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쳐다보고 엉덩이 툭툭..남자에겐 이래도 괜찮나요?

노진호 2018. 3. 24. 0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노진호의 이나불?] 남자 엉덩이는 '그랩' 해도 되나요?

MBC 월화극 '위대한 유혹자' [사진 MBC]
지난 19일 MBC 월화극 '위대한 유혹자'를 보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좋아하던 은태희(박수영 분)를 따라 양로원에 간 권시현(우도환 분). 권시현을 앞에 두고 극 중 두 할머니가 대화한다. "남자는 얼굴이여"라고 운을 뗀 한 할머니는 손바닥에 침을 퉤 뱉더니 시현의 가슴을 친다. 곧장 다른 할머니는 "속이 뒤집어지다가도 요런 얼굴, 가슴, 궁짝 보면서 마음 풀리는 게 여자 마음 아니냐"고 화답한다. 그러면서 시현의 얼굴·가슴을 일방적으로 주무르고 마지막엔 엉덩이를 움켜쥐고 한동안 서 있는다.

'미투(#MeToo)' 고발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요즘이다. 아무리 드라마 속 설정된 상황이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얼굴과 가슴, 엉덩이를 주물럭대는 건 적잖이 놀랍다. 특히 이는 그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혹은 가볍게 생각했던 사회적 인식과 맥락을 같이하며 이 잘못된 인식을 반복 재생하고 있다. 해당 편 방송 후 "요즘 같은 때 성추행 장면이라니(듕**)"란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샘 오취리는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해 대중목욕탕에서 샤워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 SBS]
높아진 시청자의 수준과 인식에 방송가 제작자들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한 경우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월 4일 방송된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는 방송인 샘 오취리와 그의 엄마가 출연했다. 샘 오취리는 이른 아침 대중목욕탕을 갔고, 다른 연예인의 엄마들과 MC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벗은 채로 몸을 씻는 장면이 방송됐다. 화면은 신체 주요 부위에 만화 캐릭터를 삽입해 상상력을 자극했다. 당연히 출연자와 사전 동의를 거친 연출 장면이겠지만,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높여보려는 천박한 시도다. 재미가 들렸는지 '미우새'는 지난 18일 방송에서도 가수 김종국의 샤워 장면을 담았다.

2016년 말 tvN 'SNL 코리아 시즌 8'의 제작진은 한 개그우먼이 아이돌의 주요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듯한 장면을 그대로 온라인에 공개했고, 2014년 tvN 예능 '로맨스가 더 필요해'에선 배우 라미란이 가수 에릭남에게 강제로 입맞춤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방송 제작자들이 얼마나 성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 성별 불문, 방송가의 무지한 젠더감수성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사진 tvN]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방송가의 무지한 젠더 감수성은 성별을 불문한다. 특히 상당수 드라마는 여성의 주체성을 거세하고 상대방의 일방적인 스킨십을 로맨스로 포장하기 일쑤다. 최근 종영한 KBS2 월화극 '라디오 로맨스'에서 라디오 작가 송그림(김소현 분)을 짝사랑하는 PD 이강(윤박 분)은 "그러지 말라"는 거부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그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또 다른 남주인공(윤두준 분)은 그림을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강제로 어깨에 둘러메고 차에 태워버린다. 지난 1월 호평 속에 끝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제혁(박해수 분)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는 여자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전화 안 하면 내 오른손 망치로 부순다.' 촉박한 제작 시간과 제한된 예산 등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손쉽게 화제를 끌려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죄의식이 동반된 즐거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방송 매체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제작자 스스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높아진 젠더 감수성에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반복해왔던 로맨스의 표현 방법도 한 번쯤 더 생각해봐야 한다. 최소한 대중의 젠더 감수성 수준에는 맞춰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대중의 수준을 방송이 앞장서 떨어뜨리고 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 [노진호의 이나불?]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