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낙하산으로 은신처 만들고 야생고기 뜯어먹으며 살아

박용한 입력 2018.03.23. 06:01 수정 2018.03.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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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피해 구조 지점으로 산악도피
해진 뒤 낙하산으로 은신처 만들어
비상식량·야생 동물로 영양소 섭취
암호 교신해 헬기 유도한 뒤 생환

━ [단독 르포]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 공군 조종사 생환훈련 해보니

“반드시 살아서 명예롭게 돌아오라” 공군 조종사 생환훈련에서 외쳐진 구호다. 생환훈련은 공군 조종사가 임무 수행 중에 자신의 전투기가 피격되거나 문제가 생겨 추락하는 과정에서 낙하산으로 적진에 떨어졌을 때 살아오는 훈련이다. 생환훈련을 통해 적진에 조난된 위기상황에서 생존하고 귀환하는 능력을 키운다. 지난주 우리 중부지역에 위치한 공군 생환교육대 산악훈련장을 다녀왔다. 전투기 조종사와 동일한 조종복을 착용하고 실전적 훈련에 뛰어들었다. [J가 해봤습니다] 산악 도피부터 헬기 유도까지 1박 2일 동안 진행된 ‘공군 조종사 생환훈련 고급과정’을 소개한다.

연막탄을 터뜨리고 무전기로 교신하면서 탐색구조헬기를 유도하는 모습 [사진 공군]
생환훈련의 목적은 공군 조종사가 적진에서도 살아 돌아오도록 생존능력을 갖추는데 있다. 조종사는 오랜기간 까다로운 양성과정을 거친 정예요원인데다 군사기밀도 많이 알고 있어서 조난돼도 필사적으로 생환해야 한다. 특히 유사시엔 더 많은 조종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명의 조종사도 기필코 구해와야 한다는 게 공군의 목표 가운데 하나다. 이주원(소령) 생환교육대장은 “전시 공군의 핵심전력인 조종사의 무사 생환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항공우주작전 수행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훈련에서 같은 조에 편성된 7명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8~12년 경력을 갖춘 최정예였다. A 대위는 “최근 중국군 첩보기와 폭격기가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을 때 즉각 출동한 적 있다”며 영공방어 임무를 수행한 경험을 설명했다. B 대위는 “지난해 6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실시된 한ㆍ미 연합훈련인 ‘2017 레드플래그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했다.
훈련 시작 직후 은폐한 뒤 전민경 인턴기자가 위장크림을 발라 도피를 준비하는 모습 [사진 공군]
훈련은 조종사가 전투기 밖으로 비상탈출한 뒤 적진에 조난됐다는 가상 상황을 두고 이뤄졌다. 시나리오는 가상이지만 훈련은 실전적이었다. 부대 차량이 한적한 시골 야산 앞에 멈춰 서자 훈련교관은 “여러분은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돼 비상 탈출했습니다. 훈련을 시작합니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말이 떨어지자 조종사들을 생각할 틈도 없이 달리기 시작해 도로 옆 야산으로 뛰어 들어갔다. 눈에 띄지 않도록 수풀 사이로 들어가 낮은 자세를 취했다. 은폐(隱蔽) 또는 혹시라도 모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무 뒤로 엄폐(掩蔽)했다. 비상탈출 때 낙하산에 달려있던 생환장구에서 위장 크림도 꺼내 발랐다.
나침반과 지도로 현재 위치와 목표지점을 확인한 뒤 이동했다. [사진 공군]
이때부터 구조헬기가 도착하는 지점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는 산악도피가 시작됐다. 목표지점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주변 지형을 살피고 군사지도와 나침반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C 대위는 “앞에 위치한 도로 방향, 다리와 개천의 위치를 참조해 독도법으로 지도에서 위치를 찾았다”고 말했다. 목표 지점과 현재 위치를 확인했지만 이동하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으려 일반 도로가 아닌 산 속에서만 움직여야 했다.
조종사들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험준한 경로를 선택해 낮은 자세로 이동했다. [사진 공군]
산악도피도 간단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니는 능선을 피해 움직였다. 목표 지점을 향해 가로질러 이동하며 가파른 언덕을 넘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매우 컸다. 7부 능선까지 내려와 이동하기도 했지만 경사가 가파른 지형이라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적이 추적하지 못하도록 나무 가지를 밟거나 꺽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발자국 등 흔적을 지우며 이동했다. 게다가 낮은 자세로 이동하다 보니 십 여분 만에 숨이 차 올랐다. 비에 젖는지 땀에 젖는지 알 수 없었다. 얇은 조종복은 이미 한여름 운동복처럼 축축했다.
공군 생환교육대 허준 교관(오른쪽)이 훈련에 참가한 조종사들에게 생환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공군]
생환 전문가 허준(중사) 교관은 8년 경력의 노하우를 전수해줬다. “젖은 옷을 입고 있으면 체온이 더 빠르게 내려간다”며 “더울 때는 벗고 추울 때는 입기를 반복하며 체온 유지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이동 중간에 어떤 수종의 나무 아래에서 쉬어야 비를 덜 맞는지도 알려줬다. 허준 교관은 “잎이 넓은 활엽수가 잎이 가늘어 면적이 작은 침엽수보다 비를 더 잘 막아줄 것 같지만 아니다”며 “침엽수는 잎 자체의 면적은 작지만 잎이 더 많아 비를 효과적으로 차단해준다”고 말했다.
다용도 칼로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산악 구보에 활용했다. [사진 공군]
산 속에서 길이 아닌 나무 사이로 움직이다 보면 방향을 잃을 수 있어 수시로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했다. 다용도 칼로 나무 가지를 다듬어 지팡이도 만들었다. 허준 교관은 “지팡이를 사용하면 올라갈 때 힘이 덜 들고 내려갈 때는 무릎 부상을 막아준다”고 했다. 훈련을 시작하고 세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경사진 언덕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면서 생환장구에 포함된 비상식량을 먹었다. 맛은 의외로 좋았다. 성냥갑 크기의 딱딱한 곡물 가루 과자 한 조각이었다. 허 중사는 “음식은 조금씩 자주 먹어야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며 “갈증을 느끼더라도 물은 조금씩 여러 번 나누어 마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군 조종사가 낙하산으로 은신처를 만들고 있다. [사진 공군]
어느새 해질 무렵이 되자 비상탈출 때 챙겨둔 낙하산으로 은신처 구축을 시작했다. 교관들이 매듭법과 은신처 구축법을 설명했는데 간단하지 않았다. 낙하산 줄로 낙하산 천을 묶으면 밖으로 밀려나 풀어질 위험도 있었다. 경력 5년차 박범진(하사) 교관은 “낙엽 여러 장을 뭉쳐 낙하산 천으로 감싸면 공처럼 만들어 진다”며 “그렇게 하면 끈이 밀려나지 않아 튼튼하게 고정된다”고 비법을 전수해줬다.
손등을 하늘로 향하면 돌에 다칠 수 있어 손 바닥을 보이게 했다. [사진 공군]
체온 유지를 위해 불을 피우는 채화법도 익혔다. 다용도 칼로 마그네슘 스틱을 깎아내 가루를 만들고 이어서 부싯돌에 마찰을 일으키자 불이 만들어졌다. 이날은 비가 내렸고 주변 나무 가지가 모두 젖어 있어 불을 붙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낮에 이동하면서 틈틈이 모아뒀던 관솔(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을 놓자 더 큰 불이 오래 지속됐다. 허 중사는 “칼로 나무 가지를 잘라 톱밥을 만들면 쉽게 불이 붙는다”면서 “불 주변에 돌을 쌓아두면 바람은 막고 복사열은 모을 수 있어 더 효율적”이라며 시범을 보였다.
생환훈련에서 허준 교관이 채화법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공군]
이윽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곧바로 야간 도피훈련을 시작했다. 적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 도피경로만 활용해 은밀하게 이동했고 철조망을 돌파하는 비법도 익혔다. 이어 최근 미군으로부터 전수받은 훈련도 실시했다. 한국과 미국의 생환 전문요원들은 상호 교류를 이어가며 서로 장점을 배워왔다. 허 교관은 “미군은 실전 경험을, 한국군은 한반도 지형의 숙달된 경험을 교환하며 생존교리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했다.
야간에 철조망과 같은 장애물을 극복해 이동하는 훈련 [사진 공군]
밤 11시께가 되자 첫 날 훈련이 모두 끝났다. 군 관계자들은 “야간 숙영이 매우 힘들다. 병영 숙소로 내려가 쉬고 아침에 다시 합류하는 게 좋겠다”면서 “지금 내려가지 못하면 아침까지 견뎌야 한다”고 재촉했지만 가지 않고 남았다. 그러나 상황은 급전직하로 바뀌었다. 병영 숙소로 복귀하지 않은 게 두 시간 만에 후회로 돌아왔다. 한 두 사람이 들어갈 공간인 은신처에 갈대를 30㎝두께로 깔아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았지만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낙하산으로 은신처를 만들고 내부에 갈대를 넣어 보온제로 활용했다. [사진 공군]
사실 잠을 잤다기보다는 잠깐 졸았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시계를 보니 여전히 새벽 1시였다. 밖에선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도 크게 불어 은신처가 마구 흔들렸다. 이렇게 자는 듯 깨어 있는 듯 시간을 보냈다. 이때 “진작에 내려갔어야 했나” 후회가 몰려왔다. 새벽 2시가 넘자 주변 조종사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듯 느껴졌다. 모여든 조종사들과 30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작은 불을 붙여 몸을 녹였다.
야생동물을 삶아 먹기위해 구덩이에 뜨거운 돌과 흙, 갈대 위에 올려두고 있다. [사진 공군]
해가 뜰 무렵 은신처를 정리하는 한편 음식을 준비했다. 야생 동물을 삶아 먹기 위해 우선 구덩이를 30㎝ 가량 팠다. 이 구덩이에 불에 달궈진 돌을 깔고 그 위에 흙과 갈대를 덮었다. 고기는 잘 익을 수 있도록 칼로 손질한 뒤 올려두고 다시 갈대와 흙을 덮었다. 동시에 나무 가지를 고정해 물을 투입할 구멍을 만들었다. 곧이어 나무 가지를 뽑고 물을 투입하자 끓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돌의 열기가 물을 데워 만든 수증기로 고기를 익혔다. 30분 쯤 지난 뒤 꺼내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영양소 섭취를 위해 야생동물을 익혀 먹으며 극한의 상황을 견뎌냈다. 전민경 인턴기자(왼쪽)와 공군 조종사. [사진 공군]
생환 훈련의 마지막 단계인 구조헬기를 안전지역으로 유도하기 위해 이동했다. 주변에 위협이 없는지 확인한 뒤 몸을 숨겼다. 무전기로 구조헬기와 교신할 때는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하기 위해 서로 약속해둔 암구호를 주고 받았다. 헬기가 접근할 때엔 정확한 위치에 착륙하도록 무전으로 최종 위치를 안내했다. 헬기가 가까이 오자 일제히 뛰어나가 연막탄을 터뜨려 조종사 위치를 알렸다.
공군 조종사 생환 훈련에서 구조에 나선 공군 탐색구조헬기가 접근하고 있다. [사진 공군]
이번 훈련에서 조종사는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했다. 지도에서 이동 경로를 결정하고 피난 위치도 결정했다. 이때 전문 교관들은 한 발 뒤에서 지켜보면서 숙달된 경험을 전수했다. 교관들의 모자에는 ‘SERER’ 문장이 새겨져 있다. 생환교육대 관계자는 “SERER (Survival, Evasion, Resistance, Escape, Return)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생존한 뒤 도피하면서 저항하고 탈출해 복귀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주원 생환교육대장은 “실전과 같이 진행한 이번 훈련으로 조종사들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생존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내놨다. 훈련에 참여했던 공군 조종사 송문성 대위는 “실전적 훈련을 통해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했다. 이번 생환훈련에는 조종사 40 여명이 참가했다. 공군의 모든 조종사는 4년 6개월에 한 번씩 훈련을 받고 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전민경 인턴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