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북한과 대화하며 미국과 조율하는 것이 우리 몫"

김태훈 기자 2018. 3. 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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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번 3차 남북회담은 내용 중심 실무형 회담”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향한 정부 당국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뒤이어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까지 고려하면 올 상반기 안에 한반도에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새로운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하지만 예상을 깨는 파격적인 국면 전환에는 신중한 분석과 면밀한 검토가 없으면 기대에 걸맞은 성과가 나오지 못할 위험도 따른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찌감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점차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을 내온 대표적 인물이다. 대북특사단이 북한의 비핵화 언명이라는 결과를 들고 돌아올 것이라는 예측을 적중시킨 이 전 장관을 3월 22일 만나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된 배경과 성큼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관해 들어봤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 김기남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미 3자 정상회담까지 거론하며 대화와 협상의 판을 키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다. “일단 연쇄적으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사실상 별도의 회담이 아니고,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등도 다 교집합을 갖고 있어 별도의 의제들이 아니다. 반면 북한과 미국이 서로 만났을 때 양측이 대타협을 이뤄 신뢰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그에 따른 시행조치들을 이끌어낼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봤을 땐 문 대통령의 구상은 우리 정부가 중재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고, 두 정상회담이 끝난 뒤 남·북·미 3자가 모여 총결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 말은 두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으로 봐도 될까. “아직은 미지수다. 진행돼봐야 안다. 남북회담에서는 비핵화 조치를 우선 논의하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해제를 위한 순서와 방법은 북·미회담까지 진행돼야 나올 문제다. 때문에 우리는 그에 앞서서 섣불리 얘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북·미회담에서 나온 결과가 있으면 추가로 4차 남북정상회담이 연내에 이뤄져 경제협력 문제 등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남·북·미 3자가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종식하자는 쪽으로 갈 것인데, 평화체제 전환이 전제가 되는 종전선언까지 갈 수 있을지는 사실 모른다. 종전선언에는 3자에 더해 또 다른 당사자인 중국도 있으니 4자가 참여하는 쪽으로 갈 여지도 있고 변수가 많다.”

-북한의 태도가 빠르게 변한 것도 좋든 나쁘든 회담 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공개적으로 북한의 태도가 바뀐 것은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보지만 보다 징후적인 면에서는 작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그 선언이 비핵화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완성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면도 있는데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니 이제 핵은 완성됐으니 대화국면으로 넘기려는 의도로 읽혔다. 내가 결정적으로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것은 작년 12월 평양 남쪽의 평남 강남군을 22번째 경제개발구로 지정한 것을 보고서였다. 북한이 최대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 추가로 외자를 유치하도록 하는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는 건 빠른 시간 안에 제재가 해제될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쯤 가면 상황이 달라져 경제개발구 개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핵·경제 병진 노선’이 단순히 구호가 아니라고 본 건가?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2013년 김 위원장 연설에서 명확하게 나왔다. 그해 5월 북한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을 철수시켰다가 직후에 다시 투입시켰다. 외자유치를 하는 경제특구에서 북한 당국이 마음대로 자국 노동자들을 철수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것이었다. 그런 기조는 일관됐다. 2013년 말 장성택을 처형하면서도 장성택이 관장하던 중국과의 교역분야에는 아무 타격이 없었다. 선대 김정일 시절 같으면 그런 권력자가 숙청되면 관련 사업이 모두 쑥대밭이 됐을 텐데, 숙청 이후에도 사업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회담에 나선 것도 병진 노선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 “핵개발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대외적으로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한 권력이양기의 체제 불안을 극복하고 권력기반을 공고화하기 위한 것이다. 핵을 이용해 2015~2016년 무렵 권력이 공고해지면서 협상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 한 핵개발이니까 일단 완성시키고 나서 포기할 땐 포기하고 받을 수 있는 건 받자는 쪽으로 갔다. 이번에 방남한 김여정 부부장의 행동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잠재적 후계자라는 걸 보여준다. 권력이 안정된 것이다. 남은 건 경제다. 북한이 왜 먼저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했겠나.”

-김 위원장이 철저히 실용적인 인물이라는 분석인데. “경제개발이 필요한 상황에 더해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리더십 스타일이 이번 회담 성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처럼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기보다는 목표지상적으로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번 회담이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웬만한 건 모두 간소화시켜 빠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당연히 이번 3차 정상회담의 성격과 진행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지겠다. “1·2차 회담 때와는 전혀 다르다. 의전부터 모든 것이 다르다. 1차 회담 때는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해야 한다며 나서지 않았나. 이번 회담에서는 장소가 판문점이라는 점만 봐도 달라진 분위기가 보이는데, 가장 큰 의미는 실무형 정상회담이라는 것이다. 서류가방 들고 가서 하는 회담이다. 형식보다는 내용 중심으로 비핵화 등 세 가지 현안 중심으로 논의한다. 그러니까 합의만 본다면 우리 쪽에서도 별다른 이유가 없을 경우 회담 직후 합의 내용을 발표하리라 본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필요가 크게 작용해 성사된 회담이면 남한의 주도권이 줄어들 염려는 없을까. “북한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미국 정부를 설득한 것부터가 우리의 성과이자 공로다. 일방적으로 북한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연결시키며 기회를 잡은 것도 우리다. 문 대통령이 작년 12월 미국과의 마찰을 감수하고서 군사훈련 연기를 결정해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다.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상황을 만들어간 건데, 그럼에도 더 만들어가야 할 역할도 있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타결하려면 남한의 중재가 필수적이고, 그밖에도 우리 정부가 지금 이 결정적 국면에서 북한과 일본, 중국, 러시아 간의 대화를 조율하면서 입지를 더욱 높일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 자문단에도 들어갔는데 어떤 조언을 할 건가. “자문단은 형식적인 자리이고, 과거부터 긴 세월 함께 토론한 분들이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으니 그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성과를 낼 것이라 본다. 1·2차 회담 때 남북 간 대화가 진행되던 것을 단순히 회복하는 게 아니다. 그때의 경험은 살리고 그동안 대화가 단절되어 오던 중 기회가 열린 새로운 상황에 맞춰 독해능력을 발휘할 때가 된 것이다. 유의할 것은 협상의 판돈이 큰 만큼 잘 안 되면 후폭풍도 더 커진다는 점이다.”

-특히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예상을 벗어난 문제에 부딪칠 수도 있을 텐데. “내가 남북관계가 타결될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분석한 사람인데도 북·미 정상회담은 예측을 못 했다. 그 정도로 현재의 상황이 보통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상황이다. 구체적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걸 전제로 하면, 북·미회담에서 대타결이 이뤄지는 큰 그림이 만들어지더라도 양쪽이 교환할 사항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장기적인 과제는 북한으로선 못 참는다. 큰 틀의 합의를 성공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선행적 조치가 한두 가지 북·미 양쪽에서 세트로 나오도록 하는 게 모두의 과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라면 나한테도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미국이 노리는 것은 좀 더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비핵화된다는 것 자체가 전적으로 유리한 결과다. 워낙 사이가 안 좋았던 양측이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소식에도 의구심이 나오지 않았나. 대화로 평화를 이끌어낸다는 건 큰 정치적 성공이다. 북한에 대한 의구심도 큰데 앞서 남북정상회담 합의가 나왔기 때문에 완충이 된 것이다. 미국 국민들도 회담으로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 있으니 무엇보다 실질적인 실행조치가 있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중재자 역할을 다해 평화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안보실장을 대한 것만 봐도 우리가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나.”

-주변국 중에서는 그동안 북한과 가장 가까웠던 중국의 역할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지금이 시진핑 주석 권력 기반작업의 초창기니까 중국의 대내적 상황만을 보고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운 시점이다. 북한 지도자가 중국과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한국을 통해 바로 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도 처음이기 때문에 중국에선 찬성하면서도 일면 소외된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중국도 이런 국면을 타개하고 당사자로 참가하기 위해 워밍업을 하고 있다. 북한도 남한과 미국과만 대화를 여는 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열 계획이기 때문에 중국도 이 대화의 구도 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과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회담 결과를 통해 한반도 정세가 안정된다면 개방될 북한을 두고 남한은 어떤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까. “사실 북한의 경제사정은 세간의 인식만큼 크게 어렵지는 않다. 시장화와 개방은 못 견뎌서가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이 원하는 경제가 아니라서 하는 것이다. 북한이 줄곧 내세웠던 ‘고도성장’과 ‘단번도약’은 경제제재가 가로막지만 않으면 중국을 거치지 않고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나온 구호다. 김정은 체제의 목표는 대외지원을 받아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중국을 따라잡을 정도로 성장하는 것이고, 그래서 핵 포기에 대한 보상으로 체제안전과 함께 외국자본 유치를 노리는 것이다. 김정일 체제에서는 개방하면 혼란이 우려됐지만 지금은 김정은이 앞장서 외자 교통정리에 나설 것이니 그 문제는 우리가 걱정할 게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에 들어가 이익을 내려는 기업들을 위한 인프라 자체가 없으니 우리 기업활동을 위해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통일비용이다. 이미 중국과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는 대교가 줄줄이 세워지고 있다. 오히려 준비가 안된 것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정도밖에 연결되지 않은 우리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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