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가족 해체까지.. 위험한 기러기 부부 생활

주호석 2018. 3.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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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4)
영화 '싱글라이더'(이주영 감독)에서 '기러기 아빠' 재훈 역을 맡아 주연한 이병헌(46). 서울에서 촬영된 무미건조한 회상신은 가족이 있는 호주의 감성적인 장면들과 대조를 이룬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유학 또는 이민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들, 특히 부부가 멀리 떨어져 사는 경우를 ‘기러기 가족’이라고 일컫지요. 대개 가장인 아버지가 한국에 남아 돈을 벌고 어머니와 자녀들이 유학 또는 이민을 떠나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게 기러기 가족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원래 기러기는 좋은 부부금실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번 짝을 맺으면 절대로 갈라서지 않고 한쪽이 목숨을 잃더라도 살아남은 쪽은 평생 다시 짝을 찾지 않고 혼자 살기 때문입니다.

기러기 가족은 지금도 적지 않지만 한국에서 조기유학 붐이 일던 지난 2000년대에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 통계에 의하면 2000년 4397명이었던 조기 유학생 수가 계속 증가해 절정을 이룬 2006년엔 2만9511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이러한 조기 유학생 수의 증가는 덩달아 기러기 가족도 많이 늘어나는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조기유학 붐이 일던 당시 캐나다에서는 또 하나의 특이한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자녀의 유학 때문에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가 몇 년 뒤 아예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입니다. 아이 유학 때문에 왔다가 가족이 영주권자가 돼 아예 캐나다에 눌러앉았던 것이죠.

━ 영주권 취득한 한인들 대부분 기러기 가족
조기유학 붐이 일었던 2000년대에 기러기가족이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아예 영주권을 취득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중앙포토]
아이는 천국 같은 캐나다 유학생활에 푹 빠져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하고 어머니도 스트레스 받을 일 없는 캐나다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그런 현상이 흔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때만 해도 캐나다 영주권취득이 크게 어렵지 않았던 것도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영주권을 취득한 가족 중에는 한국에 남아있던 가장이 나중에 캐나다로 건너와 합류했지만, 그건 일부였고 대부분이 영주권 취득 후에도 변함없이 기러기 가족으로 지냈습니다.

지난 2001년 캐나다에 이민 온 필자도 기러기 가족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온 가족이 랜딩 절차를 마친 다음 아내와 두 아이는 캐나다에서 살고 필자는 곧바로 한국에 돌아가 혼자 지내는, 남들과 다름없는 그런 기러기 가족이었지요. 당시 미국에 본사가 있는 언론사의 한국지사장으로 있었는데, 2년만 더 한국에서 일을 한 다음 캐나다에 있는 가족과 합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캐나다에서 어떻게 돈벌이를 할 것인지가 막연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으로 예정했던 기러기 생활을 넉 달 만에 완전히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급작스레 기러기 생활을 마무리한 것은 가족이 캐나다에 랜딩하고 나서 2개월 뒤 필자가 미국 본사에 출장을 갔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 출장길에 우선 캐나다에 들러 가족과 며칠을 지내게 됐습니다. 가족들과 불과 2개월 만의 재회인데도 왜 그리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반가움도 잠시였습니다. 며칠 함께 지내는 동안 가족 세 명 모두의 생각과 행동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착잡해졌습니다. 불과 2개월 만에 아내와 자식들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크게 변한다면 2년 뒤에는 어떤 모습일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미국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에 가자마자 ‘가족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 때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바로 기러기 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재회의 기약 없이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가족들 가운데 부부가 아예 갈라서고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 이후 지금까지 캐나다에 살면서 그때 기러기 생활을 정리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백번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캐나다에서 기러기 가족들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통계는 없습니다만 기러기 가족으로 살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족이 떨어져 살면서 가끔 만나면 더 애틋한 정을 느끼고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러기 가족은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기러기 가족 형태를 오래 유지하면 할수록 그런 위험성은 더 커진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한시적이지 않고 재회의 기약 없이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가족들 가운데 부부가 아예 갈라서고 가족이 해체되는 불행을 겪는 사례도 여럿 목격했습니다. 이민을 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기러기 가족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 가족 해체의 불행 겪는 기러기 많아 그렇다면 왜 그런 불행이 생기는 걸까요. 무엇보다 한국과 캐나다는 생활 환경이나 문화가 아주 다릅니다. 사람 사는 게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다른 문화에 익숙해진 아이들과 엄마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의식구조가 달라지면 아무리 가족이지만 서로 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엄마들도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며 캐나다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게 된다. [중앙포토]
특히 학교 다니는 연령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캐나다의 교육환경은 한국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교가 공부 자체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운동이나 친구 사귀는 일, 취미활동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학교생활 외에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종일 공부에 매달려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하며 성적 올리기에 올인하는 한국의 교육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지내게 됩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세컨더리(중고등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대마초 흡연을 경험합니다. 대부분 호기심에서 한두 번 피우고 끝내지만, 대마초를 끊지 못하는 아이도 의외로 많습니다. 대마초 흡연을 합법화한 캐나다라 그런 사실을 선생님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만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게 아닙니다. 엄마들도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모든 생활이 자유롭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시댁과 갈등을 겪을 필요도 없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명절증후군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먼 나라 얘기일 뿐입니다.

또 골프나 등산 같은 취미생활을 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입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골프를 예로 들자면 우선 멀지 않은 곳에 퍼블릭 골프코스가 널려 있고 한국처럼 돈이 많이 들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명품 골프 옷을 입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또 밴쿠버의 경우 여름 날씨는 정말 환상적입니다. 그런 날씨에 골프장에 나가 라운딩을 하면 왜 진작 이민을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마저 하게 됩니다.

그런 취미생활까지 즐기기 시작하면 한국생활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지고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러기 가족으로 이민 오기 전에 부부간에 크고 작은 트러블이 있던 사람의 경우 캐나다 생활의 좋은 점만 자꾸 눈에 들어오고 그러는 사이 생각과 행동이 변해갑니다. 그것은 떨어져 있는 가족 간에 마음의 장벽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news.joins.com/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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