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가 숲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더해지는 날

2018. 3. 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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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⑪ 타이가의 겨울밤

[한겨레]

눈 덮인 사얀산맥의 광활한 풍경. 동쪽으로 바이칼 호수까지 뻗어나간다. 공원국 제공

타이가는 이미 새 세대를 받아들였다
타이가의 노총각 시인 칭기스가
공언대로 마흔 되는 날 장가를 든다면
그는 숲으로 아이들을 데려올 것이다

치즈 맛은 심심하고 깊었다
파미르 초원에서 일이 끝나면
언젠가 내 아이들을 데리고
타이가로 가 인사를 올려야지

사회의 문화는 삶을 실어가는 그릇, 삶은 그 그릇 안에 담긴 물과 같을 것이다. 모든 갓난아기는 귀여운 벙어리로 태어나지만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어를 쓰고 미국에서 자라면 영어를 쓰는 것처럼. 골동품 그릇처럼 문화는 섬세하고 오랜 것일수록 깨지면 다시 붙이기 어렵다. 문화는 공동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화음으로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오늘도 사얀 타이가 공동체 구성원들은 한편으로는 깨진 그릇 조각들을 붙여가며 한편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얀산맥 중심부는 순록 유목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곳이다. 집단농장 체제가 붕괴된 1990년대, 사얀산맥 동쪽에서 바이칼호 사이의 가축 순록들은 몇 년 사이에 사람의 눈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숲으로 돌아가 조상들의 방식으로 순록을 길러보려 했지만 그들은 순록의 ‘문화’를 몰랐다. 무턱대고 모으려 할수록 순록은 더 빨리 흩어졌다. 짐승은 인간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고 있었다. ‘계약 범위를 넘어서 구속하면 우리는 떠난다’. 그러나 이곳 산맥 중심부의 순록은 그렇게 흩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오늘날 다시 늘어나고 있다. 당시 새 세대 목동들이 여전히 산에 남아 있던 부모로부터 계약의 조항들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가의 삶을 담는 문화의 그릇은 오랜 충격으로 이미 깨졌기에 지금도 여전히 복원중이다.

사냥꾼의 움막에 모인 사람들. 사소하지만 여유와 배려가 담긴 그들의 삶은 타이가의 추위를 이겨내는 힘이다. 공원국 제공

“여기서 먹는 건 해결되니까”

연말, 함께하던 산중 목동들이 새해를 맞으러 먼저 산을 내려가는 바람에 나는 며칠 동안 ‘그’(그가 이 글을 읽으면 민망해할 테니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에게 맡겨졌다가 케렐이 설상차로 데리러 오면 보르바굴과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그렇게 파시헴 산중의 자그마한 천막에서 우리는 며칠 동안 함께 지냈다. 올해 51살인 그는 집단농장 소속 운전사로 일하다 농장이 해체된 뒤 도시로 나가 다양한 일을 했다고 한다. 그예 일을 찾기 어려워졌을 때, 마침 산중에 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순록을 물려받아 목동이 되었다. 그때가 2001년이다. 하지만 16년 타이가 생활도 사람 벅적거리던 곳의 그리움을 지워내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어느 날 순록을 남에게 넘겨주고 타이가를 떠날 날을 꿈꾸고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이 좋았지. 그때는 자기 하고 싶은 걸 했어. 왜 여기 왔냐고? 할 일이 없으니까 온 거지. 여기서 먹는 건 해결되니까.”

겨울 타이가의 밤은 혹독하게 춥고 길다. 여섯시에 밥을 지어 먹고, 여덟시면 집광판으로 모은 전기로 빛을 내는 전구도 꺼진다. 그때부터 천막 안으로 추위가 찾아오기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장작은 충분히 준비해 두었으므로 가끔씩 일어나 난롯불을 이어가는 것이 밤의 임무다. 그는 밤잠이 깊었고 타이가에서 밤에 불을 지키는 관습을 지키지 않았다. 첫날, 한밤중에 나는 세번 일어나 불을 이었다. 알람은 필요가 없다. 불이 사그라들면 추워서 자연히 눈이 떠지니까. 임시로 만든 내 침상은 허술하고 이불도 낡아 더 추웠다. 그러나 둘째 날은 새벽에 깜빡 잠이 들어 불을 완전히 꺼트리고 말았다. 허둥지둥 일어나 불을 지피고 나니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내와 함께 있었을 때는 아내만 밤에 일어나 불을 지폈던 모양인지 그는 밤에 통 일어나지 않았다.

사슴을 돌보러 숲으로 갔다 천막으로 돌아오면 그는 혼자 중얼거린다. 평소 원주민들이 대화 시 쓰는 토자 말이 아니라 러시아어로 하는 것으로 보아 완전한 독백은 아니다. ‘겨울에는 곰이 없어 좋고 여름에는 따뜻해서 좋지. 아냐, 겨울은 추워서 싫고 여름에는 모기 때문에 싫어. 아냐, 겨울에는 눈이 많아 좋고 여름에는 물고기가 많아서 좋아. 아냐, 겨울은 늑대 때문에 싫고 여름은 곰 때문에 싫어.’

끝없는 독백을 듣다 보면 겨우 하루 만에 외게 될 정도였다. 그리고 저녁이면 아침에 이미 찢은 달력을 만지작거린다. 잠이 들기 전 그는 언제나 거한(去寒)용 흑차를 정성 들여 다려 마셨다. 무언가를 혼자 마시거나 먹는 것은 타이가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다.

셋째 날 밤, 나는 결심했다. 불을 잇지 않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리라. 나도 게으름뱅이가 되자. 우리 어디 한번 공평하게 추위를 즐겨보자. 그러나 천막 안팎의 온도가 비슷한 지경이 되자 그가 일어나 꺼진 불을 다시 피웠다. 아침에 퉁명스럽게 물어봤다.

숲속 사냥꾼의 자그마한 천막 안 풍경. 공원국 제공

“아저씨는 도대체 왜 순록치기가 되었어요? 매일 내려갈 생각만 하는데.”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여기서는 먹을 것이 있으니까.”

그건 사실이다. 그는 올해 야생 순록을 여섯마리 잡았다. 먼저 내려간 아내와 한철을 같이 사는 그에게 그렇게 많은 고기는 필요 없어서 마을에 있는 자식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리고 호수에는 다 크면 사람만해지는 거대한 물고기 타이멘이 있다. 그가 말한 대로 여기서는 먹을 수 있다. 좀 더 부지런하면 밤에 따듯하게 잘 수도 있다. 그에게 앞으로 할 일을 물어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희망 사항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떠나온 마을과 도시, 그리고 거기서 일하던 이야기만 반복했다. 어떤 이에게 타이가는 지옥이라는 아나톨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옥은 아닐지라도, 분명 그는 타이가의 적막감에 지쳐 있었다.

그러나 얄미움도 잠시, 사람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타이가에서 함께 살며 나는 점점 그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그라고 별수가 있겠는가? 예전 숲속 공동체의 일상을 지탱해주던 무수한 문화적인 요인들이 사라지고, 눈밭 한가운데 외로운 사내만 남았다. 그는 자기에게 익숙한 과거를 그리는 수줍은 사내일 뿐이었다. 공예품, 세시 풍속, 춤과 노래, 이야기가 사라졌다. 다양한 금기와 약속,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선조의 태도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히 여기에는 문화의 그릇에 담길 내용물인 동시에 그 밑바닥을 이루는 가장 큰 주체가 없었다. 사얀산맥의 겨울숲에는 아이들이 한명도 없다! 어른만 남은 공간은 적막하다. 그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

아이들은 도시 혹은 대규모 정착촌에 산다. 과거 집단농장 탁아소에서 자라던 아이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는 아버지가 없을 뿐 아니라 아버지 삶을 증언하는 흔적들도 없다. 집에서 아이들은 디즈니 만화 속에서 아버지의 삶과 완전히 동떨어진 장면에 파묻혀 지내다 싫증이 나면 휴대폰으로 옮겨간다.(내가 방문해서 잠을 얻어 잔 세 가정에서 예외를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서 휴대폰을 빼앗을 권위가 없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추위와 고독에 무관심했다. 그렇게 순록치기는 아이 없는 산에서 고립되고, 아이들은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선혈이 난무하는 러시아 연속극이나 일상과 동떨어진 미국 만화나 휴대폰 게임에 의해 고립되었다. 세대를 이어주는 윤리적·심리적 유대의 고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집단농장이 만든 공간 배치는 너무나 확고하여 숲에는 학교가 하나도 없으니까. 누군가 이어받을 이가 없다면 문화를 복원하고 재구축할 이유도 없다. ‘그’ 또한 아들딸과 손자가 있는 마을을 그리고 있었다.

아들이 데리러 오기로 한 날 그는 순록 몰이를 나가지 않고 기다렸다. 내가 짓궂게 놀렸다.

“아들이 아버지를 잊었나 보오.”

그도 여유를 얻어 나를 놀렸다.

“아내가 남편을 잊었을걸.”

“벌써 좋은 사람과 살고 있겠죠.”

내가 눙치니 그가 웃었다. 그는 고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고독에 잡아먹히는 이곳으로 올라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만 이방인인 나는 고독할 틈이 없었다. 그가 아들을 기다리는 사이 나는 중요한 일거리를 찾고 그를 나무랐다.

“아저씨는 정말 나빠요. 이 타이가에서 아저씨 개들 말고 집 없는 강아지를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추운데 집을 지어줘야죠.”

가을 내내 산을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던 녀석들이 겨울이면 하루 한 끼 얻어먹는 밀가루 죽으로 살아간다. 타이가에서 사냥의 성패는 전적으로 사냥개의 능력에 달려 있다. 개가 흑담비를 나무 위로 몰아야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목동들은 대개 자기 개를 아낀다. 하지만 이 산속 ‘도시인’의 개들은 집이 없었다. 무안했던지 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칭기스네 집에서 눈여겨본 대로 개집을 설계했다. 눈을 막을 수 있는 나무 아래 터를 잡고, 자작나무로 뼈대를 만들어 세우고 그 위로 전나무 가지를 촘촘히 이었다. 햇빛을 잘 받도록 남쪽으로 문을 내고 바닥에 풀도 깔았다. 마지막으로 바람을 막도록 지붕 위에 눈을 덮었다. 한나절 동안 작은 개집 두 채를 지었다. 그가 개들을 그리로 옮기며 물었다.

“타이가에서 집 없는 개는 우리 집 개밖에 없지? 내가 진짜 나쁜 사람이지?”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쁘지는 않아요. 그래도 좀 게을러요.”

눈 덮인 호수의 얼음을 깨고 잡아 올린 타이멘 한마리. 공원국 제공

숲에서 도시만, 혹은 도시에서 숲만 바라보는 삶은 모두 절름발이다. 나는 도시를 오가면서도 숲속에서 건실히 터전을 닦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칭기스나 아나톨리는 물론 대개가 그런 이들이었다. 순록치기와 사냥을 제외하면 사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튼튼한 개집 짓기, 선물로 쓸 순록가죽 조끼 만들기, 손님의 국그릇에 좀 더 큰 고깃덩이 넣어주기, 길손을 위한 차 끓이기 등 소소한 것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여유가 있었다. 숄반과 셋이 호수에서 그물을 거둬 겨우 타이멘 한마리를 건졌을 때 칭기스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지금 물고기가 움직이지 않아. 좀 더 살을 찌운 뒤 잡히려고.”

사소하지만 그런 여유와 배려를 대할 때는 타이가는 춥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들어설 공간은 분명 다시 만들어지고 있었다.

파란 곰팡이가 슨 치즈 몇 조각

하루 지나 그의 아들이 오고, 나를 태우러 케렐도 왔다. 케렐과 우리는 무박 2일 동안 설상차로 무려 200킬로미터를 달렸다. 한밤중에 올 때도 들른 사냥꾼들의 오두막으로 들어가니 네명이 잠을 자다 일어나 차를 준비했다. ‘그’의 천막에서 맛보지 못한 흑차를 그때 맛보았고 그것이 거한용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커다란 쇠잔에 차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난롯불에 넣었다 빼내면, 모두가 둥그렇게 둘러앉는다. 이제 ‘추위를 물리치는 의식’이 부활할 순간이다. 돌아가며 모두들 한 모금씩 마시면 다시 차를 우려냈다. 이 약초 차를 마시면 거짓말처럼 꽁꽁 언 몸에 열이 오른다. 의식은 자못 엄숙했다.

내려오는 길은 고통스러웠다. 좁은 짐칸에 커다란 야생 순록 뿔과 기름통을 싣고 나와 아저씨 한명이 탔다. 보르바굴은 케렐의 뒤에 앉았다. 꿇어앉아 종일을 달리자니 다리가 마비되고 얼굴은 얼어붙었다. 그 추위와 통증 속에서도 꾸벅거렸지만 잠이 들면 굴러떨어지기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순록과 토끼가 설상차에 놀라 흩어지고, 장대한 가문비나무가 눈덩이를 툭툭 던지면, 육체의 고통과 무관하게 타이가는 무섭도록 아름답게 다가왔다.

동지는 지났고 이제 새해다. 타이가는 이미 새 세대를 받아들였다. 타이가의 노총각 시인 칭기스가 공언대로 마흔이 되는 날 장가를 든다면 그는 필시 이 숲으로 아이들을 데려올 것이다. 그는 숲이 자신의 삶터라고 매일 노래했으니까. 멀리 동북쪽 에벤키인들은 벌써 타이가에 유목 학교를 세웠다고 하니 이들이라고 못할 리는 없겠지. 이미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전부를 품은 타이가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더해진다면 문화의 그릇은 대강 완성될 것이다.

산을 내려온 지 한참 뒤 배낭 옆주머니에서 한동안 잊었던 새까만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파란 곰팡이가 슨 치즈 몇 조각과 흑차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아나톨리 할아버지의 부인 할머니(아쉽게도 그분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했다)가 주신 순록 길 양식이었다. 치즈 맛은 순록의 성품처럼 심심하고 깊었다. 파미르 초원에서 일이 끝나면 언젠가 내 아이들을 데리고 타이가로 가 인사를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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