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포기하라고? 무슨 수작이지?"

오현주 2018. 3. 2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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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 년 걸친 인류의 육식연대기
고기에 빠지는 이유 '먹을 수 있어서'
구입 쉽고 싸..귀한 음식 대접받기도
미래엔 육류보다 곡물·채소 더 먹게돼
가짜고기로 고기감성·맛 낸 식품대체
..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마르타 자라스카|400쪽|메디치미디어
“인류의 육식연대기는 곧 지구의 역사다.” 저자 마르타 자라스카는 육식연대기에서 경제사·정치사·사회문화사 중 어느 하나 뺄 게 없다고 말한다. 특히 부와 권력은 절대기반인 동시에 이데올로기였다. 이 사실은 지금껏 변함이 없다. 내용물이 변하긴 했다. 잡고기에서 삼겹살로, 마블링이 환상적으로 붙은 양질의 소고기로(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헤어날 수가 없어요.” 행복에 겨운 비명이 들린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아마 이곳은 천국인가 보다. 눈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라니. 이쯤 되니 그 애끓는 사랑이란 게 슬슬 궁금해진다. 향으로 미치게 하고 맛으로 죽인다는데. 상상은 여기까지만 하자. 몸도 마음도 기꺼이 내준 그 사랑의 대상은 ‘고기’다.

소고기·닭고기·돼지고기 등 출신이 다르고, 삼겹살·갈비·등심 등 부위가 다르며, 굽고 찌고 데치고 물에 빠뜨려 끓이고 연기를 피워 훈제하는 조리법도 제각각. 하지만 이들은 단 한 가지 ‘고기’란 간판 아래 끈끈하게 뭉쳐 있다. 오매불망 고기를 향한 인간의 연대감도 대단하다. 멀리 돌아갈 것도 없다. 12가지 반찬을 내놔도 고기 한 점이 빠졌다면 ‘젓가락 갈 데가 없다’는 게 우리의 음식문화 아니던가.

1943년 미국인 중 전혀 고기를 먹지 않은 이들은 전체 인구의 2% 정도였단다. 70년쯤 지난 2012년 대놓고 ‘난 채식주의자’라고 말한 이들은 5% 정도 됐다. 그런데 이들의 채식주의에 어떤 조건이 보인다. 소·돼지·닭고기 혹은 생선을 가끔 섭취한다는 비율이 무려 60%에 달하더라는 거다. 그래서인가. 2011년 통계를 보니 미국인은 60년 전인 1951년보다 고기를 28㎏씩 더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2020년까지 유럽에선 7%, 북미에선 8%, 아시아에선 무려 56%가 더 늘어날 거란 계산까지 붙었다.

책은 인류와 육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다. 이름 하여 ‘육식욕’. 어쩌다 인류는 고기와 이토록 진한 애정관계에 놓이게 됐는가에 관한 고찰이다. 사실 답이 보이지 않나. 눈앞에 아른거리고 혀에 살살 감기니 자꾸 손이 갈 수밖에. 그런데 이뿐일까.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좀 더 치밀한 분석에 나섰다. 먼저 자신을 폴란드계 캐나다인이며 반쯤 채식주의자라는 소개한다. 굳이 출신배경까지 꺼내놓은 건 근거가 필요해서인 듯하다. 캐나다 시골마을에서 ‘반쯤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거다. 버터와 생선, 연어를 먹었다지만 빤한 식단에 소시지·베이컨의 유혹은 그토록 강렬했다고, 한 번 맛본 고기는 정말 끊어내기 어려웠다고. 그러곤 그 까닭을 ‘중독요인’이라고 정리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250만년에 걸친 육식의 역사를 타고 오르며 인류를 고기에 중독케 한 문화·정치·경제·화학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파고든다. 열렬한 고기애호가를 맨 앞에 세우고 고기를 줄이려는 사람, 끊었다가 다시 찾은 사람, 엄격한 채식주의자까지 모두 레이더 안에 들였다. 한 가지 더. 사랑이란 게 어떻게 시작했나 만큼이나 어떻게 끝낼 건가가 중요한 법. 저자는 “고기를 탐해온 여정 역시 어찌 끝낼지에 대한 스토리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전체 윤곽을 잡아낸다. 인류의 육식연대기를 완성하는 지점까지 챙긴 거다.

△고기를 미치게 사랑? 고기가 ‘사랑스럽게 먹히고’ 있어서

건강을 들먹이며 협박을 했다. 붉은 육류를 많이 섭취하면 암에 걸릴 위험이 20∼30%는 높아진다고. 암뿐인가. 당뇨병·고지혈증을 앞세운 다채로운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범이 고기라고. 전혀 안 먹혔다. 그래서 환경문제로 회유했다. 햄버거를 한 개 소비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가 자동차로 500㎞ 이상을 내달리는 것과 같다고. 이러다가 지구가 병들어 다 같이 죽는다고. 꿈쩍도 안 한다. 육류소비는 갈수록 늘어났다.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인정에 호소하자. 고기 이전에 동물이라고. 가엾고 불쌍하다고. 보호를 해야 한다고. 과연? 어림도 없다. 고기를 향한 마음을 좌절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수작’이고 ‘음모’처럼 보인다는 거다.

도대체 무엇이 고기를 끊을 수 없게 하는가. 저자는 ‘먹을 수 있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모든 중독이 그렇듯 감질나게 손에 닿는 게 문제란 거다. 현대로 옮겨올수록 환경은 완벽해졌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싸다. 첨단기술에 정부보조금까지 붙었다. 결정적으론 인류의 트라우마가 움직였다. 오래전 굶주림을 겪은 경험이 ‘귀한 음식’을 알아보는 거다.

그토록 목매는 상황이라면 이런 논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고기는 인류가 진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고. 생리적·영양학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볼 땐 “천만에”다. 초기 인류에게 필요했던 건 고기가 아니라 고품질식단이었단다. 그저 당시 고품질식단의 최선이 고기였던 것뿐이라고. 양질의 단백질? 그 논리도 별로 믿을 게 못된다고 지적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서 얻을 수 있는 필수영양소란 게 따로 없단 뜻이다. 물론 단백질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채우는 데 고기만한 게 없다는 건 인정한단다. 하지만 그조차 땅콩버터샌드위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어차피 건강을 유지하자고 인간이 고기에 빠져드는 건 아니니까.

△‘인공고기’로 해결…‘영양전이’ 마지막 단계 낙관

그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저자는 일단 고기를 안 먹는 게 좋겠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진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관계부터 청산하란 얘기다. 그래야 인류와 육류 양쪽 모두가 건강할 수 있다는 논지다. 고기를 미치게 사랑한다? 그건 고기가 인간에게 ‘사랑스럽게 먹히고’ 있어서란다.

그럼에도 심하게 몰아세우진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영양전이의 단계’란 것. 사냥·채집으로 음식을 모으는 단계, 농업으로 시작한 기근단계, 식량이 증가하는 단계, 육류에 집중하는 단계. 이 모두를 거친 인류가 이제 향할 곳은 ‘행동변화 단계’란다. 육식을 줄이고 과일·채소·곡물의 비중을 늘리는. 나아가 고기를 향한 욕망은 ‘육류대체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낙관론’이다.

말이 나온 김에 육류대체품이란 걸 보자. 고기를 못 먹는 혹은 안 먹으려는 이들에게 대신 권하는 거다. ‘인공고기’ ‘가짜고기’다. 향에 미치고 맛에 죽는, 그것에 아주 근접한 것. 진짜고기를 55%만 넣기도 하고, 식물성 재료만으로 고기맛을 내기도 하고, 식감으로 고기 감성에 훌쩍 다가서는, 의도적으로 채식주의자를 만들겠다는 의지처럼도 보이는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고기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을 거란 방증이 아닌가. 저자는 영양전이의 성공을 자신하지만 어쩌면 그 일은 인간본능을 완전히 거스르는 피 말리는 혁명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삼겹살, 오늘은 등심, 내일은 닭볶음탕으로 일정이 짜였다면, 마당 넓은 집만 보면 ‘고기 굽기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면. 한 번쯤 진지하게 자신의 육식욕을 들여다볼 일이다. 사랑도 너무 깊으면 병이 되는 법이니까. 어쩌겠나. ‘과유불급’이란 말이 아니고선 딱히 말릴 재간도 없으니.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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