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어부를 해적으로 둔갑시킨 건 中 불법조업이었다
소말리아 잠잠해지자 서부 기니만 일대 해적 창궐
중국 원양어선 등 남획·불법조업으로 생계 위협
"쉽게 돈 벌려 해적질 눈돌려" 국제사회 공조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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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해안이 약탈의 바다로…'해적 온상' 된 서아프리카의 비극
지난달 26일(현지시간)엔 가나 해역에서 한국 선적의 참치잡이 어선 마린 711호(455t급)가 해적들의 급습을 받았다. 납치 세력은 나이지리아 해군의 추격을 피해 베넹과 나이지리아 경계 해역에서 한국인 3명 등 5명의 인질을 자신들의 스피드보트(고속 모터보트)에 태우고 잠적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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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어업 요지에 밀려드는 각국 선박들
애초 소말리아가 해적의 온상이 된 것은 사실상 국가가 붕괴된 상태에서 일대 어부들이 생계형으로 해적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아덴만 일대는 세계 교역량의 10%가 통과하는 해상 교통의 요지다. 해적 공격으로 인한 손실과 보험 비용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2008년 미국을 중심으로 다국적 연합군의 해적 단속 활동이 시작됐다. 무장 해군이 해역 경계를 강화하고 각 선박이 자체적으로 무장 경비병력을 고용하면서 치안이 회복됐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2011년 237건에 이르렀던 해적 공격은 지난해 9건으로 급감했다.
유럽과 가까운 기니만은 16세기부터 조성된 노예해안·상아해안 등을 중심으로 어업 및 교역 항구가 발달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기니만을 통해 각국으로 수출된다. 일대 연안은 도미·그루퍼·정어리·고등어·새우 등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어업 관련 일자리는 지역 고용의 4분의1을 직간접적으로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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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자원 연 1조6000억원어치 '강탈' 당해
하지만 어민들의 생존이 달린 어장은 다른 나라에서 밀려오는 원양어선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의 2012년 보도에 따르면 서아프리카가 보호구역 너머 불법 조업이나 남획으로 뺏기는 수산자원은 연 15억 달러(약 1조6000억원)어치에 이른다. 코트디부아르만 해도 매년 불법 조업으로 5만5000여t을 ‘강탈’ 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원양어선의 저인망식 싹쓸이식 조업이 문제가 돼 왔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에 따르면 아프리카 해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국적, 또는 중국 소유의 어선은 1985년 13척에서 2013년엔 462척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는 승인 없이 조업하거나 금지 수역에서 고기를 낚는 어선들도 있는데 다수가 중국의 국영 원양어업체인 중국수산유한공사(CNFC) 소속이다. 또 다른 비영리기관인 영국의 ‘환경정의재단’에 따르면 아프리카 불법조업 어선들은 중국 외에 한국 및 유럽 국적인 경우도 있다.
소말리아와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협받은 서아프리카 어부들은 손쉽게 돈 벌 수 있는 해적질이나 마약 거래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나아가 나이지리아 해적의 경우엔 남부 유전지대 니제르 델타의 범죄조직과 연관돼 있다고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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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창궐로 교역 지장, 정부 세입도 타격
해적의 창궐은 이들 모국에도 타격을 준다. 국내총생산(GDP) 94억 달러로 세계 135위인 빈국 베넹의 경우 무역으로 인한 세금이 국가 수입의 절반이다. 이 중 80%가 기니만에 면한 코토누 항구에서 나온다. 서아프리카 해적 공격이 활발해지면서 이 수입이 급감해 베넹 연간 세입의 28%가 감소했다(유엔마약범죄사무소 2013년 보고서). 서아프리카에서 해상 범죄로 인한 경제비용이 연 7억9400만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전문가들은 서아프리카 해적 억지를 위해선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전례 삼아 각국의 정보 협력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함께 해군력 강화 등 체계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협력 속에 일대의 정치·경제 안정이 요구된다. 한동안 잠잠했던 소말리아 해적이 지난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토머스 발트하우저 미군 아프리카사령관은 “600만명에 이르는 소말리아인들이 가뭄과 기근에 시달리고 있어 언제든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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