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메모] 역사교과서 국정화 실무팀 단죄 유감

이강은 2018. 3. 2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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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하며 수사·징계를 의뢰한 수십명 중 상당수는 얼마 전까지 같이 지낸 동료들이다.

교육부로선 '박근혜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험성과 부작용을 우려한 다수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책을 떠맡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누구보다 여론에 민감한 집권여당 대표 출신의 교육부 장관(황우여)조차 국정화 국면에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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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전날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발표와 조치 사항에 대한 내부 기류를 묻자 29일 교육부의 한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조사가 ‘잘됐다’거나 ‘잘못됐다’고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이 전해졌다. 다른 관계자는 “국정화 당시 실무팀에 뽑히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고 운이 좋은 편”이라며 착잡한 기분을 드러냈다.

그럴 만도 하다. 교육부는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다. 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으로 규정하며 수사·징계를 의뢰한 수십명 중 상당수는 얼마 전까지 같이 지낸 동료들이다. 수사의뢰 대상의 절반가량이 전·현직 교육부 인사들이다.

교육부로선 ‘박근혜 청와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험성과 부작용을 우려한 다수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책을 떠맡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청와대 지시를 그대로 받들어 여러 무리수를 둔 교육부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실무에 관여한 공직자들을 무더기 형사처벌하거나 중징계하는 건 다른 문제다. 공직사회 자체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면 대통령 지시를 따르고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각 부처 장관부터 그렇다. 어느 정부에서나 출신이 정통 관료든, 교수든, 정치인이든 간에 ‘정책 소신’을 지키기가 어렵다. 누구보다 여론에 민감한 집권여당 대표 출신의 교육부 장관(황우여)조차 국정화 국면에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이강은 사회부 기자.

문재인정부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각 부처 실무자들이 대통령의 ‘역점사업’ 지시를 거부하기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대통령 명을 받은 청와대 인사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교육부를 닦달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이들 교육관료를 ‘청산해야 할 지난 정권의 부역자’로 몰아세워 법적으로 단죄하겠다는 건 지나치다. 이런 식이라면 다른 부처에서도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공직자가 수두룩할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강행한 책임은 엄밀히 물어야 한다. 다만 청와대의 정책 지시를 따른 공직자들을 모조리 문제삼을 게 아니라 재발방지시스템을 제도적으로 구축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집권세력부터 정치적 유산을 남기기 위해 무리한 공약이나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젠 가급적 논란이 될 만한 정책 실무를 어떻게든 맡지 않고 복지부동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직자들 푸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강은 사회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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