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치인' 홍지만이 걸어온 길..그리고 그가 낸 논평의 '품격'

최고운 기자 2018. 3.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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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5일

대구 칠성시장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타났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19대 총선에 출마하는 대구 지역 후보들의 합동 유세에 지원 유세를 온 것이다. 홍지만 전 의원은 대구 달서 갑 후보였다. 그의 위치 선정은 기가 막혔다. 카메라에 가장 잘 잡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바로 옆에 섰다. 유세장에 일찍 온 게 그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2015년 1월 27일

국회 정론관에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이 나타났다. 당시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이었고,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러 왔다. 유승민 의원이 출마 선언문을 읽고 기자들 앞에 섰다. 홍지만 전 의원(당시 초선 의원)이 이번에는 유승민 의원 바로 옆에 섰다. 그는 유승민 의원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언론사 부스를 돌며 기자들과 인사할 때 홍지만 전 의원은 자신이 유승민 의원과 ‘중학교 동문’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2016년 1월 11일
유승민 의원이 청와대와 멀어질수록, 홍지만 전 의원도 유승민 의원에게서 멀어졌다. 유승민 의원과 청와대가 정면 충돌하게 되자 홍지만 전 의원은 등을 돌렸다. 당시 ‘실세 중의 실세’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그리고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지 반년이 되어갈 즈음, 홍지만 전 의원은 의정보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 의원이 대통령한테 잘못했다.” “사전 의사소통 없이 개인적 생각을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밝힌 것은 부적절했다.”

2016년 2월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에 나타났다. 이른바 ‘전투복’으로 불린 남색 바지정장을 입고 연설하러 왔다. 연설 중 박수는 스무 번 나왔다. 윤상현 의원은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가며 인사를 나눴다. 홍지만 전 의원은 최경환, 조원진 의원 등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차를 타는 국회 건물 밖까지 배웅했다.

2016년 3월 14일
새누리당이 20대 총선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홍지만 전 의원은 경선 치를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 경선 배제, 즉 컷오프였다. ‘공천 학살’로 불린 친 유승민 계 의원들의 공천 배제와는 결이 달랐다. 현재 달서 갑 지역구인 곽대훈 의원과 공천심사에서부터 점수가 벌어졌다. 곽대훈 의원이 달서구청장을 지낸 경력으로 심사 때 20%의 감점을 받았음에도 현역인 홍지만 전 의원이 경선조차 가지 못한 사실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그리고 올해 1월 31일.
홍지만 전 의원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더불어민주당)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 갑의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됐다. 19일 뒤에는 김성태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이자 대변인에 임명됐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대 언론 관계를 강화하고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며 홍지만 전 의원을 소개했다.

그런 홍지만 전 의원이 어제 검찰의 ‘세월호 7시간’ 수사결과에 대해 논평을 냈다.

<세월호 7시간 진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농단 주범이 책임을 말해야 한다.> 中 발췌

실체는 단순하다. 박 전 대통령은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뒤에야 참사 발생을 알게 됐고, 최순실 씨가 청와대로 오기 전까지 국가안보실장,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 지시를 한 번씩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을 했으면 됐지 7시간의 난리굿을 그토록 오래 벌일 일이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만난 것도 사전에 예약된 만남일 뿐이다. 7시간을 두고 난무했던 주장들 가운데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런 광풍을 저지하지 못해 수모를 당하고 결국 국정농단이란 죄목으로 자리에서 끌려 내려온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

당시 이처럼 거짓말을 일삼았던 세력에게 참회와 자숙을 요구한다. 현재의 야당 뿐 아니라 시민단체, 소위 좌파 언론을 포함해 7시간 부역자는 모조리 석고대죄 해야 한다. 세월호 7시간을 원망하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저 논평은 저녁 8시 넘어 나왔다. 자유한국당은 애초 검찰의 수사 발표 이후 공식 입장은 내지 않겠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그 당에서 배출했던 대통령이니..’라고 여기던 참이었다. 홍지만 전 의원의 논평을 쭉 읽어봤다. ‘내게 난독증이 생겼나?’ 싶었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소름이 돋았고, 부들부들 떨렸다.

아이들의 생명이 가라앉는 배에 갇혀 꺼져가던 순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침실에 있었다. 첫 보고 시점 자체가 골든타임이 지난 후였으면서도 소극적인 지시뿐이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말이 나왔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이 최순실과의 회의 이후에 정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발표가 아니었나. 심지어 치밀한 거짓말로 이 모든 것을 덮으려 했다는데 이보다 더 큰 잘못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홍지만 전 의원의 논평에 그런 반성은 없었다. ‘업무를 잘못했다고 탓했으면 됐지, 난리굿을 벌일 일이 아니었다.’라니.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소문만을 믿고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단 말인가. 누가 누구에게 석고대죄를 요구할 수 있는 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논평 내용을 담은 기사마다 비난 댓글이 달리고 기자들의 지적이 잇달자, 홍지만 전 의원의 논평이 수정됐다.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를 ‘박 전 대통령이 편파적으로 수사 받았던 게 사실이다.’로 바꿨다. 그럼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오늘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적절한 논평임을 인정했다.

“우리 당의 입장이 최종 조율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어젯밤 대변인 논평 부분에 대해선 상당한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올리겠다. 어찌됐든 대통령이 그 불행한 사고에 그 시간에 집무실에 있지 않고 침실에 있었다는 그 자체 하나만으로도 국민들은 어떤 경우든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잘못됐다.” 라는 설명과 함께. 그리고 오늘 오전 11시 31분 세월호 7시간 관련 논평이 나왔다.

<우리가 만든 제왕적 권력 앞에 스스로 무기력했던 모습을 반성합니다.> 中 발췌

검찰이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어떤 이유로도 모두가 활기차게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성실하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이 참모들을 보고서 작성에만 급급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국가 위기대응에 실패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대책 없이 우왕좌왕하는 소신 없는 비서진, 국가의 대재앙 앞에 비선실세와 회의를 해야 하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결국, 국민들께 거짓보고까지 하게 만든 모습입니다.

이 논평은 장제원 대변인 명의다. 홍지만 전 의원은 아직 아무 말이 없다.    

최고운 기자gow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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