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비아, 핵포기 선언 22개월 만에.. 미국에 장비까지 다 넘겼다

안준용 기자 2018. 3. 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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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격동의 봄']
- 볼턴이 꺼낸 '리비아식 모델'은
美, 자산동결하고 원유수출 막자 카다피가 먼저 핵포기 의사 밝혀
2004년 IAEA 사찰 등 검증 거쳐 핵 개발장비 25t도 미국으로 옮겨.. 완전한 폐기 뒤 국교정상화 보상

북핵 6자회담이 가동되던 2004년 7월 방한(訪韓)한 존 볼턴 당시 미 국무부 군축 담당 차관은 연세대에서 '북한 비핵화와 리비아 사례의 교훈'을 주제로 강연했다. 볼턴은 "리비아식 모델이 북핵 문제 해결의 교훈이 될 수 있다"며 "카다피가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한 대가를 받았고, 이제 김정일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리비아는 '완전한 핵 포기' 선언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고 핵개발 장비·문서를 미국에 넘기고 있었다.

그랬던 볼턴이 22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되면서 당시 강조했던 '리비아식 핵 폐기 모델'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볼턴은 내달부터 본격적으로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짠다. 14년이 흘렀지만 리비아식 핵 해법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 볼턴은 최근에도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리비아 때와 비슷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비아식은 '완전한 핵 포기 후 보상'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은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이 기본 틀이다. 먼저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하고 검증까지 이뤄진 후에야 제재 해제 등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리비아는 1981년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뒤 강력한 경제 제재에 직면했다. 1986년에는 미국 내 자산 동결, 미국의 대(對)리비아 교역 금지 조치가 이어졌다. 1992년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까지 받았다. 원유 수출 봉쇄 등으로 카다피 정권이 큰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미국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자 리비아는 2003년 3월 영국 비밀정보국 MI6을 통해 미국에 핵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미국은 '빈틈없는 검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2003년 4월부터 미국과 리비아의 비밀 협상이 시작됐다.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을 미측에 모두 공개했다. 이어 그해 말 "핵과 생화학 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IAEA의 사찰도 받았다. 원심분리기 등 리비아의 핵 무기 제조 장비와 관련 서류 총 25t 분량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창고로 옮겨졌다. 2005년 10월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완전히 폐기됐다.

리비아가 원하는 보상은 2006년이 돼서야 이뤄졌다. 리비아는 그해 5월 미국과 국교가 정상화됐고, 25년 만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졌다.

◇미·북 회담서도 '리비아식' 언급 가능성

리비아가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한 뒤 실제 핵 프로그램이 폐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10개월이다. 리비아가 확실한 핵 포기 의사를 보이며 IAEA의 포괄적 사찰을 바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검증 단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미국은 이후 북한에도 리비아식 '원샷' 비핵화를 요구해 왔다. 볼턴이 전면에 나설 경우 5월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리비아식 비핵화를 하면 북한도 사실상 2년 내에 핵 폐기를 완료해야 한다. 리비아처럼 핵 포기 선언 후 관련 시설과 자료를 공개하고, 광범위한 사찰을 거쳐 핵 시설을 전면 폐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그간 리비아식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2004년에도 "리비아식 선(先) 핵 포기 방식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며 '핵 동결과 그에 따른 동시 보상'을 주장했다. 특히 카다피 정권이 2011년 민주화 운동으로 무너진 것을 보고 거부감이 더 커졌다. 카다피 시대가 끝난 것이 핵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2011년 "리비아 핵 폐기 방식이란 안전 담보와 관계 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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