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로 이어진 미국의 판단..석연치 않은 방화사건

손령 2018. 4. 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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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내일(3일)이면 제주 4·3 70년이 됩니다.

저희가 연속 보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민간인 3만 명 대량학살로 이어진 데에는 석연치 않은 방화 사건이 빌미가 됐다고 주민들은 증언합니다.

당시 미 군정의 개입도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손령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광복 직후 미군정이 촬영한 한국 관련 영상을 보관하고 있는 미국 국립문서 보관소입니다.

미국 내셔널 아카이브에 보관된 1948년 제주도의 모습입니다.

불에 타는 마을과 무장 대에 살해된 주민들, 긴박하게 출동하는 경찰은 마치 전쟁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연출된 화면이라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강상현/성공회대 교수] "오라리가 습격당했는데 습격당하자마자 지상과 공중에서 촬영되고 있어요. 준비된, 사실 조작됐어요. 이 사건은…"

미군이 촬영한 이 영상은 이른바 '오라리 방화 사건'.

경찰은 무장대가 불을 질렀다고 보고했고 미군정 역시 이 영상을 제주도가 불안한 상황이라는 판단 근거로 삼았습니다.

영상이 촬영된 5월 1일은 무장봉기를 일으킨 무장대와 국방경비대가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한 '평화협상'을 벌인 직후입니다.

미 군정은 이 방화사건을 빌미로 강경진압으로 정책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정작 오라리 주민들은 경찰과 함께 움직이던 우익청년들이 불을 질렀다고 말합니다.

[박기찬/당시 오라리 주민] "00이가 왔었어. 횃불로 여기 붙이고 저기 붙이고. 붙여놓고 냅다 도망가더라고…"

국방경비대에 의해 방화범으로 지목됐던 우익단체 회원 박 모 씨는 아예 경찰관이 되어 국방경비대를 빨갱이라고 주장합니다.

[박 모 씨/당시 방화 혐의자] "9연대가 다 폭도였어요. 동네 사람들이 폭도지. 다른 사람들이 어디 폭도가 있어요?"

미군정 역시 '평화 협상'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이미 정한 상태였습니다.

'평화 협상'을 국군경비대와 좌익분자들의 결탁이라고 미리 단정했습니다.

제주도에 파견된 미군정 장교는 "진압을 위해서는 신속하고 활발한 공격적인 작전이 요구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후 미군정은 협상을 벌였던 국방경비대의 김익렬 연대장을 해임하고 강경파를 임명하면서 초토화작전은 시작됩니다.

[에드워드.J 베이커/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부소장] "(미군정 시기였기 때문에) 우연으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제주도는 공산화의 저지선이었습니다."

주한 미 대사관은 미국 책임 부분과 관련한 MBC의 질의에 대해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미국정부는 제주4·3과 관련한 당시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만 아직 20여 건의 핵심 자료는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손령입니다.

손령 기자 (right@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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