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어부를 해적으로 둔갑시킨 건 中 불법조업이었다

강혜란 2018. 4. 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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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해역서 한국 어선 '마린711호' 선원 3명 피랍
소말리아 잠잠해지자 서부 기니만 일대 해적 창궐
중국 원양어선 등 남획·불법조업으로 생계 위협
"쉽게 돈 벌려 해적질 눈돌려" 국제사회 공조 절실


통곡의 해안이 약탈의 바다로…'해적 온상' 된 서아프리카의 비극

2012년 대만 어선을 납치했다가 석방 합의금을 받고 풀어준 뒤 어선 앞에서 포즈를 취한 소말리아 해적. [AP=연합뉴스]
한때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노예선이 사슬에 매인 흑인들을 실어 날랐던 서아프리카 기니만 일대가 해적의 공포로 들끓고 있다. 기니부터 앙골라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출몰하는 이들 해적선은 주로 유조선·화물선 등에 접근해 물류(기름 포함)를 탈취하거나 선원을 납치해 석방 합의금을 요구한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엔 가나 해역에서 한국 선적의 참치잡이 어선 마린 711호(455t급)가 해적들의 급습을 받았다. 납치 세력은 나이지리아 해군의 추격을 피해 베넹과 나이지리아 경계 해역에서 한국인 3명 등 5명의 인질을 자신들의 스피드보트(고속 모터보트)에 태우고 잠적한 상태다.

마린 711호가 피랍된 기니만 일대는 최근 몇 년간 해적 공격이 급증해 왔다. 비영리단체 ‘하나의 지구 미래 재단’이 후원하는 ‘해적 없는 해양’(OBP)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니만에선 95건 해적 공격이 보고돼 그 전해(54건)의 두배 규모로 급증했다. 지난해는 다소 줄어 45건이었지만 해적 출몰 1번지로 여겨져 온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9건)의 5배에 달했다(해양수산부 ‘2017 세계 해적사고 발생 동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교통·어업 요지에 밀려드는 각국 선박들
애초 소말리아가 해적의 온상이 된 것은 사실상 국가가 붕괴된 상태에서 일대 어부들이 생계형으로 해적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덴만 일대는 세계 교역량의 10%가 통과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다. 해적 공격으로 인한 손실과 보험 비용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8년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 연합군의 해적 단속 활동이 시작됐다. 무장 해군이 해역 경계를 강화하고 각 선박이 자체적으로 무장 경비병력을 고용하면서 치안이 회복됐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2011년 237건에 이르렀던 해적 공격은 지난해 9건으로 급감했다.

2008년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바다로 탈출한 영국·아일랜드 국적의 선원 3명을 독일 해군 헬기가 구출하고있다. [아덴만 AFP = 연합뉴스]
서아프리카 해안 역시 유사한 해적질이 빈번했던 곳이지만 소말리아 일대가 잠잠해지는 상황에서 해적들의 주무대로 떠올랐다.
유럽과 가까운 기니만은 16세기부터 조성된 노예해안·상아해안 등을 중심으로 어업 및 교역 항구가 발달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기니만을 통해 각국으로 수출된다. 일대 연안은 도미·그루퍼·정어리·고등어·새우 등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어업 관련 일자리는 지역 고용의 4분의1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진다.


수산자원 연 1조6000억원어치 '강탈' 당해
하지만 어민들의 생존이 달린 어장은 다른 나라에서 밀려오는 원양어선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의 2012년 보도에 따르면 서아프리카가 보호구역 너머 불법 조업이나 남획으로 뺏기는 수산자원은 연 15억 달러(약 1조6000억원)어치에 이른다. 코트디부아르만 해도 매년 불법 조업으로 5만5000여t을 ‘강탈’ 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원양어선의 저인망식 싹쓸이식 조업이 문제가 돼 왔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해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국적, 또는 중국 소유의 어선은 1985년 13척에서 2013년엔 462척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는 승인 없이 조업하거나 금지 수역에서 고기를 낚는 어선들도 있는데 다수가 중국의 국영 원양어업체인 중국수산유한공사(CNFC) 소속이다. 또 다른 비영리기관인 영국의 ‘환경정의재단’에 따르면 아프리카 불법조업 어선들은 중국 외에 한국 및 유럽 국적인 경우도 있다.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협받은 서아프리카 어부들은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해적질이나 마약 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나아가 나이지리아 해적의 경우엔 남부 유전지대 니제르 델타의 범죄조직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진다.

2006년 12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선박을 납치했다가 이듬해 2월 체포된 해적들. [중앙포토]
‘해적 없는 해양’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지리아는 석유 생산품이 전체 수출의 90%를 차지하고 대부분이 니제르 델타에서 나오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이익 배분에서 소외돼 있다. 이런 불만이 일대를 해적질과 원유 도적질이 판치는 무법천지로 쇠퇴시키고 있다. 나이지리아 해적들은 선원을 납치해 니제르 델타의 미로 같은 강가에 숨어 석방 합의금을 요구하는 수법을 쓴다. 마린 711호에서 피랍된 한국인 3명도 나이지리아 남부에 감금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한 바 있다.


해적 창궐로 교역 지장, 정부 세입도 타격
해적의 창궐은 이들 모국에도 타격을 준다. 국내총생산(GDP) 94억 달러로 세계 135위인 빈국 베넹의 경우 무역으로 인한 세금이 국가 수입의 절반이다. 이 중 80%가 기니만에 면한 코토누 항구에서 나온다. 서아프리카 해적 공격이 활발해지면서 이 수입이 급감해 베넹 연간 세입의 28%가 감소했다(유엔마약범죄사무소 2013년 보고서). 서아프리카에서 해상 범죄로 인한 경제비용이 연 7억9400만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전문가들은 서아프리카 해적 억지를 위해선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전례 삼아 각국의 정보 협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함께 해군력 강화 등 체계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협력 속에 일대의 정치·경제 안정이 요구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소말리아 해적이 지난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토머스 발트하우저 미군 아프리카사령관은 “600만명에 이르는 소말리아인들이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든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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