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사회 뒤흔든 정신질환자 144명의 죽음
[경향신문] 남아공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던 환자 144명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환자들에게 의료비 지원을 해오던 주정부가 가족들 몰래 이들을 ‘미등록 시설’로 옮겼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새로 옮겨진 시설에서 심한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다 숨을 거뒀다.
AP통신은 26일(현지시간) 남아공 사회를 뒤흔든 ‘에시디메니의 비극’을 보도하며 남아공 의료 시스템의 실패를 조명했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남아공의 가우텡 주 정부는 3년전 민간요양병원 ‘에시디메니 생명’과의 위탁 계약을 갑자기 종료했다. 에시디메니 생명은 당국의 의료비 지원을 받아 환자 1711명을 관리하던 곳이었다. 이후 정부는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환자들을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미등록 시설’ 수십 곳으로 옮겼다. 가족들은 이송에 동의하기는 커녕, 이송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송 절차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일부 환자는 휠체어도 없이 침대보에 묶여 트럭에 실렸다. 당국은 어느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보내는지조차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보건장관의 요청으로 진상 조사에 나선 ‘보건 옴부즈만’이 지난해 2월 “이송절차는 부주의하고 제멋대로였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이 완전히 결여돼있었다”는 보고서를 냈을 정도다.
옮겨진 병원에서 환자들은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음식이나 식수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굶어죽는 환자가 속출했다. 환자 과밀도 심각한 수준이라, 집중 관리가 필요한 중증 환자들까지 야외 벤치나 바닥에서 잠에 들었다. 이러한 학대로 사망한 환자는 현재까지 총 144명에 달한다. 아직 행방이 파악되지 않은 환자도 44명이나 된다.
사건에 국민적 이목이 쏠리면서,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간 청문회를 열어 중재에 나섰다. 당시 이송 결정을 주도했던 케이다니 말랑구 가우텡 주 보건담당 최고책임자(MEC)는 지난 1월 청문회에서 “우리가 이들을 다시 불러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든 아니든간에, 정말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일부 시설에서 이미 사망한 환자 명의로 지급된 정부 지원금을 착복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국의 대응도 빨라졌다. 청문회를 이끈 디캉 모세네케 전 부대법원장은 지난 19일 “주 정부의 조치는 무분별했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환자 1명 당 각각 120만 남아공란드(약 1억1042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보건장관은 “아파르트헤이트 시대를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인권이 침해됐다”며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케이다니 말랑구를 비롯한 관련자 3명도 모두 사임했다.
그러나 에시디메니 사건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가우텡 주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서둘러 이송을 결정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주 정부 관계자는 “예산 제약을 이유로 계약을 갱신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남아공 법원은 이러한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환자들이 미등록 시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주정부의 비정상적 지출과 사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추가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정신 건강 관리 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셰나즈 문시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교수는 현지매체 ENCA에 ‘환자들의 죽음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남아공의 관리가 혼란에 빠졌음을 보여준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남아공 내 정신 질환자의 75%가 정신 건강 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신 질환자들은 국가의 공공의료 체계에서 늘 소외돼왔다고 말했다. 정신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고, 재정적 지원을 늘리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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