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17세 소년 첫사랑은 음악을 타고 온다

2018. 4.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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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3일 화요일 흐림.

콜 미 바이 마이 네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채우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성에서 성스러움을 느꼈다.

엘리오의 취미도 겉보기에만 고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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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운드트랙 음반 표지.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2018년 4월 3일 화요일 흐림. 콜 미 바이 마이 네임. #284 Sufjan Stevens ‘Mystery of Love’(2017년)

커다란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부서질 듯 가녀린 노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채우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성에서 성스러움을 느꼈다. 못 박힌 두 손에 힘이 풀린 성상을 보거나, 수난을 앞둔 신의 아들이 읊는 두려움의 독백을 엿들을 때처럼. 무기력함은 때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스티븐스는 애당초 영화의 내레이션 참여를 부탁받았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17세 소년 엘리오(티머시 섈러메이)의 내면에선 꼭 스티븐스의 음성이 울릴 듯싶다.

바흐, 라벨, 에리크 사티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조르조 모로데르를 지나 뿅뿅대는 1980년대 디스코까지. 다양한 음악이 섞여 출렁이는 영화에는 모순의 소재가 가득하다. 엘리오의 혼란한 마음을 표현한 걸까. 사람의 손과 동상의 손, 책과 복숭아, 바흐와 리스트, 정격연주와 즉흥연주, 버스와 기차, 여름과 겨울…. 지성과 본능, 영원과 순간, 쾌락과 학구 같은 것들이 여름 덩굴처럼 엉킨다.

엘리오의 취미도 겉보기에만 고상하다.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바흐를 곧잘 연주하고 클래식 채보가 일이지만, 외출할 땐 미국 록 밴드 ‘토킹 헤즈’의 티셔츠를 입는다. 방 벽에는 팝가수 피터 게이브리얼 포스터를 붙여 놨다. 영국 록 밴드 ‘사이키델릭 퍼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눌 땐 라디오 채널을 돌려 굳이 F.R. 데이비드의 ‘Words’를 배경음악으로 택한다.

시종 엘리오가 끼고 다닌 헤드폰 속에선 어떤 음악이 흘렀을까. 당연하다 여겼던 클래식이 아니었다면? 가는 손으로는 빳빳한 악보 위로 정갈한 음표를 그려나가는 동안, 그 거친 가슴은 록과 디스코의 리듬으로 뛴 건 아닐지. 상상 속에서 몰래 그의 카세트를 훔쳐낸다.

밴조의 분산화음. 스티븐스의 주제곡 ‘My-stery of Love’를 이끄는 그 소리가 마치 녹슨 토르소가 연주하는 하프 소리처럼 들려온다. 사랑은 그렇게 오래되고 새롭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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