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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사바나 초원에서/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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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사바나 초원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갈기를 휘날리며
산책을 하다가 시퍼런 눈알을 굴리다
쏜살처럼 돌진한다

무리에서 뒤처진 사슴의 척추를
앞발로 툭 친다 모가지를 콱 문다
사슴의 사지는 축 늘어지고

붉디붉은 핏방울이
뚝, 뚝,
풀잎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사바나 초원에서 제물이 된 사슴처럼
미추천이라는 메일을 받고
해고라는 말을 들었다

사형수 목에 감긴 밧줄처럼
황홀한 주검이 불러오는 한낮의 여유

햇살이 초원을 쓰다듬던 손으로
사자의 두 눈을 잠재우고
신성한 식욕이 잠시 잦아드는 오후

[오후 한 詩]사바나 초원에서/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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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원래 무정하다. 같은 말이지만 그래서 자연의 냉혹함은 본질적이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은 잔혹해 보이나 다만 자연에 속하는 일이며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런데 자연은 자신의 식욕을 스스로 멈출 줄 안다. 사자의 식욕은 그런 이유로 신성하다. 그러나 인간의 식욕은 멈출 줄을 모른다. 탐욕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다. 차라리 탐욕하는 것 그 자체를 탐욕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싶을 만큼이다. 나는 앞의 문장에 '욕망'이라는 단어를 얹고 싶지 않다. 우리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재는 그저 비루할 따름이며 결코 신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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