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상식백과사전 104] 50년 전 마스터스의 잔혹 사건

2018. 3. 2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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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인 1968년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입는 밥 골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8년 마스터스 챔피언 밥 골비는 우승 이래로 종종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해 대회에 연장전에 나갈 수도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로베르토 디 빈센조가 어처구니없게도 스코어카드에서 실수한 사건 때문이다.

토미 아론이 빈센조와 동반 플레이어이자 마커로 빈센조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파4 17번 홀에서 빈센조가 버디를 해 3타를 했는데, 토미가 빈센조의 카드에 4를 적었다. 자신의 스코어카드가 정확한지 확인하는 건 선수의 책임인데 일단 서명하고 접수대를 떠나면 그대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룰에 따르면 스코어카드에 적힌 숫자가 자신이 친 타수보다 많으면 그대로 확정되고 적다면 실격이 된다. 예컨대 파4 홀에서 파를 했는데 3을 적는다면 스코어 오기(誤記)로 실격이다. 반면 5를 적어내면 4로 수정되지 않고 그냥 5가 최종 스코어로 인정된다. 내 스코어는 잘 기억하더라도 개별 홀의 스코어나 내가 적어야 하는 남의 스코어는 종종 실수도 한다. 그러니 선수라면 스코어카드를 제출할 때까지 집중해야 했다.

카드 오기는 오늘날 프로 대회에서도 종종 일어났다. 안병훈은 지난 2016년6월 유러피언투어 이탈리안오픈 3라운드를 마치고 스코어카드 오기로 실격됐다. 15번 홀에서 보기를 했는데 16번 홀에서 보기를 한 것으로 적어 제출했기 때문이다. 룰에 따르면 안병훈은 15번 홀은 보기 대신 파를 적었으니 한 타수 적게 써냈으니 실격이다. 16번 홀은 파 대신 보기로 한 타수 많게 적어냈으니 그 타수는 그대로 인정되는 것이다.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밥 골비는 3라운드에서 로베르토 빈센조와 플레이를 했고, 한 타가 앞서면너 4월14일 마지막 라운드는 두 조 앞에서 시작했다. 그날이 마침 45세 생일이었던 빈센조는 골퍼로서는 최악의 날이었지만, 샷으로서는 최고의 날이었다. 골비보다 한 타를 덜 친 7언더파 65타 데일리베스트를 쳤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제출된 빈센조의 스코어는 66타였다.

마커였던 토미 아론과 문제의 로베르토 디 비센조의 스코어카드(아래).


골비 역시 파이널 라운드에 6언더파를 칠 정도로 펄펄 날았다. 15번 홀에서 이글도 잡았다. 골비는 호쾌한 드라이버 샷을 했고, 3번 아이언 거리만을 남겨놓았다. 두 번째 샷이 홀 2.3미터 지점에 멈췄고 이글 퍼트를 넣었다. 마스터스 창설자 보비 존스는 골비에게 축전을 나중에 보냈다. ‘15번 홀에서 당신의 탁월한 세컨드 샷에 전율을 느꼈다. 그 홀에서 내가 본 최고의 플레이였다.’

골비는 17번 홀 그린에 공이 올라가긴 했지만 홀까지 남은 거리가 길었다. 첫 번째 퍼팅은 한참 짧았는데, 긴장이 심할 경우 그럴 수 있다. 골비는 파 퍼트까지 실패했다. 그해 마스터스에서 유일한 스리 퍼팅을 기록했고 이어진 마지막 홀에서는 파를 잡아냈다.

자신이 범하지 않은 잘못과 사고에 대처하는 방식이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빈센조는 최악의 상황에서 의연했다. 그날 17번 홀까지 8언더파를 치다가 마지막 홀에서 보기를 했지만 7언더파 65타를 쳤다. 주변에서는 공동 선두가 되어 플레이오프에 나간다고 난리였다. 그게 마스터스라서 더욱 흥분되고 혼이 나갈만 했다.

같은 조에서 라운드했던 토미 아론이 그의 마커가 되어 스코어 카드를 적었다. 그는 대충 훑어보고는 사인을 하고 제출했다. 그런데 17번 홀에서는 빈센조가 실제 기록한 버디인 3타 대신 한 타가 많은 숫자 4가 적혀 있었다. 빈센조는 아마 플레이오프에 나간다는 생각에 침착함을 잃었는지 모른다. 잠시 후 경기위원이 그에게 다가와 ‘타수가 66타여서 밥 골비가 한 타 차로 챔피언에 올랐다’는 최종 결과를 전했다.

그 순간 20세기 골프 역사에 남을 명언이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빈센조는 울분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기서 틀리다니 이런 바보가 또 있나요!” 자신의 타수를 잘못 적은 토미 아론이 원수 같았을 테고, 한 번 더 물어보지 않은 경기 기록원이 미웠을 수도 있지만, 빈센조는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돌렸다. 그런 품격있는 자세에 모든 이들이 감명받았다.

당시 대회 시상식에서 우승한 골비(오른쪽)와 연장전도 못가고 2위를 한 비센조가 악수하고 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뒤 동정 여론이 일었다. 오거스타내셔널은 역대 우승자들이 새겨진 순은 담배 케이스를 그에게 선물로 보냈다. 빈센조의 친구들은 마스터스 우승자들이 입는 그린재킷을 비슷하게 만들어 그에게 선물했다. 2년 뒤인 70년에 그는 골프계에 공헌한 기여를 인정받아 윌리엄 D. 리처드슨상까지 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남미투어에서 빈센조는 무려 131승을 달성했다. 그는 남아공의 선샤인투어에서도 62승을 거두었고, PGA투어와 유러피언투어 8승씩을 더해 평생 231승을 쌓았다. 그리고 빈센조는 지난해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밥 골비는 올해 89세다. 하지만 골비는 우승 이후로도 비난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떤 과격한 골프팬은 골비에게 ‘콘크리트 포대에 넣어 바다에 빠트리겠다’는 협박 편지까지 보냈다. 정작 골비가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그는 마치 죄인처럼 여겨졌다. 2009년 디오픈에서 59세의 톰 왓슨과 연장전을 벌여 클라렛저그를 들어올린 스튜어트 싱크 역시 비슷하게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마스터스의 골프 역사를 뒤흔들었던 사건에서 일어난 지 반백년이 지난 올해는 또 어떤 일이 생겨날까. 역대급 사건이 벌어질 수도, 드라마가 펼쳐질 수도 있다. 타이거 우즈는 메이저 15승에 도전하고, 로리 매킬로이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목말라 있다. 최근에 43승을 한 미켈슨은 마스터스에서의 3승을 노린다. 최근 감이 좋은 세르히오 가르시아 역시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선다. 지난해 불의의 사고로 출전하지 못했던 더스틴 존슨도, 2년 연속 안타깝게 우승을 놓치고 있는 조던 스피스도 있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예단할 수 없으나 골프 역사를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되리라는 기대감은 커져간다. 비록 오랜 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1968년의 변함없는 챔피언 밥 골비에게도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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