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개헌안이 진짜 국민 헌법이다"

백철·이하늬 기자 2018. 3. 2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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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회 구성 비례성 확대, 정보기본권 신설 ‘환영’ ·성평등이나 지방분권은 국회 개헌특위 보고서보다 다소 보수적

법학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3월 20일부터 3일간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 주요 내용을 직접 설명했다. 뒤이어 대통령 개헌안의 전문(全文)도 공개됐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대통령 개헌안이 공개되자 “붉은 헌법”, “사회주의 관제개헌” 등의 표현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면 국민주도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국민개헌넷) 등 시민단체에서는 대통령 개헌안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 개헌안과 그동안 국회에서 논의된 개헌안을 비교해본 결과, 조항에 따라 대통령 개헌안이 좀 더 개혁적인 부분도 있고 좀 더 보수적인 부분도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월 7일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국민개헌자문특위 구성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그동안 국회에서는 2009년, 2014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각각 국회의장 주도로 구체적인 헌법 개정안에 가까운 내용을 발표해 왔다.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은 올해 1월 국회 헌법개정특위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다. 가장 쟁점이 되는 권력구조 부분에 있어서 대통령 개헌안은 4년 연임 대통령제를 내세웠다. 반면 그동안 국회의 헌법 개정안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와 국회 양원제 등을 주장해 왔다.

대통령 개헌안의 기초를 만든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들은 대통령 개헌안과 국회 개헌안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자문특위 위원은 “특위 논의과정에서 과거 국회 자문위 보고서들도 다 참고했다. 자문특위는 실제 발의하는 안을 만든 것인 데 비해, 국회 자문위 개헌안은 이후 각 정당의 의견조율을 거쳐야 확정되는 안이다. 그렇기에 국회 자문위 안에는 좀 더 강도 높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민단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조국 수석의 개헌안 설명이 끝난 3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대통령 개헌안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민개헌넷 정책자문단장인 한상희 건국대 법전원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거론됐던 기본권 관련 부분은 상당히 수용됐다. 노동권을 강화하고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회복시킨 것도 성과”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 중 ‘현역군인 등 법률이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 노동3권을 제한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법률에 따라 ‘현역군인 등’의 범위가 정해지기 때문에 공무원의 노동권이 지나치게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한 교수의 해석이다.

“대통령 개헌안이 진짜 국민 헌법”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도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획기적이라 평가하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에 지금의 노동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조항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변호사는 “노동문제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간접고용에서 나타난다. 헌법에 직접고용 원칙 등을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헌법자문특위에 참여한 학자들은 시민단체들이 문제제기하는 ‘좀 더 강도 높은 내용’의 대부분이 이미 자문특위 안에서 논의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여성계에서는 이번 대통령 개헌안이 성평등한 개헌안이라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대통령 개헌안 요지에 최소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여성대표성 확대 조항조차 없다. 그동안 논의에 비춰봤을 때 명백한 퇴행이다”라고 비판했다.

자문특위 위원들에 따르면, 자문특위 논의 당시 ‘국가는 공직 진출에서 양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개정안도 복수 개정안으로 자문위 보고서에 담겼다. 또한 혼인할 수 있는 주체를 ‘양성’으로 명시한 현행 헌법 39조의 표현도 ‘구성원’으로 바꾸자는 개정안도 자문위 보고서에 실렸다고 한다.

자문특위 총강·기본권 분과위원장인 곽상진 경상대 법대 교수는 “자문특위 안에서 39조에 ‘양성’ 대신 ‘구성원’을 쓰자는 안과 현행대로 가자는 안이 같이 보고서에 올라갔다. 그런데 이 조항을 가지고 보수 기독교계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한다든가 이러면 개헌안의 본래 취지가 가려질 수 있다. 청와대는 합의 가능한 개헌안을 하자는 취지로 현행 표현을 유지시킨 것이지, 청와대에서 동성혼이나 이런 걸 인정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대통령 개헌안이 더 개혁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대통령 개헌안은 전문(前文)에서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을 추가했다. 과거 국회 개헌안에는 수용되지 않았던 동물권에 관한 조항(‘국가는 동물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도 신설됐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이었던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청와대 개헌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보면 국회 자문위에서 만든 개헌안을 굉장히 많이 수용했다고 본다”며 과거 국회의 개헌안과 현재 청와대 개헌안 중 어느 쪽이 더 진보적, 혹은 보수적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는 서유럽·북유럽의 헌법처럼 기본권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표기한 것이 많다. 하지만 청와대 개헌안의 기본권 조항은 추상적인 표현이 많다. 하지만 노동권에 대해서는 청와대 개헌안에 노동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며 “국회 자문위에서는 동물권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대통령 개헌안엔 명시적으로 들어갔다. 동물권 단체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6·10항쟁 전문에 국민헌법자문특위에 참여한 헌법학자들은 지금의 대통령 개헌안이 현실화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안이라고 설명했다. 곽상진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서 대통령 권한을 축소시킬 여러 가지 권력분산 조항이 들어갔다며 “이번 개헌안이야말로 진짜 국민 헌법이다”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 예산법률주의 조항이 들어간 것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 개헌안 58조는 국회가 국가의 예산안을 ‘예산법률’로 확정하게 되어 있다. 그동안 정부는 국회에 예산안 심의를 받을 뿐, 상당히 융통성 있게 예산을 운용해 왔다. 반면, 예산안이 법률로 확정되면 정부의 예산 운용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한될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설명이다. 곽 교수는 “(청와대가) 지금의 국회 구성을 고려해서 개헌안을 냈다면 예산법률주의 같은 조항은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국회 구성이 아니라 국회 자체를 존중했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개헌안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특위의 정부형태분과 위원장인 정태호 경희대 법전원 교수는 대통령 개헌안에 대통령 국민소환제, 헌법 개정안 국민발안제 등이 담기지 않은 것을 꼭 ‘후퇴’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 국민소환제는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반대파의 대통령 국민소환 운동만 불러올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헌법 개정안 국민발안제도 마찬가지다. 소수집단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고, 그러면 개헌안을 둘러싸고 찬성파와 반대파 국민들이 직접 대립하게 된다. 지금처럼 대의기관이 완충 역할을 해서 국민들끼리 직접 충돌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자문특위 위원인 임지봉 서강대 법전원 교수는 자문특위 위원들이 개인의 입장보다는 국민 여론에 입각한 안을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임 교수는 현재 참여연대 시민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3월 22일 참여연대는 정부의 개헌안 발표가 끝난 이후 ‘대통령의 권력구조 개편 개헌안, 실망스럽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지금 대통령 개헌안에서도 정부가 여전히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있으며, 대통령이 헌법재판소·감사원 등에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저도 시민운동가로서 진보적인 내용을 새 헌법에 많이 넣고 싶었지만, 국민참여본부에서 수렴된 여론에 가장 무게를 뒀다. 여론이 우선이고 그 위에 학자 또는 시민운동가로서의 목소리가 추가된 것”이라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보적인 개헌안보다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안, 너무 이상에 치우치지 않은 개헌안을 만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자문특위 위원 입장보다 국민여론 중시 물론 국민헌법자문특위 위원이라고 해서 대통령 개헌안에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방분권과 관련해서 청와대는 자문위가 제시한 복수의 개정안 중 온건한 개정안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자문특위 위원은 “자문특위 내 지방분권분과에는 강력한 분권론자들이 많이 분포해 있었다. 지방정부에 법률을 제정할 권한까지 주자는 안, 법률 유보사항(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까지 지방법률이나 조례로 정할 수 있게 하자는 안도 자문위 보고서에 올라갔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양쪽을 절충한 중도적인 지방분권 개헌안을 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특위 위원은 “청와대에서 좀 더 과감한 안을 냈어야 했는데, 발표된 개헌안을 보니 복수안 중에 신중하게 하자는 쪽을 주로 채택했더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개헌안에 의미 있는 신설 조항도 많다는 평가도 있다. 참여연대는 앞서 대통령 개헌안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국회 구성의 비례성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개헌안은 44조 3항에서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시민단체와 소수정당들이 주장해 왔던 선거제도의 비례성 확보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대통령 개헌안에 정보기본권이 담긴 것도 의미있게 평가된다. 그동안 법학자들은 1998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언론·출판의 자유에서 ‘알 권리’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서 ‘자기정보 통제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보기본권 조항을 발표하면서 “사생활과 비밀과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소극적 권리만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현재 대통령 개헌안의 22조에는 정보기본권이 담겨져 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 자문기구인 국민헌법자문특별위의 활동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는 1년 이상 홈페이지에 회의록이나 기타 개헌 관련한 자료들을 공개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자문특위는 2월 13일 첫 전체회의를 개최한 이후 한 달 만에 헌법 개정 자문안을 완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자문특위 위원인 정태호 교수는 조국 민정수석의 설명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청와대에서 실제 개헌안을 발의하게 되면, 자문위원들이 어떤 과정에서 이런 개헌안을 확정하게 됐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요강(要綱)이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요강을 읽어보시면 많은 국민들의 궁금증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이하늬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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