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것이 정도경영입니까?"..LG디스플레이 '갑질' 논란

한세현 기자 2018. 4.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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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앞을 가보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시위자들이 모여 각자의 사정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경북 구미에서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를 운영했던 김호영 대표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갑질 LG디스플레이는 각성하고 사죄하라."란 문구를 들어 보이며, "무엇이 인간존중의 경영, 정도경영인지 묻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사연은 2012년으로 올라갑니다. 김 대표는 그해 7월부터 '태영물류'라는 LG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를 운영해왔습니다. 김 대표는 직원들을 데리고 LG디스플레이 구미공장에서 불량제품을 선별하고, 품질검사, 최종 제품을 포장하는 등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비록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근무했지만, 김 대표는 '태영물류'라는, LG디스플레이와는 엄연히 법적으로 다른 별도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제조사가 공정 내 일부 사업을 협력업체에 맡겨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소사장(小社長)'제도 업체였던 것입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대표

● '갑'의 일방적인 계약 변경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은 멀고 현실은 가까웠습니다. 분명 별도의 개별 법인이었지만,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은 '태영물류'라는 협력업체를 마치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이른바 '갑의 횡포'를 부렸다고 김 대표는 주장합니다.

실제로 취재 결과, LG디스플레이는 공식적인 계약과 별도로 다른 내용의 계약을 협력업체에 강요해 '이면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애초 LG디스플레이는 김 대표 회사가 검수하고 생산한 물건 '개수'에 따라 돈을 주기(개수X단가, 물량X단가)로 계약(물량도급)을 맺었는데-쉽게 말하면 "10원짜리 10개 만들면 100원을 주겠다."-이런 내용으로 계약하고는 실제로는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 '직원'에게 직접 임금을 주는 방식의 계약(인도급)을 다시 맺은 겁니다.

LG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 대표에게 물건 생산에 대한 대금을 지급하고, 협력업체 대표는 그 대금을 경영 상황에 맞춰 자신의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는 게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그런데 LG디스플레이는 이면계약서까지 만들며 정상적인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지급할 임금 '항목표'까지 직접 만들어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을'인 협력업체 대표들은 저항도 못 하고 '갑'의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사실상 협력업체 대표들은 자신의 회사를 경영할 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럼, LG디스플레이는 왜 이렇게 협력업체들과 기이한 계약을 진행했을까요?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직원 퇴직금 반환 요구

● 협력업체에 돈을 덜 주기 위한 '꼼수'

이에 대해 노무사와 변호사, 학계 및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협력업체에 대금을 적게 주기 위해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면, 앞서 설명한 대로 생산한 물건에 대해 대금을 지급할 경우, '개수X단가'로 총액을 산정해 협력업체에 돈을 주면 됩니다. 매우 간단한 셈법입니다.

그런데 만약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 직원에게 임금을 바로 준다고 하면 상황은 좀 더 복잡해집니다. 임금은 기본급에 상여금과 각종 수당, 연금, 격려비 등 여러 항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항목으로 돼 있다는 건, 그만큼 편법이 들어갈 여지가 많아진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습니다.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은 "물건 1개에 대해 일정 금액을 주기로 했다고 하면, 생산량X단가를 하면 바로 협력업체에 줘야 할 총액이 나온다. 계산이 쉬운 만큼 어기면 적발되기도 쉽다. 그런데 사람에게 임금을 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임금에는 상여금이나 격려비, 보험료, 각종 수당 등 많은 항목이 포함돼 하나씩 다 자세히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 항목들 가운데 일부를 덜 주거나 혹은 줬다가 돌려받거나, 아니면 아예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주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원청회사가 이런 갑질을 해도 잘 드러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일감을 받아야 하는 처지인 협력업체로선 함부로 불만을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명절 연휴에 계속 근무하지 않았다며 '명절 격려비'를 지급했다가 다시 빼앗아 갔습니다. 또, "본사 경비를 절감해야 한다."라며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연차수당과 퇴직충당금 등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 나아가 원청회사가 지급하도록 법에 명시된 '관리감독자 안전교육비'조차 협력업체에 떠넘겼습니다. 이렇게 4년간 협력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대금이 7억 원에 달한다고 김 대표는 주장합니다.

● 부당한 경영간섭…협력업체 대표 뒷조사까지

이처럼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려면, 기본적으로 협력업체의 재무상황을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원이 몇 명이며, 근속 연수는 얼마이고,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파악해야 그에 맞춰 임금을 적게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LG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에 경영상황을 수시로 보고하라고 요구해 제출 받았습니다. 재무제표, 근무 및 급여 대장, 보험료, 공과금 및 세금 납부 내역, 경비 지출 내역, 주주명부 등 제출받은 서류도 참 다양했습니다. 법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된 다른 회사의 경영 상황을 요구하는 건 계약서에도 없는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저는 LG디스플레이 공장이 있는 경북 구미와 경기 파주에서 며칠에 걸쳐 현장취재를 하며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관계자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협력업체 직원은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이 협력업체 경리직원들을 수시로 불러 관리·교육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또, "협력업체에 현재 직원 수, 입사일, 퇴사일, 근속연수 등을 모두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고, 보고한 내용이 맞는지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직원 수를 헤아려 보기까지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협력업체 경리직원도 "직원 중 개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걸 왜 제때 보고하지 않았느냐?"라며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이 따져 물었고, 심지어 일당 4만 원을 안 주려고 직원들의 퇴직일을 법에 명시된 기준보다 하루 일찍 당겨서 기록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모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대표는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 대표들을 불러 면담을 하며 어떻게 이윤을 냈느냐, 돈을 너무 많이 번 게 아니냐, 왜 이렇게 이익을 많이 남겼느냐라고 말하는 등 협력업체를 마치 도둑처럼 보는 게 괴로웠다."라고 진술했습니다. 법적으로는 분명 별도의 회사였지만, 사실상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를 직접 관리하고 대신 경영까지 했던 셈입니다.

LG디스플레이는 더 나아가 협력업체 직원들을 주기적으로 불러내, 협력업체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정보도 확인하곤 했습니다. "사장이 출근은 제때 하느냐, 회식은 얼마나 자주 하느냐, 사장이 근무 시간에 다른 짓을 하느냐 등의 질문을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했고, 면담이 끝난 뒤엔 밖에 나가서 무엇을 물었는지 말하면 안 된다며 입단속까지 시켰습니다.

● 협력업체 미지급 대금도 거부

참다못한 김 대표는 LG디스플레이와의 협력 관계를 끊기로 하고, 미지급 대금 7억 원을 달라고 청구했습니다. 그러자 LG디스플레이는 김 대표에게 직원들을 보내 김 대표가 가진 서류를 검토했고, 이후 김 대표 요구보다 5천만 원이 줄어든 6억 5천만 원을 주겠다는 의사를 구두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후 6.5억 원은 잘못됐다며 3.5억 원만 주겠다고 수정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돈의 성격은 '합의금'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대표는 LG디스플레이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거절 이유는 액수가 아닌 합의서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LG디스플레이가 제시한 합의서엔 '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문구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회, 청와대, 공정거래위, 고용노동부, 국세청, 중소기업청 기타 일체 국가기관, 공공기관에 대한 신고와 민원제기, 진정, 조사 촉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 경찰, 검찰 기타 일체의 수사기관에 대한 고소·고발, 진정 민원제기, 법원에의 민형사상 소 제기, 가압류, 가처분 등 보전처분, 언론기관, 노동단체, 시민단체에 제보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더 나아가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합의금의 3배액을 돌려주고, 이와 별도로 갑이 입은 손해를 전부 배상해야 한다."라고 적시했습니다. 사실상, 돈을 주는 대가로 불법적인 상황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 LG디스플레이 "불가피한 관리·감독…요구 금액은 차이 있어"

이에 대해 LG디스플레이는 "기존 계약과 달리 협력업체에 대금 지급방식을 바꾼 것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협력업체에 적정한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혔습니다. 협력 업체를 위한 일종의 '배려'였다는 취지입니다. 또, "과거 일부 협력업체가 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했었고, 그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대금 미지급에 대해선 "김 대표가 요구한 금액은 부적절하게 계산된 것으로 자사가 다시 계산해 새로운 금액을 제시한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렇게 새로운 금액을 주겠다고 제시한 것도 전 LG디스플레이 직원이기도 했던 김 대표에 대한 예우였다."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이번 사안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인 만큼 그 결과를 기다리겠다."라고 전했습니다.

● '창조경영', '인간존중의 경영'은 무엇일까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저는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경북 구미와 경기 파주 현지에 머물러 다수의 전·현직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들이 털어놓은 얘기를 들을수록 더 혼란스럽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LG그룹이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또 제가 과거 LG그룹을 출입하며 들었던 '인간존중의 경영', '정도경영'과는 크게 동떨어진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 LG디스플레이는 지난 1월 노동·인권보호 단체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최저임금 지급 위반기업 10곳'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계부처 차관들과 함께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LG그룹을 방문했습니다. 그만큼 LG그룹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김 부총리는 "협력업체 상생에서 모범이 되는 기업"이라며 LG그룹을 치켜세운 뒤 "상생협력 관련 아이디어를 기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부총리가 아름답고 희망적인 바람을 전할 때,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대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부총리님, 구본무 회장님. 정말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협력업체와 맺은 계약을 강압적으로 바꾸고, 대금을 깎고,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대표 뒷조사까지 하는 게, 이게 정말 LG그룹의 경영이념인 '창조경영', '인간존중의 경영', '정도경영'입니까?"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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