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말로 하는 유언이 가능할까요?
실은 한 할머니께서 제게 주신 말씀을 제가 대신 질문합니다. 그 할머니는 평생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셨다는데 재산은 많이 있지 않아도 빚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다고 하십니다.
할머니는 자식보다 더 살뜰히 본인을 살펴준다고 항상 제게 입버릇처럼 말씀하는 사회복지사에게 남은 재산을 다 주고 싶은데 우선 그 사회복지사께서 받을 수 없다고 하셨고, 큰 금액도 아닌데 그것으로 혹시 아들보다 더 귀한 그 사회복지사가 구설에 오를까 봐 결국 기부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셨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언장을 작성해야 할까요? 할머니는 쉬운 글자만 읽으시고 쓰는 것은 이름만 겨우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산이 얼마나 된다고 유언공증을 하시겠어요? 그러다가 구수증서 유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씨를 쓸 줄 모르는 할머니도 구수증서 유언을 하실 수 있는 것이 맞나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구수증서에 따른 유언은 질병, 그 밖의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에 따른 유언을 할 수 없을 경우에 유언자가 2인 이상 증인의 참여하에 그중 1인에게 유언의 취지를 말로 전하고, 그 말을 받은 사람이 필기하고 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내용이 맞다고 확인한 다음(그것을 '정확함을 승인한다'고 표현합니다)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것입니다. 이 방식에 따른 유언은 유언 내용의 이해관계인 등이 거짓으로 작성할 수 있고 유언자의 참뜻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가정법원의 검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법원 검인 청구를 하고 난 뒤에도 유언자가 생존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법원은 자필증서나 비밀증서 혹은 녹음으로 유언을 한 경우 유언자가 생존해 있으면 그 검인청구를 기각합니다. 이와 달리 구수증서에 따른 유언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간혹 이 점을 오해하고 유언자가 사망한 후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검인을 청구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럴 땐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청구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될 수도 있습니다.
법원은 유언자, 증인 등 여러 관계인을 심문하기도 하고 가사조사관이 조사하게 한 후 심판을 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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