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과거개혁'과 문재인의 '강원랜드 부정합격 취소'

강구열 2018. 3. 3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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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부정, 역사의 씁쓸한 반복

1747년 2월, 과거시험 결과가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영조(그림)가 크게 화를 내며 개혁을 다짐합니다.

“…높은 성적을 버리고 200장의 피봉을 다 뜯어 본 뒤 반드시 경화벌열 출신을 가려 장원으로 뽑으니 불공정함이 막심하다.…내가 오늘부터 이러한 병폐를 완전히 개혁하겠다.”

‘피봉’(皮封)은 과거 시험 답안지의 오른쪽 끝부분을 말합니다. 여기에 응시자의 이름, 생년월일, 본관, 사조(四祖·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등의 신상을 적고, 접은 뒤 풀로 붙여 제출합니다. 실력만으로 합격자를 판단하기 위한 ‘조선식 블라인드테스트’인 셈입니다. 이런 원칙이 무너진 것을 확인한 영조는 시험의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분개하고 있는 겁니다.

비슷한 장면이 떠오르는 게 없나요? 최고권력자가 직접 나서 힘있고, ‘빽있는’ 이들의 부정합격을 질타하며 시험의 공정성을 문제삼은 일이 불과 보름 여 전에 있었습니다. 
유력 집안의 응시자를 골라 장원을 주는 관행에 분노한 영조와 강원랜드 부정채용의 시정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
지난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혁신전략회의에서 “성적이나 순위가 조작돼 부정하게 합격한 사람은 채용을 취소하거나 면직하고 억울하게 불합격한 사람을 구제해야 한다. 그것이 채용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바로 세우는 출발”이라고 말했습니다. 공공기관인 강원랜드의 대규모 채용비리를 지적하며, 시정을 지시한 것입니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의원과 공무원, 강원랜드 임직원 등의 청탁에 따라 강원랜드에 지원한 응시자들의 합격 여부가 갈렸던 것이 정부 감사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인생의 큰 관문이 되는 시험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과거가 가장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지금은 대입입시가 큰 시험이고,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한 시험, 면접 등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시험의 핵심은 공정성이고, 누구나 그것이 지켜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응시합니다. 그러나 공정성이 망가지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습니다. 그 때마다 큰 분노가 일었고, 만연하면 사회 전체가 휘청이기 마련입니다. 최근 발간된 ‘선비의 답안지’(김학수 외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에는 조선시대 과거의 부정적 이면이 소개돼 있어 씁쓸한 역사의 반복을 확인하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 기상천외의 부정행위까지 등장

“인간 세상의 영광 중에 과거 급제가 으뜸이다.”

숙종의 이 말에서 과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선비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과거에 매달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응시자는 크게 늘었습니다. 생원·진사 시험 중 서울에서 실시했던 한성시의 응시자는 세종대에 1000여 명, 선조대에 2000여 명, 인조대에 4000여 명으로 증가했고, 숙종대에 이르면 1만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비정기적인 특별시험의 경우엔 영조대에 많아야 1만여 명이던 것이 순조·헌종·철종대에는 5∼6만여 명, 고종대에는 11만명으로 치솟았다고 합니다. 
과거가 출세의 관문으로 기능하면서 급제를 위해 경쟁이 치열했고, 이에 따라 부정행위도 적지 않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치열한 경쟁을 뚫기만 하면 얻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부정의 유혹이 강했습니다. 응시자들은 다양한 부정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협서’(挾書)입니다. 오늘날의 커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참고서적을 종이에 작게 써서 머리카락이나 입속에 감추는가 하면, 콧속에 감추는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는 응시자도 있었습니다. 남의 글을 베끼거나 대리시험을 보게 하는 ‘차술’(借述), ‘대술’(代述)의 문제 또한 컸습니다. 1566년 8월에 심진, 심자, 심전 세 사람은 “전혀 글자도 모르는 몽매한 아이들”인데 사마시에 합격해 “돈을 주고 생원, 진사를 샀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응시생들이 공동으로 답안을 작성하거나 베끼는 사례도 잦았습니다

◆시험의 공정성을 망가뜨린 권력층의 조직적 부정

과거의 공정성을 결정적으로 해친 것은 이런 개인적인 부정행위보다는 권력층인 응시자와 시험관이 결탁해 벌인 조직적인 부정이었습니다.

1542년(중종 37) 12월 양주목사 전한이 탄핵을 당합니다. 경상도에서 열린 과거의 시험관이었던 그는 시험 전날 응시생 3명을 은밀히 불러 종일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응시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 1613년(광해군 5)에는 충청도 시험을 감독한 전욱이 자신의 친척 30, 40명을 합격시키려다 발각됐고, 박경업은 강원도에서 응시자 30여 명의 답안지 겉봉에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적발됐습니 다. 
과거 합격자가 풍악을 울리며 사흘 동안 스승과 선배 및 친척들을 찾아 인사하는 ‘삼일유가’는 조선의 선비들에게 일생 중 가장 영광스런 장면으로 기억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정쟁이 격화되면서 각 당파가 자파 세력을 심는 수단으로 과거가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광해군대에 집권했던 이이첨 등 대북파는 1610년 실시된 과거에서 친인척 자제를 무더기로 합격시켜 ‘아들, 사위, 동생, 조카, 사돈의 합격자 명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물러난 뒤 대북파가 주도한 모든 시험을 전수조사해 합격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숙종대에는 쟁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확대된 면이 있긴 하지만 과거의 부정행위로 발생한 대규모 옥사인 ‘기묘과옥’, ‘임진과옥’이 있었습니다.

◆곤장에 합격취소, 시험무효까지…처벌은 했지만

조선 정부는 부정행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처벌했습니다. 1447년(세종 29) 3월 의정부는 대리시험을 부탁하고 들어준 자, 이를 중간에서 연결한 자, 응시자와 부정을 도모한 시험관 등에게 장(杖) 100대를 때리고 평생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건의를 세종에게 올렸습니다. 인조는 무과에서 대리시험이 적발되자 관련자 모두에게 ‘전가사변’(全家徙邊·당사자 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를 북쪽 변방지역으로 이주하도록 하는 형벌)에 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부정행위를 일삼은 응시자가 다시는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거’(停擧)가 있었습니다. 부정행위자의 과거 급제를 취소하는 ‘삭과’(削科)라는 조치도 있었는데, 현재 진행 중인 강원랜드 부정합격자 퇴출 절차를 떠올리게 됩니다.

시험 자체를 아예 무효로 해버리는 ‘파방’(罷榜)도 있었습니다. 부정행위가 심각해 시험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면 취했던 조치입니다. 파방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시험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부정행위와 무관한 합격자가 날벼락을 맞는 것입니다. 숙종 때의 학자 이동표는 1676년 10월 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2월 복시를 치렀는데 복시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견돼 파방이 이뤄졌고, 그의 합격도 무효가 됐습니다. 그는 6년 뒤인 1683년에야 다시 급제할 수 있었습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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