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나라가 망친 내 인생 돌려 달라" 40~90년대 국가에 강제로 불임수술 당한 일본인들의 절규

이영희 입력 2018. 4. 7. 02:01 수정 2018. 4. 7.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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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이를 좋아했는데,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야 제가 중학생 때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東京) 시내의 한 기자회견장,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남성이 마이크 앞에서 평생 자신을 괴롭혀 온 아픔을 털어놓았다. 그는 1957년 센다이(仙台)의 아동보호 시설에 입소해 있던 당시 시설 직원에게 이끌려 간 근처 병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는 수술이란 사실을 누구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지난 달 25일 일본 도쿄 시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남성이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노인이 되고 나서 병원에 갔다가 하복부에 불임 수술이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나에게 확인해보니 “그런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과거 일본 정부가 시행했던 강제 불임 수술의 피해자인 걸 알게 된 그는 5년 전 병상에 누운 아내에게 고백했다. “이런 몸으로 결혼해서 미안해.” 책망의 말 없이 “내가 없어도 밥 잘 챙겨 먹으라”고만 하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그는 정부에 소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나라가 망쳐 놓은 나의 몸, 나의 인생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우생보호법’으로 48년 간 1만 6000여 명 강제 수술

일본에서 1948년 제정돼 1996년에 없어진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에 의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올해 초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 법은 유대인 말살을 위해 만들어진 나치 독일의 ‘단종법(斷種法)’의 영향을 받아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지적 장애인이나 유전성 질환자, 한센병 환자 등에게 본인의 동의와 상관없이 강제 불임 수술을 실시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우생보호법에 기반해 진행된 수술 건수는 총 2만 5000여 건, 이 중 본인의 동의 없는 강제 수술 건수는 자료가 남아있는 것만 1만 6475건에 이른다. 여성이 70%, 남성이 30%다.
지난 1월 30일 과거 일본의 우생보호법으로 불임 수술을 받은 여성의 변호인들이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台)시 거리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 1월 강제 수술의 피해자인 60대 여성이 국가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 964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센다이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그동안 피해 사례에 대한 보도 등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 여성이 처음이다. 여성은 15세였던 1972년 정신 장애를 이유로 지역 병원에서 강제 불임수술을 당했다.

3월 27일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여성의 변호인단은 “피해자는 어릴 적 마취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였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우생보호 심사단’의 판단으로 강제 수술을 받게 됐다”며 “이를 가능케 한 우생보호법은 자기 결정권 및 개인 존엄,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수술을 받은 후 오래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약속한 상대에게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신체 구속하고 마취약 사용하는 경우도

이 법은 1996년이 되어서야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장애인 불임 수술 항목을 없애고 ‘모체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꿨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던 탓에 개정 이후에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아사히 신문이 최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당시 후생성의 자료를 보면, 이 수술이 얼마나 강압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962년 후생성 공중위생국장이 아이치(愛知)현에 보낸 문서에는 본인과 친족이 수술을 거부하는 상황일 경우, “몸을 구속하거나 속여서 수술을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마취약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집요하게 괴롭혔다. 시가(滋賀)현 자료에는 1971년 수술 대상자였던 20대 여성에 대해 “보호자의 무지몽매로 수술을 거부하고 있으나 관계자들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농번기가 지난 후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다. 가장 많은 수술 건수(2593건)를 가진 홋카이도(北海道)는 1950년대 “우생수술 1000건 돌파” “전국 1위 실적”을 자랑하는 팜플렛을 만들어 다른 지자체에 뿌리기도 했다.
홋카이도현이 만든 불임 수술 관련 보고 자료. [ANN 뉴스 캡처]
불임 수술을 받은 이들 중 최소 2337명이 미성년자였다. 미야기(宮城)현에 남아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에선 9살 소녀(2명),10살 소년(1명)까지 수술을 받았다. 여아들은 난관을 묶는 개복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우생보호 심사단’의 판단은 정교하지 않았다. 이달 초 기자회견을 연 남성의 경우, 정신적인 문제가 없었음에도 보호 시설에 있다는 이유 만으로 끌려가 수술을 당했다. 선천성 질환자가 아닌 후천적 장애인들도 수술 대상이 됐다.


비슷한 법 있던 독일이나 스웨덴은 국가가 사죄·보상

후생노동법이 참고했던 독일의 단종법은 ‘유전질환 자손 방지를 위한 법률’이 정식 명칭이다. 1933년 나치 독일이 만든 이 법으로 인해 약 4만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당했다. 독일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5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시작했다. 1975년까지 비슷한 제도를 유지했던 스웨덴은 97년에야 피해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99년에 관련 보상 법안이 제정됐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시민 단체 등의 문제 제기에도 “당시에는 합법적인 수술이었다”며 피해 보상을 거부해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는 1998년과 2008년, 그리고 2014년 3차례에 걸쳐 우생보호법에 따라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2016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 정부에 강제 불임 시술을 행한 모든 피해자들에게 법적 구제책을 제공하고 보상과 재활 서비스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나 일본 정부는 무시했다.

올해 들어 이 문제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 구제 법안을 논의하는 초당파 의원연대가 2월 발족했으며, 후생성도 이달 실태 조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관련 서류가 폐기된 경우가 많아 1만 6475건의 피해 사례 중 수술 받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아사히 신문은 “국회가 구제 법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태 조사 및 구제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피해자들의 절규는 계속되고 있다. 각 지역 변호사 협회가 설치한 상담 전화를 통해 3월 말까지 34건의 불임 수술 관련 사례가 접수됐으며, 이 중 본인이 직접 전화한 경우도 14건에 달했다. 이 중 여성 2명, 남성 2명이 피해배상 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어,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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