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개 대학들 "찍히면 문 닫는다" 초긴장

진천/김연주 기자 2018. 3. 2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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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가 보고서 제출 마감일.. 진천 교육개발원엔 종일 긴장감
하위 40% 정원 감축·지원금 제한, 3년간 정원 2만명 줄일 계획
"일주일째 합숙하며 보고서 준비"

27일 오전 10시 공공기관 10개가 밀집한 충북혁신도시 내 진천군 덕산면 . 다른 기관 주변은 사람 한 명 안 보일 정도로 휑한데, 한국교육개발원 인근에만 차량 수백 대가 빽빽이 줄지어 있었다. 상당수가 'XX대' 'OO여대' 등 이름을 붙인 대학 공용 차량이었다. 입구엔 검정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대학 관계자 이외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는 등 온종일 긴장감이 감돌았다.

◇"3년간 정원 2만명 감축"

이날은 교육부가 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정원을 줄이기 위한 '대학 기본역량 진단 평가'(옛 대학구조개혁평가) 보고서 제출 마감일이었다. 전국 160개 4년제 대학 관계자들이 보고서를 직접 제출하기 위해 인구 1500여명인 덕산면에 속속 모여든 것이다.

교육부는 2015년 실시한 1주기 평가로 대학 정원 5만6000명을 줄인 데 이어 올해 2주기 대학 평가로 2019~2021년 3년간 정원 2만명을 줄일 계획이다. 평가 결과 상위 60%(자율개선대학)는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고 재정 지원도 30억~90억원씩 받지만, 하위 40% 대학은 정원 감축뿐 아니라 재정 지원, 국가 장학금 등까지 제한받을 수 있다.


대학들이 이날 제출하는 보고서 내용으로 대면 평가를 거쳐 6월 상위 60%와 하위 40% 대학을 가른다. 최종 결과는 대입 수시 모집 직전인 8월 말에 나와 수험생들의 대학 선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대학들은 "보고서에 대학 명운이 달렸다"고 했다. 앞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고 등록금은 9년째 동결인 상황에서, 정부 지원을 못 받고 부실대로 낙인찍히면 정말 대학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지난 3개월간 보고서 62페이지(국립대 58페이지)와 증빙자료를 준비하느라 초긴장 상태로 지냈다. 이전 평가 때 하위 D등급을 받았던 A대학은 "이번에 상위 60%에 들지 못하면 정말 대학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웃 대학들이 경쟁자"

교육부는 대학 권역별로 '충청권 10~12시' 등 보고서 제출 시간을 달리 배정했다. 일부 대학은 교통사고 등 돌발상황으로 시간을 못 맞출 경우까지 대비해 제출 자료를 두 세트 준비해 차량 두 대에 나눠 담고 이동했다. '007 작전'이 따로 없었다. 대학들은 "수능 수험생 같은 입장"이라며 "괜히 교육부에 밉보였다 점수 깎일까 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천에 모인 대학 교직원 대부분 얼굴이 초췌하고 눈이 충혈돼 있었다. 3일 밤을 꼬박 새웠다는 B대 관계자는 "일주일째 집에도 못 가고 배낭에 옷을 싸와 기숙사에 지내면서 보고서를 마무리했다"면서 "졸려서 말할 기운도 없다"고 손을 저으며 차에 올라탔다. 보고서를 내고 나오는 경남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너무 긴장했더니 몸에 힘이 다 빠진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1주기 평가 때 전국 대학을 6개 등급으로 나눴더니 대학을 서열화한 부작용이 있었다면서, 이번에는 권역별로 상위 대학을 선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경쟁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며 "이젠 같은 동네 대학들이 다 경쟁자니까 말도 절대 안 나눌 정도로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수도권 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가 글자 수를 제한하면서 자간, 스타일까지 다 정해주는 '갑질'을 하는데, 정말 압박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줄면 시장원리에 따라 도태되는 대학이 나올 텐데, 정부가 평가로 대학을 정리하려 하면 지표에 맞춰 단기적 성과만 올릴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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