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열풍의 이면-도입 취지 좋지만 제2의 영어·수학 될라 '코포자' 양산 우려..전문인력 충원 우선

강승태 2018. 4.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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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딩 하면 천국, 코딩 모르면 지옥’ ‘세상은 지금 코딩 열풍’ ‘이제는 코딩이 대세다’ ‘코딩을 하면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코딩학원에 걸려 있는 문구들이다. 하나같이 자극적이다. 당장 내 아이가 코딩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

코딩 교육은 SW 활성화와 논리력 향상 등에 분명 도움이 된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최근 정규 교육 과정에 코딩을 편성한 이유다.

한국도 올해부터 중학교 교과 과정에 코딩 교육이 의무화된다. SW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는 SW 특기전형도 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급하게 코딩 교육을 진행하다 보니 벌써부터 부작용이 우려된다. 코딩 교육 열풍 속에서도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코딩 교육, 무엇이 문제

▷입시용 코딩교육 활개 우려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 인력 부족이다. 현재 코딩 교육 대상 중학교 60%는 수업을 내년으로 미뤘다. 아직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중학교 약 3200개 중 정보·컴퓨터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는 약 3000명에 불과하다. 담임교사가 전적으로 교육을 맡고 있는 초등학교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2016년 기준 초등학교 교사의 SW 교육 이수자 비율은 4.7%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한국컴퓨터교육학회장)는 “전문 인력이 없고 수업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수업에 사용되는 교재는 암기식이다.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입시 위주 교육 시스템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한 코딩 공교육 편입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국·영·수에 이은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는 학원을 찾는다. 서울 대치동이나 목동 등에는 코딩 학원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학 입학에 SW 분야 특별전형이 확대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학생 사고력과 창의력을 기르겠다는 당초 목적은 사라지고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마케팅만 남았다.

주요 공과대에서는 대학 입시를 결정짓는 과목 중 하나로 ‘코딩’을 선정하며 ‘국영수코’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진대회 입상을 목표로 한 입시 코딩 교육이 활개를 치고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고액 코딩 교육 프로그램도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코딩이라는 과목이 추가됐지만 학부모들은 코딩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본인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새로운 사교육 현장으로 내몬다. 학생들은 낯선 명령문과 복잡한 문법을 외운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반복된 암기식 교육으로 코딩은 점점 ‘재미없는 과목’이 된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을 일컫는 말)에 이어 ‘코포자’까지 나오는 배경이다.

김현철 교수는 “현재 코딩 교육은 결국 스펙 쌓기용으로 전락했다. 학원에서 테크닉을 배우면 당연히 학교 경시대회에서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변질됐다.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부담이 늘었다”고 말했다.

▶해결 방법 없나

▷코딩 교육 담당할 인력 양성부터

프로그래밍은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은 기술을 이해하고, 인류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코딩 교육 필요성은 인정한다. 또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SW 공교육 시행 초기부터 제반 상황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코딩을 위한 코딩’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딩은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한 언어다. 그럼에도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코딩이 활용되면 곤란하다. 코딩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SW 업계 한 관계자는 “SW만 잘해서 대학을 가겠다는 학생들은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며 “코딩 자체를 잘못해도 잠재력 있는 학생을 길러내자는 SW 교육 취지가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딩 교육은 디지털 세상을 보는 관점은 물론 정보윤리, 동료와의 협업 능력까지 여러 장점이 있다. SW공교육이 미래 사회를 이끌 인재 양성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제도 안착을 위한 노력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영국 등도 코딩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며 코딩 교육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SW 강국인 미국은 코딩 인력 중 미국인이 극소수다. 10명 중 9명은 중국인이나 인도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주요 IT 기업은 미국인 코딩 인력 양성 필요성을 제기하며 코딩 공교육을 시행했다.

반면 한국 프로그래머는 이미 공급과잉이다. 전산학과 출신들은 일할 만한 곳이 마땅찮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프로그래머를 양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코딩은 레벨이 있다. 범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에 충분히 많다. 한 달만 배우면 누구나 기본적인 코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위 0.1%를 양성하는 것은 단순 코딩 교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코딩 자체보다 코딩과 관련된 컴퓨터 원리 등을 교육하며 학생들의 논리력 향상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홍봉희 부산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초등학생에게 C언어나 자바 등 어려운 언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며 “필수가 아닌 교양 과목으로 가르치고 소질을 보이는 학생에게 그 길을 유도하면 된다”고 말했다.

각종 시험이나 평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코딩’을 모토로 시작했지만 ‘벌써부터 코딩에 지친 아이들’이 나와서는 곤란하다. 초등학교 수준에 맞는 가벼운 코딩은 놀이처럼 흥미롭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교사 확보가 시급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되지 않으면 사교육 시장만 커진다. 이태욱 한국교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결국 관건은 공교육이다. 공교육이 정상화돼야 처음 취지에 맞게 코딩 교육이 진행되며 사교육 열풍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홍봉희 교수는 “컴퓨터를 전공한 대학생 등을 중고등학교 코딩 교사로 활용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코딩 교육은 속도보다 방향에 초점을 맞춰 교육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에서 경영이나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도 코딩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융합형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 ‘세상을 만드는 글자, 코딩’의 저자 박준석 특허법인MAPS 대표

코딩교육, ‘어떻게’ 보다 ‘왜’‘무엇’을 가르쳐야

Q코딩 교육 왜 필요할까.

A. 코딩 교육은 디지털 세상을 보는 관점을 키워줄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협업 능력까지 향상시키는 여러 장점이 있다. 물론 논리력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논리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코딩을 배울 필요는 없다. 코딩은 언어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외국인과대화하기 위해서다. 코딩을 배우는 것은 컴퓨터와 대화하고 컴퓨터에게 무엇인가 일을 시키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이과생만 필요했지만 이젠 문과생도 코딩이 중요해졌다. 그만큼 컴퓨터가 보편화 됐기 때문이다.

Q과도한 코딩 교육 열풍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A. 현재 코딩 교육은 코딩의 기술적인 측면만 교육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자바 등 코딩 언어를 가르치다 보니 부작용이발생한다. 코딩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대학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수준을 요구하다 보니 코딩은 재미없는 과목이 됐다. 기성세대가 코딩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코딩이 또 다른 영어, 수학이 되면서 코딩을 꺼려하는학생이 늘고 있다.

Q코딩 교육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A.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코딩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코딩의 원리와 컴퓨터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코딩 교육의 원래 취지도 코딩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잠재력 있는 학생을발굴하는데 있다. 일부 코딩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 코딩 전문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코딩을 ‘어떻게’ 하는 것보다 ‘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2호 (2018.04.04~04.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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