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Why] 그는 왜 고기 써는 칼로 물감을 칠했나

한대수 음악가 겸 사진가 겸 저술가 2018. 3.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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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의 사는 게 제기랄]
액자 없이 너덜너덜 걸려 있는 캔버스엔 인간의 폭력과 절망이..

30년 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자극적이고 창의적인 대작(大作)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너비 약 4m 작품이었는데 완전 폐허 같았다. 폭탄 맞은 듯한 황폐한 땅에 다섯 가닥 시든 풀이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야, 신기하네!" 감탄했다.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Kiefer)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지금은 세계적 대가가 됐다.

많은 비평가는 그가 살아 있는 가장 훌륭한 작가라고 극찬한다. 작품 하나가 300만달러 넘는 값에 팔린다. 이러한 대가가 뉴욕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친구인 화가 변종곤과 김희수를 데리고 갔다.

전시장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별관인 멧 브로이어(Met Breuer) 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니 입구에 그 폐허가 걸려 있었다. 마치 잭슨 폴록이 캔버스 위에서 미친 춤을 춘 느낌이었다. 강력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작은 작품이 많았다. 대부분 60~70㎝ 크기여서 큰 감동을 받진 못했다. 키퍼는 주로 5m, 10m 되는 대작으로 유명하다. 작업 규모가 너무 커서 파리 외곽에 백화점 창고로 쓰였던 3300㎡ 크기 스튜디오를 공장 같은 작업실로 운영한다. 여기에서 조수들과 캔버스에 페인트를 뿌리고 납을 뿌리고 흙을 뿌린다. 캔버스를 완전히 고문하는 작품들이 탄생한다. 주제는 과거 독일 나치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인간의 악몽과 파괴. 그는 말한다. "Without destroying, you cannot rebuild(파괴하지 않으면 재건할 수 없다)." 72세 노장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특히 뉴욕 유대인 사회와 이스라엘 미술관에서는 영웅으로 모신다.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관을 빠져 나오는데 2층에 아주 독특한 전시가 또 하나 있었다. 3~4m 되는 캔버스가 액자 없이 너덜너덜 걸려 있었는데 그림은 폭력적이었다. 경찰이 총을 들고 사람을 밟은 모습, 개가 혓바닥을 내고 짖는 모습, 남자들이 화난 얼굴로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 그런데 색감은 라이트블루, 옐로, 민트 그린, 아주 편안한 색감이었다. 작가 이름은 리언 골럽(Leon Golub). 2004년 82세로 죽은 미국 시카고 출신 아티스트다. 주제는 사회 부조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그리고 헤어나올 수 없는 인간의 절망. 그가 액자를 일부러 안 한 이유는 캔버스 그 자체가 사람 피부를 상징하기 때문. 심지어 붓을 쓰지 않고 고기 써는 칼로 페인트를 칠했다고 한다.

리언 골럽의 1985년 작 ‘White Squad Ⅷ’. 골럽은 1980년대 경찰의 심문과 체포, 폭력행위에 대한 저항을 11개 작품에 담아냈다.

골럽이 청년기를 겪은 1960년대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고, 시민권 운동과 온갖 인권 데모가 폭발할 때였다.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그는 특히 이탈리아 로마 예술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인간의 권력투쟁과 폭행. 어떻게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결론은 인간은 개다! 아니, 개보다 못하다! 그리하여 골럽 작품에는 미친개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유대인 작가로서 생전에는 큰 성공을 못 거뒀다. 2001년부터 세계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부흥하기 시작했다. 잔인하고 미친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쳤는지 그의 작품에 투영(投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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