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설명하려는 남성들.."'미투플레인(MeToo+Mansplain)'을 멈춰주세요"

김지혜 기자 2018. 3. 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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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회사원 김주연씨(28·가명)는 최근 직장 회식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남성 고위직 임원에게 “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들었다. 임원은 김씨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나는 미투를 지지하긴 하지만 요즘의 미투는 너무 과잉된 것 같다”면서 한참 동안이나 설명을 이어갔다. 실명을 밝히고 미투에 나선 특정 피해자를 거론하며 “진짜 성폭력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임원을 보며 김씨는 속으로 ‘또 시작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위직 임원의 말을 차마 반박할 수는 없어 조용히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남성 사원의 비율이 높은 서울의 한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는 강은영씨(27·가명)는 “미투 어떻게 생각해?”라는 남성 동료들의 질문에 넌덜머리가 난다. 질문을 던진 동료들은 늘 강씨의 답은 듣지도 않은 채 자신의 견해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미투를 지지한다”고 밝힌 한 남성 동료는 “고 장자연씨의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미투”라며 “최근에는 시류에 편승하려는 거짓 미투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해왔다. 다른 동료는 “법에서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미투는 불법 운동에 가깝다”고도 했다. 강씨는 “미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미투플레인’을 그만해 달라고 말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불평했다.

‘미투플레인(MeToo+Mansplain)’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미투 운동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가르치려는 행동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남자들이 무작정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을 늘어놓는 행동’을 뜻하는 맨스플레인(‘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이 미투 운동에서까지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하기 위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여성 누리꾼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투플레인은 자신만의 잣대로 ‘진짜 미투’와 ‘가짜 미투’를 판별하려는 남성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용도로 쓰인다. 여성에게 ‘진짜’ 미투 운동이 무엇인지 가르치려고 나서는 남성들에게 ‘지금 미투플레인을 하고 있다’거나 ‘미투플레인을 그만해 달라’고 말하며 그 행동을 비판하고 멈추게 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투플레인이 남성이 말하고 여성이 듣는 기존의 성차별적인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미투 운동의 확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투플레인에 대한 비판을 SNS에 게시했던 윤단우 작가는 “미투플레인은 ‘진정한 미투’의 기준을 남성 중심적으로 설정해 어렵게 입을 떼기 시작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사전에 검열하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게 남성의 기준에 맞춰 ‘제대로 말하기’를 강요하면서 피해 고발을 입막음했던 성차별적인 문법이 미투플레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미투 운동은 이러한 성차별적 문법을 무너뜨려 이제 남성들이 말하기보다는 들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플레인이 자신을 미투 운동의 ‘판관’으로 만들어 가해자로서의 반성을 거부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김 교수는 “미투 운동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남성들이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 가해가 되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미투플레인은 이러한 성찰을 거부하고 미투가 자신과 상관없는 사회 현상인 것처럼 설명하는 제3자, 판관의 위치를 점하기 위해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투를 판별하려는 판관의 태도 자체가 무수한 2차 피해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강간문화를 수호하는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남성이라면 미투플레인에 나설 것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경청의 태도부터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 작가는 “남성들이 군대나 회사 등 위계질서 내에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고 순응했던 경험들을 떠올려보고 피해자들이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감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만든 이 사회의 공고한 여성 혐오 문화가 남성에게도 ‘왜 남자가 그것도 못해’라는 등의 억압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지금은 막 말을 하기 시작한 여성들에 대한 경청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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