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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이란 정권 전복” 미국과 손잡은 인민무자헤딘

입력
2018.04.06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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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ㆍ맑시즘 섞인 反美 정체성

이라크전 이후 親美로 돌아서

#2.

빈곤ㆍ차별 저항 반정부 시위를

“아랍 형제들이 봉기” 갈등 키우기

#3.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9일 취임

“트럼프, 이란에 선전포고한 셈”

지난해 3월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열린 이란의 새해 명절 ‘노루즈’ 축하 행사에서 이란 반정부 단체 ‘인민무자헤딘(MEK)’ 지도자인 마리암 라자비(맨 오른쪽)가 존 볼턴(왼쪽 두 번째)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초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볼턴이 9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공식 취임하게 되면, 미국이 MEK를 파트너로 삼아 이란 정권 교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티라나=AP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열린 이란의 새해 명절 ‘노루즈’ 축하 행사에서 이란 반정부 단체 ‘인민무자헤딘(MEK)’ 지도자인 마리암 라자비(맨 오른쪽)가 존 볼턴(왼쪽 두 번째)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초강경 매파로 분류되는 볼턴이 9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공식 취임하게 되면, 미국이 MEK를 파트너로 삼아 이란 정권 교체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티라나=A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란 망명단체인 ‘이란저항국민회의(NCRI)’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이날 초대 연사 중에는 미국의 초강경 매파로 통하는 존 볼턴이 포함됐다. 연단에 선 그는 ‘2019년 이전 이란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1979년 이슬람 혁명이 40주년(2019년 2월 1일)을 넘겨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정책이 테헤란의 ‘물라(이슬람 종교 지도자) 정권 전복’이어야 한다는 걸 나는 10년 동안 말해 왔습니다. 레짐 체인지만이 답입니다. 여러분.” 청중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오는 9일 볼턴의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취임을 앞두고 세계는 비상이 걸렸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가 가장 호전적 접근을 취하는 국가는 북한, 그리고 이란이다. 미국 역사학자이자 안보전문가인 가레스 포터는 대안언론 ‘리얼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볼턴이 북한에 대해선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트럼프의 뜻을 번복하려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란과 관련해선 다른 전망을 내놨다. 그는 “볼턴은 2015년 이란 핵협정을 철회하고 이란과 대결하겠다는 트럼프의 입장에 이미 영향을 줬던 인물”이라며 “이 부분이 볼턴의 백악관 입성에서 가장 위험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이란 망명단체인 재미 이란전국회의(NIAC)의 트리타 파르시 대표는 트위터에 “볼턴 임명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란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점에서 눈 여겨 볼 조직이 있다. 볼턴의 ‘레짐 체인지’ 연설에 열광한 NCRI의 상급 단체인 이란 반정부 무장단체 ‘인민무자헤딘(MEK)’이다. MEK는 1965년 친미 팔레비 왕조 타도를 내걸면서 ‘이슬람주의-마르크시스트’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갖고 출범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동참했으나, 그 이후 이슬람 공화국 내 권력투쟁에서 밀려나며 다시 반군 조직이 됐다. 이들의 다음 행보는 기회주의와 컬트로 점철됐다. 예컨대 조직의 수장 마수드 라자비(2003년 실종ㆍ2016년 사망 발표)는 1980년대 초반 ‘이념적 동침’을 선포하며 직속 부하의 아내였던 마리암 라자비(현 MEK 대표)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동시에 MEK 대원들에겐 혁명 투신을 위한 강제이혼을 명령했다. 이른바 ‘영생 빛 작전’이었다.

2014년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이란 망명단체 ‘이란저항국민회의(NCRI)’ 지도자인 마리암 라자비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2014년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이란 망명단체 ‘이란저항국민회의(NCRI)’ 지도자인 마리암 라자비의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MEK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편에서 싸웠던 건 이들이 이란 내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한 주된 요인들 중 하나다. 사실 이 시기에 MEK가 이란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은 건 사실이다. 특히 전쟁 후반부였던 1988년 8월~1989년 2월 이란 정부는 정치범 수천 명을 사형시켰다.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은 이들도 모조리 국가폭력에 희생됐다. 그런데 희생자 다수는 MEK 조직원이거나 그 지지자로 오해받은 무고한 시민들 또는 소수종족이었다. 앰네스티는 이 때 4,500~5,000명 정도가 집단 사형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MEK도 나름대로 이라크 내에서 소수종족 탄압에 관여했다. 1991년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족 학살에도 가담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조지 W.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테러리즘 지원국’이라 비난하면서 그 예로 들었던 조직은 MEK였다. 1997년 미 국무부의 테러리스트 조직 명단에 오른 MEK는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자 미국에 줄을 섰고, 다시 한 번 운명을 바꿨다. 이라크에 남아 있던 MEK 전사 3,000여명은 바그다드 북부 ‘캠프 아슈라프’ 구역에서 미 동맹군의 보호를 받고 지냈다. MEK가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공식 해제된 건 2012년 9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시절이다.

전문가들은 MEK가 중동 패권국들과도 연계돼 있다고 본다. 2007년 이래 이란의 핵 과학자 5명이 잇따라 암살당하는 과정에도 MEK는 등장한다. 미 NBC방송은 2012년 2월 9일 익명의 미 고위 관료 2명을 인용, 이스라엘이 이란 테러조직(MEK를 지칭)과의 공조로 암살 작전을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란과 오랜 앙숙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사우디 정보국장(1977~2001년) 출신인 쿠르키 빈 파이잘 알 알수드 왕자가 2016년 7월 9일 “호메이니 암 덩어리를 제거하려는 MEK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한 건 단적인 예다.

지난해 12월 30일 이란 테헤란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 확산을 막으려는 경찰의 교문 봉쇄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이란 테헤란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 확산을 막으려는 경찰의 교문 봉쇄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2월 28일 이란 제2의 도시 마사드에서 시작돼 산발적으로 번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 사태는 현 국면의 또 다른 변수다. 이번 시위에는 경제적 궁핍을 겪는 민초들의 반발이라는 ‘계급성’과 함께, 이란 여성들의 히잡 거부라는 ‘체제 저항’의 성격도 묻어 있다. 지난 2월 28일 남서부 쿠제스탄 주(州)의 주도 아흐바즈에선 철강 노동자들이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고, 같은 날 한 사탕수수밭 노동자는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그런데 MEK 지도자인 마리암 로자비는 “우리의 아랍 형제들이 봉기에 나섰다”며 종족 갈등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쿠제스탄 지역이 이란 내 소수 아랍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미국의 ‘전쟁 내각’과 이란의 컬트 반군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레짐 체인지’를 위해 이란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 사태를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언론도 억눌린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을 그들의 관점에서 조명하기보단, 외부자의 견지에서 나온 ‘레짐 체인지’ 틀에 맞춰 전쟁 가능성만 점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고가 필요하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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