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그 '이름' 찾아서..70년 아픔 가진 유적 곳곳에
[앵커]
제주 4·3 사건. '1948년과 54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 주민들이 희생 당한 사건'. 특별법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반란이나 폭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국군에 의한 학살이 밝혀지면서 항쟁이나 운동의 의미를 담자는 의견에 힘이 실립니다. 결론은 나지 않았고, 그래서 수식어 없이 그냥 제주 4·3으로 불립니다. 그 4·3이 모레(3일)면 70주년입니다.
제주 곳곳의 아픔의 현장, 최충일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강석배/제주 해안동 : 무서워서, 젊은 사람 보면 잡아가니까. 군인 보면 대화를 해야 하는데 보면 죽여버릴까 봐 도망가거든요.]
제주 4·3 당시 군경 주둔소를 찾아가는 길.
70년 전 기억을 떠올리는 강석배 할아버지 얼굴에는 아직도 회한이 묻어납니다.
강 할아버지의 부모님을 비롯한 마을주민들은 주둔소를 짓고 운영하는 데도 강제 동원됐습니다
[강석배/제주 해안동 : (돌을) 지게 지고 그때는 등짝으로 지어오고 하면 등 벗겨지고 손도 터지고 고생들이 많았고…]
이런 아픈 기억을 드러내는 것은 그동안 제주 사람들에겐 금기사항이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한상봉/제주 향토 해설사 : 그 트라우마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공개하기 꺼렸고 그렇지만 이제는 공개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주둔소를 비롯한 4·3 유적들의 문화재 등록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인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은 만큼 학살터들도 남아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단 며칠 만에 불 타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 유적도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제주도는 4·3 유적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아픔을 나누는 역사 교육 현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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