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이동 도우려 지하철 매점 철거..장애인 점주는 웁니다

노희준 2018. 4. 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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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통공사, 승객 이동권·아전 확보차원 승강장 정리
승강장 매점·자판기 복지차원 사회 취약계층에 사업권
철거 이후 생계 대책 마련해야..재배치로도 충분 지적도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공원의 한 매점 <사진=황현규 기자>
[이데일리 노희준 황현규 기자] “앞으로 계획은 무슨, 갑자기 발표가 났는데 계획 없어. 우선 당장은 그냥 쉬어야지. 어떻게 할지는 아직 생각 못했어. 몸이 불편해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 서울 지하철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한 매점. 3평 남짓(10㎡) 매점을 운영하는 장애인 점주 A씨(63·여)씨는 매점 문을 닫으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 나갈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과 9호선 2단계 구간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기관)가 2020년까지 서울 지하철 승강장 매점 등을 철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우창윤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이 승강장이 좁은 1호선 4호선 승강장을 다녀보고 느낀 불편을 문제제기한 것이 승강장 비움정책의 출발점이었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의 설명이다.우 의원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문제는 장애인 시의원의 문제제기로 시작한 서울교통공사의 승강장 비움 정책에 장애인 점주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생계를 위협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지하철 매점과 자판기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고령자, 장애인, 한부모 가정 등 사회취약계층에 사업권을 준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우창윤 시의원을 비롯해 장애인 단체들은 일방적인 퇴출에 앞서 이들의 생계를 보전해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서울교통공사, 승객 이동권 확보차원 승강장 정리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51개 매점, 음료수·커피자판기 808개, 스낵자판기 28개 등 승강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시설물들이 계약 만료에 맞춰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철거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일단 이미 계약이 만료된 30개 지하철 승강장 매점부터 부착된 광고계약이 끝나는 오는 10월 7일 이후 철거할 계획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적지 않은 임대수익을 포기하고 승강장을 비우기로 한 것은 승객 편의와 안전 때문이다. 승객 이동에 장애물이 될 수 있는 매점이나 자판기를 없애 넓은 고객 동선과 비상시 대피로 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하철 매점·자판기 등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사업권을 부여하는 조례시설물이라는 점이다. 매점이나 자판기 주인들은 장애인, 65세 이상 노인, 한부모 가족, 독립국가유공자 및 유가족, 북한 이탈주민 중 국민기초생활법에 의한 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지하철 승강장 매점 121대를 운영 주체별로 보면 65세 이상 노인(73개·60%), 장애인(39개·32%), 한부모 가정(9개·7%)순이다.

[이데일리 이서윤 기자]
◇ 매점·자판기 재배치로도 이동권·안전확보 가능 지적도 `

이들은 A씨처럼 직접 매점에서 장사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장애나 고령으로 인해 매점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종로3가 지하철역 승강장 내 매점을 관리하는 문모(70)씨는 “매일 오후 2시 30분부터 11시까지 일 해 한달에 80만원을 받는다. 내게 월급을 주는 장애인 주인은 월소득이 50만원 뿐이어서 되레 안쓰럽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외려 사회적 약자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빚어지자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서도 승강장 비움 정책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형찬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안전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매점주의 생존권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운 서울시 장애인 인권센터장은 “매점 철거로 피해를 입을 취약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며 “매점수가 역 안에 1~2개 정도로 많은 수가 아닌 만큼 충분히 그들을 위한 보완정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객 이동권 보장 및 안전을 위해 반드시 매점을 철수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동선을 가로막는 매점과 자판기를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피난시 안전을 위해 매점을 치우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 있지만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재배치하고 화재 발생시 소화수를 공급하는 장소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역사 구조를 잘아는 매점 주인에게 안전교육을 시켜 비상시 역무원을 도와 대피시 안내자 역할을 맡기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일단 철거 과정에서 매점주와의 협의를 거쳐 대합실로 매점을 이전하는 방안 등을 고려한다는 방침이나 현실적 대안이 될지는 미지수다.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한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김모(60·여)씨는 “만약 매점이 대합실로 올라간다고 해도 구석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대합실에 이미 편의점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옆에 떡하기 놓아주겠나”며 “장사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 있는 한 매점 <사진=황현규 기자>

노희준 (gurazip@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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