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언론인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 <14·끝>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돈주

고계연 기자 2018. 3. 24. 15: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새 확 바뀐 평양의 일상..변화의 밑바탕엔 신흥 부유층 '돈주'
90년대 초중반 무너진 북한 계획경제..돈주의 부상은 불가피한 모순?
당국의 용인 속에 버스·택시, 아파트 건설 등 돈되는 사업 손뻗쳐
국영 경제 압박·체제를 약화시키는 돈주, 통제 강화와 줄타기할듯
북한 경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시장경제 요소가 늘었는데, 장마당의 확산과 돈주의 득세에서 뚜렷하다. 특히 신흥부유층 돈주는 2014년 기업소법 개정으로 북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사진은 고층빌딩 건설 타워크레인이 곳곳에 보이는 평양 시내의 모습. /자료사진=서울경제DB
[서울경제] ◇경제 변화의 견인차 돈주(金主)

불과 몇년 전만해도 평양에서 휴대 전화를 들고 다닌다면 언론매체에서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300만대가 넘고 거리에는 1,500대의 택시가 달린다. 평양 시내에는 피자나 햄버거를 파는 가게도 등장했다. 시내의 슈퍼에는 고급 식재료가 가득하다. 노동당 중앙이나 외화벌이 기관의 간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번에 1,000달러를 쓰기도 한다. 1,000달러는 일반 가정의 1년치 식비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모의 뒷면에는 ‘돈주(金主)’라 불리는 신흥 부유층이 있다. 한국의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돈주는 다양한 상업 활동을 자금면에서 지원하는 신흥 부유층이다. 북한은 대략 1만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주민을 돈주라고 부르고 그 숫자는 최소한 수만명, 최대 2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신흥 부유층 등장의 모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혹독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가난하고 식량부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북한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고집해 모든 생산수단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갖는다. 그런데 이런 구조에서 돈주(金主), 이른바 북한식 자본가(붉은 자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북한의 계획경제는 1990년대 초중반에 급격히 붕괴했다. 3년 연속 자연 재해 때문에 내부 생산기반이 무너졌다.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물물교환으로 음식을 조달해 시장은 활성화됐다. 돈주는 그 과정에서 생겨났다. 돈주는 국영 식량배급망이 무너진 틈을 타 사적 유통망을 만들어 협동농장과 개인 텃밭에서 생산된 농작물을 입도선매하고 시장에 유통시켰다. 공산품을 개인적으로 구매해 시장에 유통시키고 자재 등을 조달해 중간 마진을 벌어들였다.

◇버스와 택시 운송사업 진출

북한의 터미널역 앞에 버스가 정차하고 손님이 꽉 차면 출발한다. 이런 운수 부문이야말로 돈주가 힘을 발휘하는 분야다. 국영 철도가 마비돼 있기 때문에 대체 교통수단으로 버스 수요가 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돈주들이 군대나 경찰의 이름을 빌려 민영 운송회사를 시작하고 중앙 기관과 연계해 운수사업 권한을 따냈다.

개인의 버스사업은 2015년께부터 확산돼, 현재는 버스 10대 정도의 회사는 전국에 수십~수백 곳에 이른다. 버스 차체는 중국산 중고 버스를 3,000~4,000달러에 수입하고 있다.

북한의 주요 도시에는 국영 운수사업자가 있지만, 보유한 버스의 노후화와 자금난으로 운영이 어려운 지경이다. 따라서 당국은 돈주가 운영하는 운송회사의 진입을 어쩔 수없이 인정했다. 또한 평양 시내에서 영업하는 택시의 절반 이상이 돈주의 소유라고 보면 된다.

◇도로와 아파트 건설로 자산 확대

북한 당국은 공식적으로 자본가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기업도 허락하지 않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북한 기업에 대해 일정한 지분을 인정하고 있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돈이 늘고 돈주들과 관련한 투자 사업이 활기를 띠게 되면 북한 경제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신흥 부유층인 돈주(金主)는 30~40대가 많다. 수십만~수백만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돈주는 소매업·부동산·민간금융 등을 통해 자산을 확대시켜 왔다. 현재 북한에서 민간주택 개발을 위한 절차를 알아보자. 건설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에 승인을 요청하고 승인이 떨어지면 설계에 들어간다. 도시건설사업소라는 부서가 있지만, 실제 건설에는 각종 기업소가 동원된다. 1층을 짓고 돈주에게 보이고 투자자를 모은다. 그 돈으로 5층 아파트를 건설했다고 한다. 주택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나 당국의 간부들에게 집을 배분하고 나머지를 팔아 건설비와 이익을 챙긴다. 아파트 1개 동에서 돈주가 챙기는 이익은 5,000~30,000달러 정도이며 돈주 1인당 최대 10가구를 분양받을 수 있다.

◇금융업 틈새까지 채우는 돈주

돈주(金主)는 환전·대출·예금·대금결제 등 민간 금융업으로도 손을 뻗치고 있다. 자금 대출 때는 월급과 주택 입주증을 담보로 잡고 대출이자는 2,000달러 미만은 월 10%, 그 이상은 4~7%라고 한다. 또 돈주는 다른 돈주에게 시중 금리보다 싸게 긴급 대출을 하기도 한다. 당·행정기관 간부 등과 결합된 ‘권력형 돈주’가 아닌 일반 돈주는 치안 기관과 세관·당 조직·군 등의 다양한 권력층에 보험용으로 뒷돈을 대고 있다. 당 간부 등도 돈주와 결탁하여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자기 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여기고 있다.

북한 당국은 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자금 유통과 국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돈주의 활동을 용인하고 있다. 그러나 돈주의 활동이 국영 경제 부문을 크게 압박하고 체제를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다면 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다./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

[주] 새해를 맞아 평창동계올림픽(2월9일 개막)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외교 안보 등)는 뚜렷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일촉즉발의 험악했던 형국을 떠올리면 상당히 이례적 진전이다. 그러나 美·日은 ‘비핵화’를 내세워 북한을 압박하는 터라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미북정상회담까지 상황 전개는 더 지켜봐야 한다. 트럼프에 맞서는 30대 초반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에 대해 살펴본 일본 언론인 고미요지(도쿄신문 편집위원)의 글을 일부 불가피한 사정으로 여기서 마무리한다. 그동안 콘텐츠 사용을 양해해준 서교출판사(김정동 사장)에 특별히 감사드린다.

* 고미 요지(五味 洋治)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주니치신문 서울지국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총국에서 근무하며 북한 뉴스를 쫓아왔다. 지난해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화록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으로 2013년 번역서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도쿄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 중. 61세.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