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나라가 망친 내 인생 돌려 달라" 40~90년대 국가에 강제로 불임수술 당한 일본인들의 절규
“아내가 아이를 좋아했는데, 임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야 제가 중학생 때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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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보호법’으로 48년 간 1만 6000여 명 강제 수술
3월 27일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여성의 변호인단은 “피해자는 어릴 적 마취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였는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우생보호 심사단’의 판단으로 강제 수술을 받게 됐다”며 “이를 가능케 한 우생보호법은 자기 결정권 및 개인 존엄, 행복 추구권을 보장한 일본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수술을 받은 후 오래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약속한 상대에게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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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구속하고 마취약 사용하는 경우도
이 법은 1996년이 되어서야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장애인 불임 수술 항목을 없애고 ‘모체보호법’으로 이름을 바꿨다. 피해자들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던 탓에 개정 이후에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아사히 신문이 최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한 당시 후생성의 자료를 보면, 이 수술이 얼마나 강압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962년 후생성 공중위생국장이 아이치(愛知)현에 보낸 문서에는 본인과 친족이 수술을 거부하는 상황일 경우, “몸을 구속하거나 속여서 수술을 해도 된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마취약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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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법 있던 독일이나 스웨덴은 국가가 사죄·보상
후생노동법이 참고했던 독일의 단종법은 ‘유전질환 자손 방지를 위한 법률’이 정식 명칭이다. 1933년 나치 독일이 만든 이 법으로 인해 약 4만 명이 강제 불임 수술을 당했다. 독일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5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시작했다. 1975년까지 비슷한 제도를 유지했던 스웨덴은 97년에야 피해자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99년에 관련 보상 법안이 제정됐다.
반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시민 단체 등의 문제 제기에도 “당시에는 합법적인 수술이었다”며 피해 보상을 거부해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는 1998년과 2008년, 그리고 2014년 3차례에 걸쳐 우생보호법에 따라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2016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 정부에 강제 불임 시술을 행한 모든 피해자들에게 법적 구제책을 제공하고 보상과 재활 서비스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으나 일본 정부는 무시했다.
올해 들어 이 문제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여론이 악화되자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 구제 법안을 논의하는 초당파 의원연대가 2월 발족했으며, 후생성도 이달 실태 조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관련 서류가 폐기된 경우가 많아 1만 6475건의 피해 사례 중 수술 받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경우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아사히 신문은 “국회가 구제 법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태 조사 및 구제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피해자들의 절규는 계속되고 있다. 각 지역 변호사 협회가 설치한 상담 전화를 통해 3월 말까지 34건의 불임 수술 관련 사례가 접수됐으며, 이 중 본인이 직접 전화한 경우도 14건에 달했다. 이 중 여성 2명, 남성 2명이 피해배상 소송 의사를 밝히고 있어, 앞으로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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