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 씌었다" 가평 노부부 죽음으로 내몬 이단종교

전익진 2018. 4. 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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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에 씌었으니 하나님 곁으로 가야"
딸과 이단 종교 교주의 이상한 행동
노부부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추정

딸과 교주, 자살방조 등 혐의 적용
4개월만에 아내 추정 변사체도 발견
종교적 주입으로 자살토록 한 혐의

[사건 추적] 가평 노부부 실종 사망 사건…실체 서서히 드러나

가평 북한강. 전익진 기자
딸과 종교단체 교주에 의해 노부부가 자살로 내몰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딸과 종교단체의 교주에 의해 강변에 버려진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70대 여성의 시신이 최근 발견된 것이다. 함께 강가에 버려진 뒤 숨진 남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지 4개월여 만이다.

1일 경기 가평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오전 11시 10분쯤 강원도 춘천시 북한강 경강교 인근 물 위에서 백골 상태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지난해 11월 11일 A씨(43·여)씨와 B씨(63·여·교주)에 의해 인근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변에 버려진 뒤 자살한 A씨의 어머니 C씨(77)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시신이 4개월여 간 물에 잠겨 있어 완전 백골 상태이기에 정확한 신원을 확인하기는 어려웠으나, C씨가 실종 당시 입고 있던 검정색 외투와 하의 등을 토대로 신원을 추정했다. 경찰은 정확한 신원과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감식과 시신 부검을 의뢰해 둔 상태다. 부검 결과는 이달 말쯤 나올 예정이다.

A씨의 아버지 D씨(83)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유기돼 다음 날인 지난해 11월 1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번에 C씨가 발견된 지점은 D씨가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북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지난해 12월 의정부지검은 A씨와 B씨를 존속유기 및 자살방조와 유기 및 자살방조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했고, 현재 이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기독교 이단계열 종교단체의 교주격인 B씨는 이들 노부부에게 종교적 주입을 통해 자살할 마음을 먹도록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D씨 부부는 B씨로부터 ‘용이 씌었으니 어서 회개하고 하나님 곁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를 계속 들어 자살을 마음먹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B씨와 이를 추종한 A씨의 말 등을 종합하면 ‘용’은 ‘마귀’ 또는 ‘사탄’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1월 12일 오후 3시쯤 경기도 가평군 북한강의 한 다리 밑에서 한 노인의 시신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마을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숨진 노인의 신원 파악에 나섰다. 강에서 20㎞ 떨어진 가평군의 한 마을에 사는 D씨였다. 경찰은 D씨의 사망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그의 몸에선 별다른 외상은 발견되진 않았고, 사인은 익사(물에 빠져 사망)로 판정됐다.
북한강. [중앙포토]
이에 경찰은 D씨가 뜻밖의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시신을 인도하기 위해 D씨의 가족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사체를 발견한 지 사흘 후 D씨의 딸 A씨와 연락이 닿았다. A씨는 “아버지가 맞다”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손을 잡고 놀러 갔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부모가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된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A씨는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경찰은 연락이 닿지 않는 D씨의 아내이자 A씨의 어머니인 C씨를 찾기 위해 수사팀을 꾸렸다. 그리고 은밀하게 A씨를 조사했다. 놀랄만한 사실이 포착됐다. 경찰이 D씨의 집 주변에 설치된 폐쇄회로 TV(CCTV)를 조사한 결과 “함께 손을 잡고 외출했다”던 D씨 부부가 D씨의 시신이 발견되기 하루 전인 11일 오후 7시 20분과 9시 40분 두 차례에 걸쳐 집을 나선 것이다.

딸과 다른 사람이 탄 봉고 차량에 부부가 태워지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딸의 거짓말을 확인한 경찰은 차량에 탄 인물을 추적했다. 차 속에는 A씨와 친분이 있는 B씨가 있었다. A씨는 경찰에서 “아버지는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조용한 곳에 내려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곳에 내려달라’고 해서 차에 태워 북한강에 내려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A씨는 사건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으나 CCTV에 자신이 노부모를 차에 태우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범행이 탄로나자 “무면허 운전을 한 사실이 들통날까 봐 그랬다”고 변명했다. B씨는 “평소 D씨 부부가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D씨는 미국에서 30년간 살다 3년 전쯤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후 2016년 10월부터 가평군의 집에서 살아왔다. 미혼인 A씨는 국내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했으나 “학원 일이 힘들다”며 사건 한 달 전 그만뒀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B씨가 이끄는 종교단체의 신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B씨는 과거 한 기독교 종파의 목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교단이 있거나 교회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마음이 맞는 이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하고 기도하는 종교”라고 설명했다. 신도들도 B씨를 교주가 아닌 ’선생님‘으로 불렀다고 경찰은 밝혔다.

D씨의 집은 방이 4개 있는 214.5㎡(65평) 규모다. D씨 부부와 딸 A씨 말고도 다른 가족 3명도 살고 있었다. 경찰은 이들도 B씨가 이끄는 종교단체의 신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의 수사에 “잘 모른다”며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 B씨는 A씨 등을 만나기 위해 D씨의 집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가평=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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