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봐주고 남성만 처벌"..매춘 근절될까

한정수 기자 2018. 4. 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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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Law&Life-팔면 '무죄', 사면 '유죄'? ①] 성 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 靑 청원.."성매매 근절 효과" vs "부작용 우려"


"왜 성을 파는 사람만 봐주자고 하나요? 당연히 모두 처벌하는 게 맞지 않아요? 완전 어이 없네."
"성매매 자주 하시나…어차피 성매매 불법인데 누가 처벌받든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 화를 내시지?"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와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북유럽) 모델'을 도입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이 청원은 청와대가 답변을 약속한 최소 요건인 20만명의 참여를 채우지 못하고 8만여명 수준에서 마감됐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논의를 촉발시키기엔 충분했다. 성매매 근절을 위해 노르딕 모델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형평성에 맞지 않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노르딕 모델은 1999년 스웨덴에서 제정된 '성구매행위법'(Sex Purchase Act)이 시초다. 이후 프랑스, 캐나다, 아일랜드 등이 이 모델을 도입했다. 성매매를 알선하는 포주와 성구매자만 형사처벌하고 성을 파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면제하는 것이 골자다. 또 성을 파는 사람에겐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거·법률·교육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렇게 하면 처벌받지 않은 성판매자들이 성매매 수사에 협조하면서 성매수자를 처벌하기 쉬워져 성매수자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개 성구매자는 남성, 성판매자는 여성이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둘 다 처벌하면 못 잡는다"

노르딕 모델은 성매매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수요에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수요를 차단하면 성매매를 줄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렸다. 실제로 스웨덴에선 노르딕 모델이 도입된 1999년 이후 2008년까지 성판매자가 최대 75% 줄고, 최근 성구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의 비율도 14%에서 8%로 감소했다.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도 크게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통상 수요가 줄면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면 보상이 낮아지는 만큼 공급도 줄어든다. 성매매 시장에서도 성구매자가 줄어들면 화대가 떨어지니 성판매자 입장에서도 성을 팔 유인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론 가격이 떨어지면 다시 수요가 늘어나지만 노르딕 모델에선 처벌 위험이 수요를 억누르고 있는 만큼 가격인하가 곧장 수요 확대로 이어지진 않는다.

노르딕 모델이 도입되면 경찰 등 수사당국의 성매매 수사는 한층 용이해진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지금은 성을 파는 사람이 '나도 처벌받는다'는 점을 의식해 성매매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며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성매매를 근절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정보 부서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도 "기존의 성매매 수사는 양측이 범죄 사실을 숨기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르딕 모델이 도입되면 성을 파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수사 단서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노르딕 모델이 형평성에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다는 게 법조인들의 판단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미 해외 입법사례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이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성매매 근절에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근거만 있다면 형사정책적 판단에 의해 충분히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발적 성매매도 처벌 안한다?…"사회적 합의 필요"

그러나 노르딕 모델 도입 이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매매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성매매 과정에서 당사자들 사이에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르딕 모델에선 성구매자만 처벌되는 만큼 성매매가 일단 이뤄지면 성판매자는 구매자의 약점을 잡게 된다. 이 약점을 활용해 공갈·협박 등의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성구매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입을 막기 위해 폭력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진다. 일각에선 성매매가 어렵게 될 경우 자칫 성폭행 등 다른 성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노르딕 모델 도입으로 성구매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쉬워질 경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2004년 '성매매 특별법'으로 불리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 오피스텔 성매매 등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성매매가 늘어났다. 이밖에 키스방 등으로 대표되는 신·변종 유사성매매 업소들도 창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성매매 산업이 매우 복잡·다양하게 진화했다는 점에서 노르딕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발적 성판매자까지 처벌을 면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도 해소돼야 할 문제다. 처음 노르딕 모델을 도입한 스웨덴의 경우엔 당시 성판매자의 대부분이 비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뛰어든 취약계층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자발적 성판매자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되는지에 대해 제대로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성매매는 불법이라는 전제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성을 파는 사람에 대한 처벌만 면하게 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자는 주장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논란이 있는 만큼 제도화 이전에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수 기자 jeongsu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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