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갑' 연애코치 배유람 "30대에 고창석 아역 부담됐지만.."

김시균 2018. 4. 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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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연배우다-11] 배우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연인데도 지나고 보면 별로 기억되지 않는 배우가 있는 반면 조연, 심지어 단역임에도 오래 기억되는 배우가 있다. 배유람(32)은 그런 점에서 후자다. 스크린에서 그를 처음 인지한 건 2013년 '끝까지 간다' 때부터. 저도 모르게 '픽' 하고 웃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 러닝타임 9분 즈음, 한밤중 고건수 형사(이선규)가 음주 단속에 걸린 바로 그 시퀀스에서였다. 그의 차량 트렁크에는 시신 한 구가 감춰져 있고, 앞문 유리는 군데군데 금이 가버린 상태. 결국 그는 까탈스러운 순경에 의해 바깥으로 불려 나온다. 그러고는 앳된 이경(배유람)에게 주민번호를 불러주는 것이다. 고 형사 안면으로 맺혀드는 땀줄기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상황. 그런데 그때, 돌연히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배유람은 자신의 첫 장편 상업영화 `끝까지 간다`(2014) 극 초반부, 주민번호를 잘 못 읽는 어수룩한 이경을 연기했다. /사진제공=쇼박스

"칠 육 공 육 이 오 일 팔 육 오 삼 일 칠…."(고 형사)

"그, 숫자가 하나 더 있는데 말입니다. 14자리 부르셨지 말입니다. 근데 주민번호 13자리지 말입니다."(이경)

"똑바로 적어."(고 형사)

"똑바로 적었지 말입니다."(이경)

똑바로 적긴 했다. 이경이 수첩에 끄적인 주민번호는 분명 13자리. 어수룩한 그가 14자리로 잘못 읽은 거였다. 여하튼 그러다 고건수는 범죄자로 간주되고, 한바탕 난투까지 벌인다. 결국에 그가 형사 신분임이 조회되지만 이미 엎치락뒤치락 주변은 난장이다. 열에 받칠 대로 받친 그는 이제 순경들을 일렬로 불러 세운다. 그러고는 소리친다.

"너 나와봐. 야, 14자리 너 튀어나와봐!"(고 형사)

"이경 신현진…."(이경)

"야, 말대꾸하지마 너, 조심해."(고 형사)

"(왼쪽 귀를 잡히며) 아아아, 예 알겠숨다, 예 알겠숨다."(이경)

배유람이 출연한 건 불과 4분 안팎. 그럼에도 왜인지 신 이경을 연기한 그가 잘될 것 같다는 '예감'이 그때 문득 들었다. 그 예감은 그리 엇나가지 않았는데, 지난해 여름 개봉한 버디무비 '청년경찰'(2017)에서 보다 비중 있는 배역에 캐스팅된 것이다. 기준(박서준) 희열(강하늘)과 함께 경찰대학에서 기숙하는 재호였다. 처음엔 다소 까칠하지만, 후에 사건 해결의 징검다리가 돼주는 알토란 캐릭터.

배유람은 지난 3월 14일 개봉한 이장훈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주인공 우진의 단짝 친구 홍구의 어린 시절을 코믹하게 연기해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올해, 배유람은 손예진·소지섭 주연의 멜로물 '지금 만나러 갑니다'(이하 지만갑·2018)에 조연 출연한다. 우진(소지섭)의 어린 시절 단짝 홍구였다. 외양부터 독특했다. 부드럽게 옆으로 넘긴 머리에 둥근 뿔테안경, 흰 셔츠에 연분홍 조끼바지, 그리고 노란색 나비 텍타이…. 서른이 넘은 배우가 연기한 고교 1학년이지만 나이차가 자아내는 이물감은 없었다. 표정과 몸가짐은 장난기로 가득했고 대사는 맛깔났다.

그런 그의 행보가 내심 반가웠다. 스크린에서 그를 알게 된 지 5년이 지났으니, 지금이라면 만나러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최근 서울 충무로 한 카페에서 배우 배유람과 마주 앉았다.

배유람은 지난해 버디 무비 `청년경찰`에서 주인공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의 사건 해결에 크게 기여하는 경찰대생 동기 재호를 연기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끝까지 간다' 이경 덕에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눈이 휘둥그레 지며) 그걸 기억해요? 잠깐 나온 건데. 저도 그때 나온 모습 좋아하거든요(웃음)."

-이번 '지만갑'에선 어린 홍구 역으로 출연했어요. 그간 출연한 상업영화로는 극 중 분량이 가장 크죠?

"'청년경찰'에 비해 촬영 회차는 적었어요. '청년경찰'이 12회차 찍었는데, '지만갑'은 6회차만 찍었거든요. 근데도 주변에선 이번 비중이 더 많게 느껴진다더라고요."

-캐스팅 배경이 궁금한데요.

"고 선배로 어른 홍구가 정해진 뒤로 아역이 필요했어요. 제작사가 '청년경찰' 때랑 같아서 추천을 받았고요, 미팅 때 이장훈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어요. 오디션 보면서 되도록 과장 없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연기적으로 '중립화'라고 하는데, 어떤 캐릭터든 어색하지 않게 모나지 않게 하려 했죠."

-원작은 봤나요?

"'지만갑' 원작을 2005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어요. 그때가 스무 살이었어요. 혼자 펑펑 울었죠. 이게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었는데, 잠시 잊고 지내다 작년에 캐스팅 건으로 미팅까지 하게 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이 참 할 만 하구나' 싶을 만큼 기뻤고요."

배우 배유람이 선글라스를 쓰고 코믹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다. / 사진=양유창 기자

-완성본은 어땠나요.

"시사회장에서 처음 봤고요. 네 번을 봤는데 그때마다 펑펑 울었어요(웃음)."

-평소 눈물이 많으신가봐요.

"요즘 특히 그래요. 슬픈 영화, 가족에 관한 영화를 보면 더 그래요. 제가 아직 창창하지만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서, 주변 사람들도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가족 생각을 특히 많이 하게 돼요. 마음의 짐도 예전보다 늘어가니 주변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는 것 같고요."

-고교생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나이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스럽다 마다요. 고3도 아니고 고1이잖아요. 당시 제가 서른두 살이었는 걸요. 걱정 많았는데, 주변에선 그리 위화감이 안 든다고 다독여 주시더라고요."

-패션도 독특했죠.

"사실, 어린 홍구 찍는다고 나비 넥타이에 멜빵바지 차림으로 점심 먹고 그럴 때 좀 창피했어요. 학생식당에서 밥 먹고 그러면 주변에서 수군수군거리니까요. 매니저 보고 오라 할 수도 없고. 근데 콘셉트니까(웃음)."

-유람 씨가 고창석 씨로 딱 바뀌는 순간에 객석에서 다 웃더라고요.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요. 유람 씨가 삽십대니 그냥 계속 하셔도 되지 않았을까. 더블캐스팅된 거에 대해선 아쉬움은 없으셨을까.

"아뇨,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굳이 욕심을 내자면 어린 고교 시절, 대학 초년생 시절이 조금 길었으면 하는 바람 정도랄까요? 그건 어느 배우라도 생각할 수 있겠죠."

-툭툭 던지는 대사가 재밌어요. 메모를 해왔는데, 이를테면, "너 걔 좋아하지" "지랄 마, 너 다 티나 븅신아" "도와줘?" "나 두 번 안 물어보는 거 알지? 도와줘?" 같은. 어떤 점에선 '건축학개론'(2012) 납득이(조정석)랑 비슷한 구석도 없지 않아요. 의식한 부분이 있었나요?

"조 선배님이 연기한 해당 장면은 워낙 유명하죠. 제가 그런 연기를 어떻게 하겠어요. 그래서 외려 의식하지 않으려 했어요. 레퍼런스로 가져가면 왜인지 따라하려는 것처럼 될 것 같고 과장하게 될 것 같아서요. 되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죠."

-홍구처럼 연애 코치 같은 걸 잘 해주는 학생이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닮은 구석이 있죠?

"그럼요, 보시면 알겠지만 홍구도 활동적이고 유쾌하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근데, 연애코치라….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죠. 해주기만 하지 잘 안 돼요. 왜, 자기 도시락은 자기가 싸는 거라 하잖아요. 바보가 바보한테 코칭해주는 격이었죠. '기다리면 안 돼' '들이대' '지금 해야 돼' 조언은 해주지만 타율은 낮았어요(웃음)."

-어릴 때 상당히 개구쟁이였겠네요.

"장난 아니었어요, 저(웃음)."

배우 배유람 / 사진=양유창 기자

정말 그랬다. 그의 고향은 대구. 어릴 때부터 가만있는 법이 없었다. 엄마 따라 외출했다가 사라진 적이 여러 번. 대구백화점, 대구중앙시장이 당시 배유람 실종 1번지였다. 떼쓰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마음에 쏙 드는 게임기를 발견하면 일단 거리 복판에 드러눕고 봤다. 그러고는 사줄 때까지 칭얼대는 것이다. 친구들과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는 건 일상이었다. 유치원생 때부터 이미 해질녘에 귀가할 때가 잦았다. 순한글 이름이라지만, 정말 이리저리 '유람'(遊覽·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렇게 대구에 이어 경북 영덕군에 있는 고래불 해수욕장 인근에서 잠시 살다 일곱 살 무렵 상경한다.

-사투리는 안 쓰네요?

"고친 거죠. 경상도에서 살았지만 집안 환경이 좀 독특했어요. 부모님이 전라도 여수 출신이거든요. 집 안에선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데, 바깥에선 대구 사투리를 썼으니까요. 사투리 연기를 보여드린 적은 없는데, 사실 양쪽 다 쓸 수 있어요. 사투리 조기교육은 제대로 받았죠(웃음)."

-생애 첫 서울살이는 어땠어요?

"경찰서 인근에 달동네가 있었어요. 지금은 다 개발된 곳인데, 서울 올라오고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몇 개월 유치원을 안 갔죠. 돈이 드니까요. 그때가 참 재미있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놀기만 했거든요. 달동네 친구들 다 끌어모아서 이리저리 쏘다니기 바빴어요."

-골목대장이었죠?

"대장까진 아니고(웃음). 거기에 공터가 있었어요. 유리창도 많이 깨져 있고, 허름한 곳이었는데요. 남의 집 대문이 축구 골대였어요. 맨날 대문 앞에서 공 차니까 아줌마 아저씨가 뛰쳐나와서 소리지르고 그랬어요."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같은 친구였군요.

"와, 저 그거 너무 재미있게 봤는데…. 진짜 그런 것 같은데요? 벌 잡고 나비 잡고 노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땐 돈도 없었고요. 혹여 쏘일까 싶어 과자봉지 말아서 손에 끼고 벌 잡아서 침도 빼고, 그러다 많이도 쏘였고요."

-한편으로 부모님 속 좀 썩였겠어요.

"초등학교 입학하고 이사를 갔는데, 그때 오락실을 처음 갔어요. 보통 1~2학년 때 정오나 오후 1시쯤 끝나잖아요. 그때 어머니가 서예를 가르치셔서 피아노, 서예를 배워야 했어요. 그러다 툭 하면 학원 빼먹고 밤 8~9시까지 오락실에 상주했죠. 형들이 스트리터파이터, 비행기 게임하면 뒤에서 기웃거리고요. 어머니가 한참 찾아다니셨어요. 그러다 한 번은 뒤에서 '배유람!'하며 소리치시는 거죠(웃음)."

그래도 학업 성적은 곧잘 받았다. 번번이 상위권이었다. 혈기가 넘칠 뿐 학업에 게으르진 않았던 그다. 공부와 놀이의 병행이 가능한 보기 드문 캐릭터, 속된 말로 '사기캐'(사기 캐릭터)였다. 이 땅의 '범생이'들이 제일 시샘하는 그런 친구 말이다. 중·고교 시절엔 매해 반장, 부반장을 도맡았다고 했다. 중3 땐 부회장이었다.

-딱 보니 그랬을 것 같아요.

"활동적이어서 친구들이 많았어요. 당시 부회장 선거 나온 친구가 공부도 잘하고 저랑 달리 굉장히 스마트한 느낌이었어요. 저는 반대로 유쾌하고 끼가 많았죠. 회장 선거 때 그 친구는 돈을 좀 많이 쓴 걸로 아는데, 전 몇 만원 안 들였지만 재밌게 유세했어요. 유머러스하게 까불까불거리니 재밌다고 부회장까지 시켜준 거죠."

-그렇게 활동적이면 한 가지에 파고드는 건 잘 못하지 않나요. 영화도 즐겨봤어요?

"엄청나게요. 당시 집이 서점을 했어요. 책보다 비디오를 훨씬 많이 봤죠.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잘 안 읽게 되더라고요. '19금' 아닌 비디오, 특히 외화 비디오를 하나하나 섭렵했어요. 당시 술 담배도 안 하고, 친구들과 싸우지도 않고, 성적도 괜찮으니 부모님이 뭐라 하진 않으셨고요. '택시 드라이버'(1976) 같은 로버트 드 니로 출연작을 정말 좋아해요."

-사춘기는 언제 왔나요?

"고1 때요. 공부 열심히 하다가 한 번은 사회체육학과에 가고 싶어지더라고요. 근데 주변에서 어찌나 말리시던지(웃음). 체구가 일단 작잖아요."

그 시절, 글쓰기와 운동에 재능이 있었다. 글쓰기 숙제를 해가면 "글맛이 있다"며 선생님에게 자주 칭찬을 듣곤 했다. 축구든 야구든 운동도 곧잘 했다. 그래서 한번은 아버지로부터 "스포츠 기자가 어울릴 것 같다"는 조언도 듣는다. 그러나 잠시 흔들렸을 뿐. 고교 2학년 무렵, 그는 생애 처음으로 꿈 하나를 머금는다. 배우라는 꿈을.

-계기가 있나요?

"저희 반에 같은 학년인데 나이는 조금 더 많은 형이 있었어요. 그 형이 연기학원을 다녔어요. 제가 끼가 많아 보인다고 나와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갔는데 와, 너무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 거기 선생님이 저더러 네 줄짜리 대사를 외워서 앞에서 해보라고 시켰어요. 외우는 건 자신있는지라 나가서 했죠. 그게 '세일즈맨의 죽음'인데, 아버지한테 억압받는 아들이 아버지한테 화내면서 하는 대사였어요."

-잘했어요?

"전혀요. 수치스러울 정도로(웃음). 되게 바보 같은 거예요 제 자신이. 평소 친구들 앞에서 춤추고 장난치고 큰소리치고 잘 그랬는데 이건 뭐랄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그날 밤 자기 전에 '이불킥' 좀 했겠는데요?

"집에 돌아와서 아무 생각 없이 자려고 천장을 봤어요. 저는 당구는 안 치는데,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요. 당구공이 천장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 같은. 그냥 멍했죠."

배우 배유람 / 사진=양유창 기자

그럼에도 한편으론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건 다른 거구나, 다른 끼가 필요하구나"를 실감했다.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움튼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교 2학년 막바지 무렵, 생애 처음 연기학원에 등록한다. 그때부터 기존에 다니던 학원은 모두 끊고 집과 도서관, 연기학원을 오간다.

-부모님께서 놀라셨겠는데요. '이 놈 왜 이래' 하시며(웃음).

"그쵸, 이제 곧 고3이었으니까요. '갑자기 왜 그러냐' 하시대요. '공부 안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급해지시더라고요. 일단은 조건부로 허락해주셨어요. 연기학원은 다니되 공부도 같이 해라. 형편이 어려우니 다른 학원은 전부 그만뒀죠. 부모님은 아무래도 '인서울 대학'을 원하셨어요. 특히나 아버지께서 2호선에 있는 대학을 가길 바라셨고요. 거기 라인이 좋잖아요(웃음)."

-그 라인이 벽이 높죠.

"사실 재수를 해서라도 가겠다고 각오한 상태였어요. 근데 한번에 가게 된 거죠. 준비가 늦었는데도요. 그게 정말 최고의 운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건국대 영화과에 들어간 거군요. 몇 학번이에요?

"04학번이 1기니까 저는 05학번 2기요. 그땐 영화과가 없었어요. 처음에 원서 쓸 때도 건대에 영화과가 있는 줄 몰랐어요. 근데 이제 막 생겼다고, 캠퍼스가 서울에 있다고 해서 다군(가군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군은 국민대 연극영화과를 썼다)에다 쓴 거죠. 건대는 연극영화과가 아니라 영화과더라고요. 영화연출, 연기 두 파트가 있고요."

-정시 면접 땐 뭘 요구받았나요?

"당시 받은 대본이 지금도 생각나는데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성난 황소' 대본이었어요.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는 작품이었죠. 당시 면접관이 배창호 감독이었어요. 거기서 처음 받아든 대본으로 했고, 덜컥 붙은 거예요."

-실전형인가봐요(웃음).

"걱정 많이 했죠. 연기학원 선생님이 사전에 겁도 줬거든요. 거긴 잘생기고 예쁘고 키 큰 애들만 간다고요. 근데 정작 가서 면접 보려고 대기하는데 저쪽에 있던 애들보다 제가 더 잘생긴 것 같고, 더 나은 것 같은 거예요(웃음)."

그때 '저쪽에 있던 애들'이 훗날 단짝이 되는 동갑내기 안재홍과 신주환이다. '건대는 잘생긴 친구를 뽑는다'는 걱정이 두 친구를 본 순간 불식됐다고 했다. 배유람은 "지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상상만 해도 굉장히 재밌는 대학생활이었을 듯해요.

"위계질서도 별로 없고 자유로웠어요. 6기로 들어온 (고)경표랑 동기 재홍이랑 술 많이 먹었죠. 재홍이랑은 공연도 많이 했고 요즘도 작품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영화과다 보니 같이 단편을 정말 많이 찍었어요. 경표는 워낙 바빠서 요새 자주 못 보는데, 저보다 어른스럽더라고요. 열려 있고, 예의바르고."

-1기 선배들이랑은 어땠어요?

"저희는 연출, 연기 쪽이 두루두루 다 친해요. 이번에 '소공녀' 찍은 (전)고운이 누나도 건대 영화과 1기 선배고요. 그리고 1기 중에 엄태구 선배는 학교 다닐 때 전설이었어요. 워낙에 연기를 잘해서 거의 모든 후배들이 존경했죠."

-그러고 보니 '광화문시네마' 영화들에도 자주 우정출연하셨어요. '족구왕' '범죄의 여왕' '굿바이 싱글' 같은.

"예전부터 친분이 있으니까요. '시간되면 놀다가' 하고 간혹 연락이 와요. 그럼 편하게 가서 일손 도와드리고 그러는 거죠. '소공녀'에 제가 편승하려는 건 아닌데 이번에 개봉했으니 티켓 인증샷 누나한테 보내드리려고요. 안 그래도 재홍이가 너무 잘 나왔다고 '강추'하던데요(웃음)."

영화과 얘기 도중 그가 잠시 화제를 돌렸다. "꼭 언급하고 싶은 선배가 한 분 계시다"는 것이었다. 2013년 8월, 29세에 암으로 소천한 고(故) 최정섭 배우였다. 고인은 배유람, 안재홍, 고경표 등 영화과 후배들과 호형호제하던, 말 그대로 좋은 선배이자 형이었다고 한다. 배유람은 "매해 기일이 돌아오면 전북 부안에 있는 형의 묘소에 찾아간다"고 했다. 분위기가 일순간 숙연해졌다.

-어떤 분이었나요.

"되게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멋진 형이었는데…. 형이 사연이 있어요. 형 어머니가 형이 스물한 살에 돌아가셨거든요. 호탕한 형이지만 속엔 상처가 많았어요. 그걸 내색을 안 했죠. 본인이 아파서 투병할 때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난 아파서 누워있지만 유람아 너는 잘해라.'"

-속이 단단한 분이었군요.

"형 덕에 배우 생활하는데 정말 많은 힘이 됐어요. 그래서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거라 보고요. 저희 어머니도 몇 년 전까지 암투병 하신다고 많이 편찮으셨던지라 형의 당시 마음을 요새 더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형이 암 투병하기 전인 20대 중반에 저한테 어린 시절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5~6세 때였다는데, 어떤 분이 자기 손을 보더니 너는 서른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다는 거예요. 지금도 재홍이나 친구들, 형들이랑 그 얘기를 하면 소름이 돋곤 해요."

고인이 숨진 그해 배유람은 지인들과 함께 '최정섭 추모전'을 열었다. 선후배 50~60명, 학과 교수님을 초대해 건대 시네마테크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고인의 출연작 여섯 편을 틀며 떠난 당신을 추억했다. 지난해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소규모로 열린 '배유람 배우전'에서도 그는 고인과 출연한 단편 한 편을 틀었던 바다. 배유람은 "내가 좋아한 형이 날 좋아했듯, 그런 형을 위해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 배유람 / 사진=양유창 기자

-독립영화를 굉장히 많이 찍으셨죠?

"최근에 찍은 것들까지 하면 250편이 조금 안 돼요. 세 달 전에도 한 편 찍었고요. 학교 다니면서, 외부 작업, 개인 작업 하면서 틈틈이 찍어요. 독립영화는 제게 엄마의 양수 같은, 고향 같은 거예요."

-연기 내공 다지는데 굉장한 도움이 됐겠네요.

"그럼요. 다양한 걸 다 해봤거든요. 스릴러를 많이 했고, 사이코패스 역도 꽤나 했고요. 코믹은 당연히 많이 했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축적돼 있지만 아직까진 대중에겐 안 보여드린 게 많죠."

-유람 씨가 짧은 분량에도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도 여기에 있겠군요.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죠. 카메라에 담긴 제 연기를 스스로 보면 낯뜨겁고 부끄러운데, 이게 또 내성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건 내가 잘못한 거다, 하면서 고쳐나가게 되고요. 제가 독립영화 단편 중 20~30개 정도는 손수 가지고 있거든요. 컴퓨터에 있는데 가끔씩 보면서 제 연기에 대해 생각을 해요."

-복기는 주로 혼자 하나요?

"자취하는 친한 형 집에 자주 가요. 가볍게 술 한잔 하면서 서로 나온 걸 봐요. 그러면서 킥킥대고 웃죠. 그러면서 서로 코멘트 해주고 분석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참 좋은 게 자기가 작업한 것들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자기 연기 못 보겠다는 배우도 많으시던데(웃음). 내성이 생긴 건 언제부터예요?

"200여 개 찍고부터일 거예요. 일단 많이 찍고보니 스스로도 교정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차근차근 많이 찍으려 해요.

-굉장히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즐기는 사람은 못 이긴다고 하잖아요. 저는 노력도 즐기는 사람이 하는 거라고 봐요. 영화과 2기다 보니 1기 선배를 제외하면 선배가 사실 별로 없어요. 그런 만큼 부지런히 뛰어 다닐 수밖에요."

-이를테면요?

"틈만 나면 혼자서 영화사에 프로필 돌리러 다녀요. 100군데 정도 돌리면 5군데 정도 오디션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와요. 그러면 한 군데에서 같이 하자 그러고요. 그러다 출연한 게 '끝까지 간다'였어요."

-놀라운데요.

"다들 그렇게 해요. 다만 저는 즐기면서 했어요. 살 뺀다는 기분으로. BMW(버스, 메트로, 워킹) 탄다고 하잖아요(웃음). 영화사가 강남, 충무로, 홍대, 상암 이렇게 네 스폿이 있어요. 오늘은 강남, 내일은 상암 이런 식으로 하루에 다섯 군데만 다녀도 성공이에요. 그래도 피곤하지도 않았어요. 내가 밥벌이하고 원해서 하는 거니까. '두고 봐, 내가 보여줄게'하며 이 꽉 물고 이것도 수업이라 생각하면서."

배유람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택(박보검)이 소속된 한국기원의 유 대리를 연기했다. `응답하라 1988`은 그가 졸업한 건국대 영화과 동기 안재홍과 후배 고경표, 류혜영 등과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tvN 영상캡처

그런 그가 드라마로까지 활동 저변을 넓힌 건 2014년.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이성민)의 젊은 시절로 잠시 출연하고부터다. 2015년에는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에서 택(박보검)을 돕는 한국기원 유 대리를 연기했고, 이듬해인 2016년엔 '굿바이 미스터 블랙' '원티드'에 이름을 올린다. 지난해 드라마 출연작은 무려 네 편이었다. '초인가족 2017'의 나백일, '군주-가면의 주인' 박무하, '이판사판' 김주형, '언터처블' 최재호를 열연하며 대중의 눈도장을 받는 중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게 돼요. '응팔' 주인공 안재홍, 류혜영, 고경표 씨 모두 유람 씨 건대 동기, 후배들이잖아요. '응팔'에 함께 출연했지만 유람 씨는 조연이었고, 비중도 크지 않았죠.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아쉬움은 없었나요.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우선 돈을 저보다 많이 버니까(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기죽진 않아요. 저도 매해 거듭날수록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친구들은 실력도 있고 운도 작용했겠지만, 지금 이렇게 잘하고 있는 건 저한테는 진심으로 기쁜 일에요. 경표도, 혜영이도, 재홍이도 독립영화 찍던 시절부터 같이 고생 참 많이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은 저에게 스타이기에 앞서 친구예요. 그들이 잘하고 있으니 저도 잘하면 돼요."

-배유람의 시대가 언젠가는 오겠죠?

"종이에 물이 천천히 스며들 듯,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가듯, 언젠가 저도 좀 더 대중에게 알려진 좋은 배우가 돼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유람 씨의 삶에서 영화란 무엇일까요.

"음, 마치 수영하는 기분이랄까요. 인생이라는, 영화라는 바다 속에서 수영하는 느낌요. 제가 물을 헤집고 그 안에서 수영을 하면 많은 것들을 보기도 하고 찍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수영이라는 게 잘 안 될 때가 많죠. 파도가 거세질 수도 있고요. 처음 보는 것에 당황하기도 할 테고…. 영화가 인생을 닮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재밌는 거고요."

배유람을 만나고 돌아온 어느 늦은 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그는 조금은 느리게 걷는 중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느리게 걷는 것일 뿐, 걷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그리고 여기 중요한 사실 하나. 느리게 걸을수록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슬로모션처럼. 그리하여, 5년 전 움튼 작은 '예감'을 이제는 '확신'이란 단어로 바꾸어도 좋겠다. 세상이 점점 더 그에게 주목하리라는 기분 좋은 확신으로.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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