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실패 '튜닝'해 재추진하는 문재인 개헌안

김승현 입력 2018. 3. 23. 06:00 수정 2018. 3. 23.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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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정책과 그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 분권, 검찰 개혁, 국토균형 발전 등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다 좌절을 겪은 정책들이 다시 공론장으로 나왔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가운데)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구조를 포함한 대통령 발의 개헌안 3차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목불인견’ 검찰 견제한 영장청구권 삭제

검찰 개혁과 수도 관련 조항이 대표적이다. 검찰 개혁은 노무현 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다. 검찰에 집중된 특권을 빼서 중립을 지키는 쪽으로 변화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러나 의욕이 앞섰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초 논란이 된 ‘검사와의 대화’에서 보듯 검찰 개혁은 사실상 좌절됐다.

2003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노무현 대통령. 왼쪽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에 낸 자서전 『운명』에서 “(검사들의 태도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적었다. 이어 “바보스러운 대화가 계속되면서 분위기가 껄끄럽게 돼 버렸다. 대통령이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검찰 개혁 논의는 아예 못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만큼 기득권에 부딪히면 논란만 거듭한 문제를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서는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조항을 삭제하고 청구 주체를 법률로 정하는 식이다. 경찰이 영장청구 주체가 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국회에 넘겼다. 노무현 정부의 민정수석을 지낸 전해철 의원은 “수사권 조정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 관습헌법 벽 넘은 수도 조항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 포함된 수도 조항(수도를 법률로 정한다)은 노무현 정부 때 미완으로 끝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는 수도에 관한 명문화된 조항이 없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정부는 2004년 10월 21일 ‘쓴맛’을 봤다. 당시 특별법을 제정해 세종시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다가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논리로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왼쪽)이 이상경 재판관이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헌재는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헌법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않는 한 헌법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당시의 학습 효과가 이번 개헌안에 반영된 셈이다. 헌법에 수도 조항을 명문화함으로써 수도를 이전하거나 새로운 개념의 수도를 도입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됐다.

━ 2007년의 ‘원포인트 개헌’ 포함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된 대통령 4년 연임제는 2007년 1월 노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안했던 권력구조 개편 방안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시급한 과제에 집중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한다면 국정의 책임성과 안정성을 제고하고 국가적 전략 과제에 대한 일관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면서 현행 4년의 국회의원과 임기를 맞출 것을 제안한다”고 설명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2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개헌 추진 동력은 생기지 않았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이번 개헌안에 대한 국회의 협의 과정에서도 가장 큰 변수다. 야당은 대통령의 개헌안이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데 미흡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김승현 기자s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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