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알쓸신세] 치명적 '미세 플라스틱' 공포..韓 면적 15배 쓰레기 섬

이영희.허정원 2018. 4. 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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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북태평양 거대 쓰레기 섬에 감춰진 비밀


[알쓸신세] 미세먼지만큼 무서운 미세 플라스틱 섬, GPGP를 아세요
북태평양에 있는 미국 하와이섬과 캘리포니아 사이, 대한민국 면적의 15배가 넘는 약 155만㎢ 넓이의 거대한 섬이 있습니다. 화폐에 여권, 국기까지 있는 ‘준비된’ 나라지만, 사람은 살지 않습니다. 아니, 살 수 없죠. 그런데 이곳을 국가로 인정해 달라고 유엔에 청원한 사람들이 3월 말 기준으로 22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전 부통령이 자발적으로 이 섬의 시민이 되겠다고 나섰죠.

이 섬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요. 사람들은 왜 이 섬을 나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일까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 알쓸신세]에서 이런 의문들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쓰레기가 인생을 바꾸다
바다 위에 뜬 쓰레기 사이를 배가 지나고 있다. [중앙포토]
1997년 여름, 한 남자가 바다에서 힘겹게 요트를 타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이름은 찰스 무어. LA에서 하와이까지 요트로 횡단하는 경기에 참가 중이었죠. 바람도 파도도 없는 적막한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던 그는 이상한 느낌에 휩싸입니다. 수면 바로 아래에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수없이 떠있었던 겁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수평선으로 향하자 해조류처럼 바다를 뒤덮고 있는 플라스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태평양 위에 존재하는 거대 쓰레기 섬 ‘GPGP’가 처음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무어가 발견한 ‘GPGP(Great Pacific Garbage Patch)’는 ‘태평양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섬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이뤄져 있단 걸 알아챈 찰스 무어는 요트 대회가 끝난 후 GPGP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험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해양 환경오염 전문가가 됩니다. 이런 그의 이야기는 LA타임스에 실리게 됐고, 이 기사는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쓰레기 섬 지분의 3분의 1은 일본, 3분의 1은 중국

쓰레기들은 왜 이곳으로 몰려와 거대한 섬을 이루게 된 걸까요. 추측만 난무하던 섬의 정체는 최근에야 자세히 밝혀졌습니다. 비영리 연구 단체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이 세계의 여러 과학자들과 협력해 3년 간 GPGP를 추적해 2018년 3월 23일 그 결과를 공식 발표한 겁니다.

조사팀에 따르면 섬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개수는 약 1조 8000억 개, 무게는 8만 t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초대형 여객기 500대와 맞먹는 무게로, 당초 연구진이 예측한 것보다 4~16배 정도 큰 수치였습니다.
그린피스의 아담 월터스가 북태평양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를 걷어 올려 보여주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예상치보다 쓰레기가 늘어난 이유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해양대기청이 2015년 내놓은 보고서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450만 t에 가까운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됐고, 그 중 140만 t은 먼 바다까지 퍼져나가 북태평양을 떠돌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GPGP 내에서 쓰레기를 대량 수거해 부착된 라벨을 확인한 결과, 일본어로 쓰인 것이 30%, 중국어로 쓰인 것이 29.8%였습니다. 원산지 표기를 확인해 보니 역시 일본 제품이 34%로 가장 많았습니다. 아시아에서 북태평양 방향으로 흘러가는 쿠로시오 해류가 이를 실어 나른 것이죠. 이 외에도 원산지 표시에서는 12개의 다른 언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세먼지만큼 무서운 ‘미세 플라스틱’의 공포

연구팀은 보다 세밀한 조사를 위해 채집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크기와 용도에 따라 각각 4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봤습니다. 0.05~0.5cm 크기의 소형 플라스틱, 0.5~5cm 크기의 중형 플라스틱, 5~50cm 크기의 대형 플라스틱, 그리고 50cm이상인 초대형 플라스틱으로 나눈 겁니다. GPGP에는 초대형 플라스틱 쓰레기가 4만2000 t으로 가장 많았고 그 중 절반에 가까운 46%가 고기를 잡을 때 쓰는 그물이나 양식 어망 등이었습니다.

파도에 밀려온 해안가의 쓰레기. [사진 그린피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거대 플라스틱이 아니라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는 제거하기가 오히려 수월하지만 5mm 미만의 무수히 많은 미세 플라스틱들은 걷어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플라스틱은 분해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처음엔 대형이었던 플라스틱도 아주 미세한 입자가 될 때까지 바다에서 살아남습니다. 해류에 의해 마모되거나, 태양열에 의해 부스러지면서요.

바다를 근거로 살아가는 해양 생물들은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하기 쉽습니다. 이를 먹은 동물들은 성장과 번식에 장애를 겪거나, 장폐색, 섭식 장애 등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되죠.

독일의 한 갯벌에서 죽은 갈매기 뱃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사진 그린피스]
뿐만 아니라 물고기의 몸 속에 축적되어 있던 미세 플라스틱은 인간의 체내로 옮겨갑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지중해에서 어류 표본을 채취해 플라스틱 부스러기의 유무를 조사했죠. 그 결과 18% 이상에서 미세 플라스틱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황새치, 참다랑어와 같은 인기 어종도 있었고 북해에서 양식된 홍합과 대서양에서 기른 굴, 심지어 소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미세 플라스틱이 독성 화학 물질을 옮기는 운반체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나일론과 같은 석유화학 물질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주변의 유해 화학 물질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특성이 있습니다. 유독 물질을 흡수한 미세 플라스틱이 물고기의 몸을 거쳐 우리의 식탁에 오르고 있는 것이죠.


플라스틱 섬을 국가로 인정해주세요

이 쓰레기 섬에 국기와 화폐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말씀드렸죠. 이는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과 GPGP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환경 운동입니다.
쓰레기 섬 지폐. [사진 DAL&MIKE 홈페이지]
쓰레기 섬 지폐. [사진 DAL&MIKE 홈페이지]
쓰레기 섬 우표. [사진 DAL&MIKE 홈페이지]
쓰레기 섬 1호로 발행된 엘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의 여권. [사진 DAL&MIKE 홈페이지]
2017년 초 광고제작자 마이클 휴와 달 데반스 드 알메이다는 UN에 쓰레기 섬을 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국명을 ‘쓰레기 섬’이라는 뜻의 ‘Trash Isle’로 정하고 소셜미디어컴퍼니 LADbible을 통해 온라인 청원을 진행했습니다. 이 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GPGP를 알게 되었고, 미국의 전직 부통령 앨 고어는 이 청원에 참여해 쓰레기 섬의 1호 국민이 됐습니다.

국기와 여권, 화폐, 우표는 런던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마리오 커크스트라와 토니 윌슨이 만들었습니다. 화폐에는 플라스틱 그물에 목이 칭칭 감긴 바다사자와 갈매기, 플라스틱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화폐의 단위는 쓰레기 잔해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더브리(debris)’로 정했습니다.


쓰레기 섬, 없앨 수 있을까

최근 GPGP 연구 보고서를 발간한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의 창립자 보얀 슬랫은 구체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그가 발명한 이른바 ‘떠다니는 장벽(floating barrier)’은 높이 3m, 길이는 무려 100km에 달하는 V자형의 울타리입니다. 쓰레기는 원형으로 순환하는 해류를 따라 돌다가 자연스럽게 울타리로 와서 모이게 됩니다. 쓰레기를 찾아다니며 수거할 필요 없이 울타리에 붙어 있는 쓰레기들만 수거하면 되는 방식이죠.
보얀 슬랫이 발명한 '떠다니는 장벽' 높이는 3m, 길이는 100km에 이른다. 해류를 따라 순환하던 쓰레기는 자연적으로 이 벽에 와서 붙게 된다. [사진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
이들은 2020년까지 GPGP 둘레에 떠다니는 장벽을 설치해 이곳의 막대한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GPGP가 북태평양 해상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겁니다. 실제로 북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 남대서양 환류가 흐르는 곳에 또 다른 쓰레기 섬이 4개 이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은 “이대로 간다면 미세 플라스틱 섬은 상상 못할 속도로 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과의 싸움을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영희·허정원 기자 misquick@joongang.co.kr

■ "쓰레기 수입 안 해" 중국의 보이콧 선언

「 세계 각국은 쏟아지는 폐플라스틱의 양을 줄이고 유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올 1월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는 2042년까지 불필요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없앤다는 환경 보호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이나 추가 비용을 물리고, 마트에서 제공하는 비닐봉지에도 5펜스(약 75원)의 가격을 매기기로 한 것이죠.

이러한 조치를 앞당긴 것은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부터 재활용할 수 있는 폐기물을 수입해왔지만 2017년 전격 수입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한국무역진흥공사에 따르면 중국은 2016년에만 무려 730만 t에 달하는 폐플라스틱을 수입했죠. 하지만 중국이 빠르게 산업화되고 자국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폐플라스틱을 수입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비즈. [사진 그린피스]
이에 폐기물을 중국에 맡기던 선진국들의 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영국재활용협회의 사이먼 엘린 회장은 BBC에 “오랫동안 플라스틱 쓰레기의 25% 이상을 중국으로 보내왔기에 단기적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각질 제거용 세안제나 치약 등의 재료로 생산되기도 합니다. 미국은 2015년 12월 미세 플라스틱의 한 종류인 마이크로비즈 배출을 제한하기 위해 ‘마이크로비즈 청정 해역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를 함유한 제품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시켰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로레알과 P&G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자는 취지에서 2017년 말 폴리에틸렌 마이크로비즈의 사용을 완전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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