉는 소는 모두 광우병에 걸린 소다' '한국인의 94%가 광우병 걸릴 위험이 있다'는 PD수첩 보도에 대해 허위이거나 과장·왜곡이라고 판결했다.)

―그해 5월 초 과학기술한림원 토론회에서 광우병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셨지요?

"괴담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과학계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련된 자리입니다. 나가 보니 청중 대부분이 기자였어요."


―그날 뭐라고 말했습니까.

“미국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했어요. 재앙을 일으킨 육골분 사료를 금지한 지 10~20년 됐고, 잠복기(5~10년)나 발생 추이를 봐도 광우병이 사실상 사라지던 시점입니다. 걱정할 이유가 없었죠. 식품은 99.99% 안전하다면 안전한 거예요.”

―0.01% 위험은 감수하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먹거리 문제에 과민한 건 알지만 식품 안전엔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100%가 존재할 수 없어요. 어쩌다 탈이 날 수 있으니까요. 100% 안전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하면 우리가 먹을 게 없습니다.”

―교수님 견해에 반대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국내에 광우병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어요. 발병한 적이 없으니 연구도 안 돼 있었죠. 저는 당시 인수공통질병연구소장이었습니다. 괴담에 휘청거리는 국민을 잡아줘야 한다는 책임감, 학자적 양심으로 나섰지요. 반대편에 섰던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제자인데, 저를 (MB 정부 감싸고 도는) ‘관변 학자’라 공격했습니다.”

―근년 들어 광우병 얘기를 나누신 적이 있는지요.

“그럴 일이 없죠. 광우병이 더 이상 사회문제가 되질 않으니까. 우리 국민은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를 더 좋아합니다. 저처럼 확신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지요.”

“비전문가들이 퍼뜨린 황당한 괴담”

소를 도축하면 살코기가 40%, 뼈·골·내장이 60% 나온다. 서양인들은 살코기만 먹는다. 1972년 영국에서 뼈·골·내장을 버릴 장소며 비용이 문제가 되자 그것을 갈아서 육골분으로 만들었다. 소에게 사료로 먹였는데 살이 더 찌고 젖도 잘 나왔다. 1986년에 이르자 광우병이 집단 발생하면서 사태가 시작됐다.

―영국에서만 발병했나요?

“육골분을 집중적으로 먹였으니까요. 캐나다·일본을 비롯해 영국에서 그 사료를 수입한 나라들에서도 광우병이 발병했지요. 한국은 뼛가루만 수입해 도자기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본(bone) 차이나’라 불러요. 골분이 들어가야 접시가 잘 안 깨지고 소리도 좋아요.”

―한국 축산업자들이 육골분을 안 먹인 게 확실합니까.

“역추적해도 모호한 부분이 남지만 여태껏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잖아요. 영국에서는 1988년부터 동물성 사료를 금지했어요(유럽 전역에 금지된 것은 2001년).”

―인간광우병(vCJD)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생했나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은 원래 사람한테 있는 질병이에요. 100만명당 한 명꼴로 자연 발생합니다. 돌연변이죠. 55~70세에 나타나는데 평생 같이 산 사람도 괜찮을 만큼 전염성은 없어요. vCJD는 광우병 소가 원인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영국에서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딸과 함께 스테이크·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안심하라’고 한 게 국가적 실책이었지요. 당시 햄버거 패티는 잡고기로 만들었고, 잘 붙으라고 골을 갈아 넣었거든요. 광우병 소의 SRM(특정 위험 물질)이 들어간 겁니다. 인간광우병은 영국에서만 1994년부터 170여명이 발병했어요(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가장 최근 발병한 사례도 2016년 영국).”

이영순 교수가 2008년 5월 8일 열린 ‘광우병과 쇠고기의 안전성’ 토론회에서 “광우병이 사라지고 있다”는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주완중 기자

―SRM도 쉽게 설명해주신다면.

“광우병 원인체인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다량 검출되는 부위를 지칭해요. 소가 오염된 변형 프리온 단백질을 먹으면 편도를 따라 직접 뇌·척수로도 가지만 대부분은 회장 쪽에서 흡수돼 신경계로 이동합니다. 불안 증세를 보이고 뒷다리를 떨면서 쓰러지는 광우병 소라도 고기와 젖은 괜찮아요. 변형 프리온은 늙은 소에만 축적되기 때문에 30개월 미만인 경우 편도·회장(回腸)만 안 먹으면 됩니다. 30개월 이상인 소는 뇌·눈·머리뼈·등골까지 먹지 말아야죠.”

―‘광우병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나요?

“악플들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아들·딸에게 ‘그거 다 헛소리다. 아비가 너한테 거짓말하겠느냐’며 안심시켰어요. 이 나라에선 정부를 비판해야 정의롭고, 두둔하면 불의한 사람으로 찍히곤 합니다.”

―팩트가 적으면 오피니언이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괴담은 비전문가들이 퍼뜨린 겁니다. 국민을 선동하고 오도(誤導)했죠. 어느 여배우는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 했고요. 주부들이 유모차 끌고 사위에 참여했습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다 끝난 광우병 가지고 너희 나라는 왜 그러냐?’ 물었어요. 저라도 바른말을 해야 했습니다.”

‘식품 안전’보다 ‘식품 안심’이 중요해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 비준 여건을 만들려고 쇠고기 시장을 열어줬다가 역풍을 맞았다. 악의적인 괴담으로 국내 여론이 더 악화됐다. 미국과 추가 협상을 해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만 수입(SRM 제외)하기로 하자 촛불 시위가 수그러들었다.

―정부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MB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울 일이 아니었죠. 당당하게 ‘미국 쇠고기 모든 연령을 다 수입해도 그걸 먹고 광우병에 걸리진 않는다는 게 학계 의견이다. 그런데 국민이 반대한다면 재협상을 하겠다’고 톡 까놓고 얘기했어야 해요. 정서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냉철하게.”

―학자로서 외로웠겠군요.

“굉장히요. ‘관변 학자’라고 공격받는데, 제가 김대중 정부 때 식약청장을 한 사람입니다. ‘죽음의 향연’을 쓴 퓰리처상 수상자 리처드 로즈가 힘이 돼 줬지요.”

―리처드 로즈요?

“1997년 광우병 위험을 지적하고 ‘2015년이면 세계에서 수십만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며 대재앙을 경고한 과학 저술가입니다. 그가 2008년 8월에 ‘미국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담배 한 개비로 암에 걸리거나 벼락을 맞을 확률보다 낮을 것’이라며 입장을 바꿨어요. 조치가 잘 돼 광우병은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할 거라고요.”

―요즘에도 광우병을 걱정하는 학자가 있나요?

“있다 한들 누가 동조하겠어요. ‘왕따’를 자처하는 짓이죠. 2008년에도 발병은 기하급수적으로 줄던 때입니다. 미국은 광우병 소를 도축 과정에서 잡아내 푸드체인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나라고요. 최근에 미국에서 나온 광우병은 비정형(非定型), 즉 노화 과정에서 돌연변이로 발생한 것뿐이에요.”

―어떤 사건은 우리에게 성찰할 기회를 줍니다.

“광우병은 소에게 동족의 고기(육골분)를 먹인 게 잘못이에요. 생태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인간이 윤리를 지키지 않는 한 인수 공통 전염병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요.”

―광우병 트라우마를 가진 국민이 아직도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를 못 믿는 분들에겐 뭐라 말하겠습니까.

“말해 뭐해요. 자기 선택이니까 한우를 먹든 알아서 하겠죠.”

―식품이 0.01%라도 위험할 수 있다면 가족에겐 못 먹이겠다는 어머니도 있을 텐데요.

“세상에 100% 안전한 게 있을까요? ‘식품 안전’보다 중요한 게 ‘식품 안심’이에요. 비행기가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안심하고 타잖아요. 똑같습니다.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구조를 만드는 게 위생학자들의 임무예요.”

광우병 괴담 같은 소모적인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과학과 전문가를 믿어야 한다”면서 덧붙였다. “우리 국민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인데, 그게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부정적일 때가 많지요. 잘못을 좀처럼 인정 안 합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제대로 매듭짓지 않고 가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정의를 세울 수 있다. 정의나 의심 위에 사실을 세우려고 하면 무너져버린다. 10년 전 광우병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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