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내뱉은 사과, 판사는 그를 법정 구속했다

서어리 기자 2018. 4. 3. 16: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판사 "기억해내라..피해자들이 원하는 사죄를 해야"

[서어리 기자]

 

'잘못은 인정하지만,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

과연 이를 사과로 볼 수 있을까? 40여 년 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 재직 당시 '간첩 조작'에 관여한 고병천 씨가 법정에서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했다. 하지만 뜨뜻미지근한 사과였다. 진심의 알맹이가 빠진 그의 사과는 피해자들의 분노를 더욱 키울 뿐이었다. 그가 끄집어낸 수십 년 전 기억 가운데에는 불리한 기억만 빠져 있었다. 


판사는 끝끝내 기만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그를 결국 법정에서 구속 처분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의 이름은 고병천. 보안사령부 수사관 출신. '방첩대' 시절부터 시작해 줄곧 한 길만 파기를 38년. 보안사에서 그는 '베테랑'으로 불렸다. 다름 아닌 간첩 조작의 베테랑. 다른 부서에 비할 데 없이 '실적'이 좋았던 학원반 내에서도 고 씨의 솜씨는 단연 으뜸이었다. 30~40년 전, 숱한 청년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간첩으로 탄생했다. 당시 '가짜 간첩' 제1 목표물은 재일 교포 청년들이었다. 북한에 대한 경계가 철저한 한국 내에서는 일반 사람이 남파 공작원을 접촉할 기회라는 게 극히 드물었다. 그에 비해 재일 교포의 경우 그가 접촉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사람을 손쉽게 대남공작원으로 꾸며낼 수 있었다. 게다가 영사증명서 조작도 비교적 용이했다. 


고 씨는 과거 보안사에서 근무하며 재일 교포 유학생인 이종수 씨, 윤정헌 씨를 각각 1982년, 1984년 불법 연행한 뒤 구타, 물 고문, '엘리베이터 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지난 2010년 열린 윤 씨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윤정헌에게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허위 진술했다. 이에 위증 혐의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기소당했다. 


<고병천 재판 기사>
① "고문 안 했다" 간첩 조작 수사관, 뻔뻔함 언제까지?
② 34년 만에 법정서 '간첩 조작' 잘못 시인한 수사관

판사가 말했다 "사죄를 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어야 진정한 사죄"


2일 오후 네 시 서울중앙지방법원 501호 법정. 방청석에 앉은 윤정헌 씨, 김정사 씨는 피고인석에 앉은 '고문 수사관' 고 씨를 초조한 얼굴로 응시했다. 

재일교포인 윤 씨와 김 씨는 유학생 신분이던 1980년대 영장 없이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가짜 간첩'이 되었다. 당시 이들을 가짜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구타, 물 고문, '엘리베이터 고문' 등 가혹행위를 자행한 이가 바로 고 씨다. 김 씨는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졌고, 이날도 휠체어 신세를 졌다.

고 씨는 가혹행위도 모자라 이후 법정에서 '구타나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허위 진술했다. 윤 씨는 이에 지난 2010년 위증 혐의로 고소했고, 고 씨는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판기일에는 피고인 고 씨의 사과문 낭독이 예정돼있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고 씨나, 방청석에 앉은 이들이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 씨의 사과문 낭독에 앞서 피해자 측 변호인이 "피고인은 과거부터 (혐의를) 소극적으로 부인한 게 아니라 가장 적극적으로 부인해온 인물"이라며 "이 자리에서도 소극적으로 넘어가려 하는 것 같다. 역사적 법정에서 죄책이 쉽게 빠져나가선 안 되니, 재판부에서 (고 씨가) 고문한 부분에 대해 확인을 꼭 해달라"고 요청했다.

고 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소극적으로 대충 사죄하는 척 흉내 내려는 것이 아니"라면서 "피고인은 일개 수사관이었다. 소위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 역사적인 모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맞는지, 또 30년도 지금 훨씬 넘은 사건에 대해서 과연 피고인이 역사적으로 반영할만한 사실을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받아쳤다.

▲고 씨로부터 과거 고문을 받은 윤정헌 씨(왼쪽)와 김정사 씨. ⓒ프레시안(서어리)

변호인들의 공방을 지켜보던 김 씨가 재판부에게 발언을 요청했다.

"4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40년이 지나도록 다리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고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지고 평생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웃으면서 저한테 물 고문, 전기 고문, 엘리베이터 고문을 다 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21살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온갖 고문을 했습니다.

역사의 책임을 이 사람한테 다 지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 피해자만 열댓 명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병천을 비롯한 몇백, 몇천의 고문 가해자들, 사회적으로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판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사죄라는 것은 받는 것이고 사죄를 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되어야 진정한 사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문 자체도 일방적이었는데, 사죄를 받는 것마저도 피고인이 본인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 한다면, 잘못을 인정하는 마당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에 피고인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고발을 하는 게 맞습니다.

이 사건은 위증 사건이지만 위증한 그 당시 사죄가 이뤄졌다면 이 사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안 끝난 것입니다. 피해자들은 그날 이후로 한 시도 시간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피해자들은 여전히 머물러있습니다. 시간을 흐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진정성 있는 사죄입니다. 사죄는, 하는 사람이 매우 커다란 손해를 감수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게 전제가 안 되면 너무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 씨를 향해 "준비한 발언 안에 피해자들이 원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는지"를 재차 물었다. 고 씨는 "사죄하고 용서를 빌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준비해 온 종이를 꺼냈다.
 
"윤정헌 씨에게 사과를 구합니다. 제가 이 사건 관련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가혹행위에 관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동료, 선후배들이 얽혀있어 검찰 수사 도중에도 진술을 번복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돌아올 눈총도 두려웠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된 생각으로 그동안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해 여기까지 온 것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면목 없이 용서를 구합니다. 윤정헌 씨를 비롯한 다른 분들에게도 죄송합니다."

고 씨는 분명 "사죄한다",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나 '무엇'에 대해 사죄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피해자 측 변호사가 던지는 질문에 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변호인 : 김병진 씨(또 다른 피해자)가 쓴 <보안사> 책 내용, 인정합니까?
고병천 : 김병진 씨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변호인 : 책은 읽었습니까?
고병천 : 읽어봤는데 기억도 없고, 왜 그런가 하면 김병진 씨는 일주일밖에 조사를 안 했습니다.
변호인 : 기억이 없는데 <보안사> 책 내용이 가짜라고 주장하셨죠?
고병천 : 제가 가짜라고는 안 했습니다.
변호인 : 신빙성 없는 내용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고병천 : 제가 읽어본 지가 하도 오래됐기 때문에...
변호인 : 윤정헌, 이종수 씨에 대한 고문, 인정합니까?
고병천 : 두 명은 인정합니다.
변호인 : 다른 분들은요?
고병천 : 그건 내가 누군지...
변호인 : 증인, 기억이 없다고 하지 말고요. VIP실, 엘리베이터실에선 어떤 식으로 고문했나요? 장지동에 엘리베이터 고문 시설 없다고 하셨었는데요.
고병천 : 내가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고, 잘못 진술했다고 하는 건데...죄송합니다.
변호인 : 어떻게 고문했나요?
고병천 : 잘 모르겠습니다.
변호인 : 뭘 반성하시는 것인가요?
고병천 : 죄송합니다.
변호인 : 고문범죄를 자행한 이유가 뭔가요?
고병천 : 죄송합니다. 내가 모자라서...

고 씨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진술했다.

변호인 : 이수희 씨, (검찰) 송치 후에 불렀죠? 서빙고실에. 본인이 자랑하셨던데요. 털 양말 사주고 했더니 이주광(이 간첩이라고) 불었다고요.
고병천 : (웃으며) 기억납니다. 그게 정초였습니다.
변호인 : 왜 검찰 송치 후 불렀습니까?
고병천 : 위에서 떡국이라도 먹이라고 해서 불러들였다. 그래서 떡국 먹이려 하는데 (이수희) 양말을 보니까 여름양말 신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말을 사줬더니 떡국을 먹다 말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이야기해도 되느냐'고 하더니 이주광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고 씨의 진술을 모두 들은 윤 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저는 이 사람이 보이는 공간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불안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재판 끝나고 다음에 사과하겠다고 그렇게 말해서, 기대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과가 아닙니다. 애매하게 말하고, 그냥 제발 빨리 끝내고 넘어가려고 가능하면 가볍게 형을 받고 집행유예라고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훤히 보입니다. 변호사가 한 질문은 피해자들이 알고 싶어 하던 이야기인데 제대로 대답을 안 했습니다."

판사 또한 고 씨에게 "피고인 본인이 누구에게 잘해준 내용은 모두 기억하면서도 불리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위증 사건이지만, 본질은 위증에 한정할 수 없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피고인은 오늘 피고인 신문 과정에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진술을 했는데 피해자 측에서 요구하는 사죄 방식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피고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억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기억을 해내야 하는데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을 해내라고 하면서 귀가를 시키는 것은, 누가 보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피해자는 물론이지만 피고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으리라고 상식적으로도 그렇다. 그런데 혹여 다른 생각을 할지 모를 그게 겁이 났습니다. 피고인은 적어도 재판을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도주,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아 구속영장을 집행하고자 합니다."

고 씨는 결국 판사 직권에 따라 법정 구속됐다. 고 씨는 법정을 떠날 때까지 재판부를 향해 빌 듯이 "잘못했습니다. 제가"라고 말했다. 판사는 수감을 앞둔 그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사과에서는 '무엇'이 중요합니다. 그 '무엇' 부분을 잘 기억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독자가 프레시안을 지킵니다 [프레시안 조합원 가입하기]

[프레시안 페이스북][프레시안 모바일 웹]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