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트렌드 vs 클래식]시시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롱런하는 까닭

김경 칼럼니스트 2018. 4. 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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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 제공

지금까지 극장가에 머물며 ‘장기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어떤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시시한 영화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져서 한껏 풀이 죽은 취업준비생 신분의 젊은 처자가 고향 시골집에 내려가 제 손으로 밥을 챙겨 먹는다는 내용이 사실상 그 중심 이야기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식재료가 많지 않고 돈도 없지만 요리할 시간이 넘쳐난다. 여주인공이 주로 제 입에 들어갈 먹거리를 제 손으로 마련하여 요리를 하고, 남는 시간에 친구들과 한가롭게 노닥거리는 시간을 보내는데 영화는 계절과 함께 자연의 리듬으로 흘러가는 그 시간에 집중할 뿐이다.

갈등이나 반전은 물론 이렇다 할 사건조차 거의 없다. 기껏해야 벼락 치는 밤 김태리가 연기하는 혜원이 이제 막 새 식구가 된 강아지 오구를 끌어 안고 잤다는 것 정도? 혹은 비바람에 벼 이삭이 넘어졌고 이모랑 같이 넘어진 벼 이삭을 일으켜 세웠다는 것 정도? 그래서 허리가 좀 아팠다는 것 정도? 뭐 그 정도다.

그런데도 그토록 시시하고 밋밋한 영화에서 말할 수 없는 위안을 얻었다는 젊은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작은 숲’의 ‘치유’를 받는 듯 작은 행복감 속에서 넘어지고 찌그러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이도 있고, 부상을 치료하고 다시금 전쟁터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의 원기를 회복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나만의 케렌시아’가 따로 없었다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딱히 연출의 공을 높이 사고 싶은 마음은 미안하지만 많지 않다. 일본에서 먼저 만들어진 그 원작 영화에 비하여 조금 더 속도감 있고(두 편의 연작을 한 편으로 축약했으니 그 속도감은 당연한 거고) 내용이나 캐릭터의 이해도 측면에서 대중적 소구점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딱 그만큼 다른 영화와 비교할 수 없는 고유의 미학적 매력이랄까 개성도 반감됐다. 배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영화에 비해서 보다 현실적인 아름다움의 김태리의 연기가 좋았지만 그 잔상이 의외로 오래가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소소하게 지속적인 만족감과 조용한 행복감을 주며 부드럽게 위무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원작 만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의 힘일 것이다.

1. 시골의 발견. 공부 못해서, 스펙 떨어져서 경쟁에서 낙오해도 괜찮다. 세상에는 낙오자가 도피하기 좋은 시골과 자연이라는 넉넉한 공간이 있더라.

2. 무언가를 사기 위해 직장을 구할 수도 있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 손으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창조력을 발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시골이다.

3. 시골에서는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내가 사장이 되어 내 일을 할 수 있다. 당연히 불합격이나 해고당할 위험이 없다.

4. 포기가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포기를 통해 나 자신에게 좀 더 가까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다.

5.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되레 장 자크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했듯 ‘인간이 자연의 상태에 가깝게 있으면 능력과 욕망의 차이는 점점 더 적어지고 따라서 행복으로부터 그만큼 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6. 돈보다 시간이 많아지면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보다 본질적인 것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것, 불완전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7.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며 행복감이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당신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케렌시아’라든가 ‘소확행’, ‘와비사비’, ‘혐핫’ 같은 2018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함께 설명하기에도 이보다 더 좋은 영화가 없겠다 싶다.

예컨대 투우장의 소에게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케렌시아가 필요하듯, 나날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인에게 영혼의 안식처이자 창조적 휴식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상영하는 극장의 구석진 자리 하나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케렌시아가 된다.

또한 하루키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에서 “그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 마시는 차갑게 얼린 맥주 한 잔 같은 것”이라고 했던 ‘소확행’의 자잘한 예들을 모으면 바로 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된다.

그리고 와비사비가 진정 ‘부족함에서 만족을 얻는 삶의 방식’이고 ‘유행에 뒤처진 낡은 공간이나 물건에서, 혹은 평소 무심히 지나쳤거나 과소평가했던 순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리틀 포레스트>는 와비사비 라이프의 표본이다. 그리고 이른바 ‘핫 플레이스’를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좋아할 만한 영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더 늦기 전에 극장에 가보자. <리틀 포레스트>가 아직 그곳에 있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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