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2018 성매매 리포트 ⑤ "포주는 정부였다"..수요 차단에 집중 '노르딕 모델'

권지윤 기자 입력 2018. 4. 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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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성매매 리포트 ①, , , >기사에서 보도했듯 한국에서 성매매 단속은 자의적이고, 국가의 처벌 의지는 낮으며, 방지 교육의 효과는 미미하다. 성매매에 대한 죄의식은 물론 처벌 두려움도 낮고, 비범죄시 분위기는 만연해 있다. 가장 큰 책임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에게 있다는 것을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취재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시리즈 마지막 편으로, 성매매를 둘러싼 정부의 이중적 태도를 집중 취재했다.
 
● 위안부 운영한 정부…"포주가 정부였다"
 
성매매에 관한한 한국 사회가 숨기고 싶은, 정부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바로 '정부가 포주'라는 사실이다. '기지촌(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유흥시설)'이 이를 증명한다.
 
1945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성매매 집결지인 미군 위안소, 즉 기지촌이 조성됐다. 성매매 여성을 위안부라 칭하며 기지촌을 관리했던 것은 정부였다. 1957년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에서 서울로 이전할 때 정부는 UN과 함께 합의문을 작성했다. 내용은 ‘외국군을 상대하는 매춘 여성에 대한 성병 관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은 1957년 시행된 구 전염병예방법에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법 4조에 따르면 미군 상대 성매매 여성을 '위안부'로 칭하며 위안부는 1주 2회씩 성병 검진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미군 상대 성매매 여성을 정부가 관리하고 있었던 셈이다. 정부의 이런 행태는 성매매를 불법이라고 선언한 뒤에 도리어 노골화했다.
 
● 성매매 불법 선언 뒤에도, '성매매 집결지' 조성한 정부
 
정부는 1961년 성매매를 전면 금지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이듬해엔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성매매를 금지하는 UN인신매매금지협약에 가입하고 이를 발효했다. 그리고 동시에 성매매를 허용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정부가 '적선지대(赤線地帶)' 104곳을 설치한 것이다. 빨간등을 내걸어 '홍등가'라고도 부르던 적선지대는 성매매집결지(일명 '사창가')를 말한다. 법무부, 내무부, 보건사회부는 공동지침을 통해 '성매매 단속을 하지 않은 지역' 즉, '적선지대(또는 특정지역)' 104곳을 지정해 성매매 영업을 가능토록 했다. 해당 지역엔 이태원, 동두촌, 의정부 등 32개 기지촌과 영등포역 용산역 근처 성매매 집결지가 포함됐다.
 
당시 정부는 “윤락녀의 집단화 유도로 포주로부터 착취 방어, 효율적 성병 관리”를 목적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달랐다. 위안부에게 매월 2~8회 성병 검진을 받은 뒤 '건강증'에 도장을 받도록 했다. 도장이 없으면 수용 시설로 보냈다. 성병 검진을 기피하는 여성을 상대로 미군과 함께 속칭 '토벌'(성병 단속)을 진행한 뒤, '낙검자수용소'에 강제수용했다. 특히 성병에 감염된 미군이 자신과 성매매를 한 여성이라고 지목만 하면 곧장 수용소로 보내기까지 했다.
 
정부가 성병 관리에 나선 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위안부를 통한 '외화 획득, 동맹 강화' 목적이었다. <마부작침>이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를 다수 입수했다. '1973년 서울시 시정개요' 문서를 보면 “관광자원을 개발해 부가가치를 창출 한다”는 방안으로 '관광 종사원 교육 실적'을 소개하고 있다. 교육 명칭에 '기지촌 접객업소 여성교육'이 적시돼 있고, 대상 인원수까지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기지촌 여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다는 뜻이다.
 
● "무릎 세워 앉아라" 교육한 공무원, "안보 우려…최선의 서비스" 당부한 경찰
 
박정희 정권인 1960년 이후부터 정부의 성매매 시장 개입은 더욱 심해졌다. 공무원들이 위안부에게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앉아라”는 등 자세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국내 안보 강화'를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해 달라”고 당부도 했다. <마부작침>이 확보한 '1971년 6월 14일 용산경찰서장'이 기지촌 여성에게 보낸 공문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적혀있다.

 

※ 용산경찰서장 공문 전문보기 ☞ http://bit.ly/2GgscIY

성매매 여성을 안보는 물론, 돈벌이에 이용했던 정부는 위안부를 격려하며 노후보장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기지촌의 환경과 질을 개선하고자 정부 주요 부처 차관들이 모여 회의를 열기도 했고, 이런 사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명한 '1977년 기지촌 정화대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기지촌정화대책 전문보기 ☞ http://bit.ly/2IWA0Bk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정부는 방조, 묵인을 넘어 사실상 '포주'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2월 8일 법원도 이런 사실을 인정했다.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며 피해자 57명에게 5백만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기지촌 위안부에게 외국군이 안심하고 성매매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외국군의 사기를 진작해 군사동맹 유지에 기여하는 한편 외화 획득과 같은 경제적 목적으로 위안부를 동원했다”고 판단했다. 성매매 근절에 책임이 있는 정부가 도리어 성매매를 조장하며 정당화시킨 불법을 저질렀다고 인정한 것이다.
 
● 원죄의 정부, 성매매 근절에 적극 나설까?
 
돈벌이 수단으로 여성의 몸을 관리하며 서비스 교육까지 시켰던 국가 입장에선 씻을 수 없는 원죄가 남게 됐다. 국가가 자행한 반인권적 범죄에선 시효 완성을 주장한다고, 업보까지 사라질 수는 없다. 다만, 잘못을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문민정부 출범이후, 정부는 1995년 윤락방지법을 전면 개정해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데 이어, 2004년엔 별도의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성매매를 불법이라고 명시한 법'과 '합법처럼 만연한 현실'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2018 성매매 리포트①, , , >기사에서 보도했듯 효과는 미미했고, 도리어 한국의 성매매 시장은 세계 6위(<2018 성매매 리포트①> 기사 참고)로 커져갔다.
 
성매매에 대한 낮은 처벌 의지, 자의적 단속, 성매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 왜곡된 성관념 등이 종합적으로 빚어낸 결과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제도로는 성매매 근절이 어렵다”며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성매매 합법화가 대안?…불법 인신매매, 폭력 등 불법만 조장
 
성매매 피해를 막기 위해 국가마다 다양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과 같이 성구매자와 성판매자 모두를 처벌하는 국가가 다수이고, 독일과 같은 일부 국가는 성매매를 합법화해 제도권에서 규제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합법화를 주장하는 쪽이 있다. 성구매자와 판매자를 모두 처벌하는 '근절주의' 대신, 합법화를 통한 '규제주의'를 도입해야 성착취 목적 인신매매 등 유해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합법화는 성판매자와 업소의 양성화, 즉 성판매자를 직업으로 인정해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폭력이나 강제 성매매 등 불법적 착취를 막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성매매 합법화 제도는 결과적으로 애초 목적과 반대로 성판매자의 인권을 후퇴시켰고, 도리어 성적 착취를 증가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김지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본부장은 “합법화해도 성매매는 여전히 음성화되면서 여성 상대 착취는 심해졌고, 그 피해는 더 낮은 계층으로 옮겨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 정부가 5년 뒤 발간한 보고서도 이런 점을 지적했다. 성판매자의 1%정도만 업소와 고용계약서를 작성하고 99%는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지 못하면서, 합법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또, 성판매 여성 중 87%가 물리적 폭력, 59%가 성폭력 경험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합법화 이후에도 성판매자의 90% 이상은 여성이었고, 특히 이 중 65%는 이주여성이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특히 남성의 성구매가 크게 늘어 성매매 시장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또 다른 성매매 합법화 국가인 네덜란드에서도 부작용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UN인권이사회 보고서(2012)'는 네덜란드 성매매 여성의 60~70%가 범죄조직에게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합법화가 성판매자의 인권 보장이 아닌 성구매자, 즉 남성의 독점적 소비 권리, 포주의 이윤 회득, 여성의 상품화만 고착화시켰다는 지적이다.
 
● '성구매자만 처벌' 효과 증대…유럽의회 “수요 차단 노르딕 모델 권고”
 
성매매의 본질과 속성을 직시해야 성매매도 근절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불평등에 기인한 착취라는 사실이다. '성구매자, 판매자'를 모두 처벌하는 한국이나, 성매매를 합법화한 국가에서도 성매매 대상, 즉 성 상품이 된 건 항상 여성, 착취의 대상도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이 최근 대안으로 떠올랐다. 1999년 스웨덴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성구매자를 형사 처벌하는 반면, 성판매자는 처벌 대신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등도 이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들 국가 모두 성매매의 근본 원인을 수요에서 찾았고, 수요를 차단해야 성매매를 근절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비롯한 성범죄의 본질과 현실을 인정했기에 이 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 스웨덴은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성매매에 유입된 여성 대부분은 가정폭력과 경제적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는 취약계층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의 지배, 소수 집단에 대한 주류 집단의 지배 등 불평등에 기인한 폭력성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또 성매매에 한번 유입되면 벗어나기 힘들고, 처벌을 받게 되면 벗어나는 게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때문에 스웨덴은 성판매자에게 처벌 대신, 주거·법률·교육·보육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데 방점을 둔 것이다. 법 시행 이후, 효과도 있었다. 제도 시행 전 13.6%였던 성구매 경험 응답 비율이 8%로 줄었고, 성판매자도 최대 75% 이상 감소했다. 게다가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효과에 힘입어 노르딕 모델을 시행하는 국가가 최근 크게 늘어났다. 성에 자유롭고 관대하다던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기존에 성매매를 범죄로 간주하지 않았다. 노르딕 모델 도입을 두고 6년 간 논란을 벌인 프랑스는 지난 2016년 이 법을 시행했다. 성매매를 합법화했던 캐나다도 제도를 전면 수정해 지난 2014년 노르딕 모델로 전환했고, 아일랜드 역시 지난해인 2017년 3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성매매 합법화 국가와 극명히 대비되는 효과가 드러나면서, 유럽의회와 유럽위원회는 지난 2014년 “각 국가들이 노르딕 모델을 채택하도록 권고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 시켰다.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노르딕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 적이 있다. 지난 2016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현행 성매매처벌법에 대해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당시 일부 위헌 의견을 낸 김이수, 강일원 재판관은 성구매자 처벌에 동의하고 성 판매자 처벌에는 반대하며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재판관은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남성의 성적 지배와 여성의 성적 종속을 정당화는 수단”이라며 “성판매자는 처벌이 아니라 보호와 선도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성판매자를 처벌하면 여성의 성이 착취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오히려 성매매 시장을 음성화시킨다고 판단했다. 성판매자에겐 지원과 보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노르딕 모델을 제안한 것이다. 김지혜 본부장은 “성차별, 여성 차별의 가장 극단치에 있는 게 성매매”라며 “한국도 수요 차단에 방점을 둔 노르딕 모델을 적극 고민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김학휘 기자 (hwi@sbs.co.kr)
안혜민 분석가(hyeminan@sbs.co.kr)
디자인: 장지혜
인턴: 김인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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